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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r 02. 2024

(영화) <파묘>, 한국인 마음 속 유교 무덤 파헤치기

2024.03.01. 반일보다 반한(?) 영화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스포 있음)


삼일절. 개봉 9일차, 누적관객 450만 명을 넘은 <파묘>는 반일영화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확실히 감독 전작인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법한 영화였다. 게다가 너무 대놓고 반일을 주장해서, 그러니까 반일 코드가 아니라 정말로 제국주의 일본 면상에 가래침을 뱉는 수준의 반일이었다.

 

으음? 이렇게까지? 이제와서? 요즘 시대에? 저 감독이? 굳이?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 타당하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너무 강력한 주장은 오히려 껍데기인 경우가 많다. 자극적인 껍데기에 홀랑 낚이지 말고, 거리를 둔 다음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하면, 이건 그냥 최민식 배우 또래를 스테레오 타입으로 삼아 장난스럽게 해석한 ‘한국인 도감’이라는 속알맹이가 슬쩍 드러난다. 그리고 그 도감의 주제는 유교다. 이 영화의 결론은 유교의 승리다. 조선 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전하세, 란 말이다. 지관(최민식)이 차를 타고 가며 딸과 독일인 사위에 대해 하는 대사를 보라.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추축국의 일원인) 독일인 사위가 지관(최민식)에 절하며 완벽하게 K결혼식에 녹아든 장면을 보란 말이다.




<파묘>에는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종교가 거의 모두 등장한다. 맨 처음에 나오는, 조상을 잘 모셔서 대대로 발복한 집의 무덤 부장품에는 묵주가 등장한다. 가톨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종교다운 이미지로 자리잡은 종교인데, 이 이후 더 등장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톨릭의 가장 종교다운 이미지라는 건, 그것이 로마로부터 내려온 뼈대를 유지하고 있어서 토착신앙화된 다른 종교와는 분리되기 때문이다. <파묘>는 한국을 묘사해야 하기 때문에 가톨릭의 등장은 여기서 끝이다.


다른 종교들을 보자.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장의사(유해진)는 개신교 교회 장로다. 여기서 개신교를 묘사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비싸 보이는 부장품 슬쩍 하기, 찬송가 틀어놓고 화투 치기, 솔직히 신앙심이라곤 하나도 없으면서 자기 어렵고 힘들 때만 기계적으로 성경구절 외우기 등이 있다. 무당 따라다니면서 그렇게 죄책감도 없다. 무당(김고은)은 너무 대놓고 등장해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거기다가 지관(최민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도교 그 자체다. 일본 귀신이 가장 먼저 반응하는 종교는 승탑이니 금강경이니 하는 불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유교로 모인다.


죽는 사람은 모두 제사 제대로 안 지낸 사람이다. 반면 똑같이 부모 덕 입고 불효는 불효대로 해도 출가외인은 안 죽는다. 시집간 여자는 시집 부모 제사 모시는 거다. 친정부모 제사 안 지낸 거 흠 아니다. 매국노 영혼은 제사 안 챙겨줬다고 자식을 막 살해하는데, 보다 보면 ‘아니 시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상이라는 게 자식 대를 끊냐!’ 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나라 팔아먹는 인간은 자식도 죽일 수 있는 거다. 이 땅에서 반역은 천륜을 저버리고 인륜을 저버렸다는 뜻이다. (천륜, 인륜 알아먹는 당신은 한국인♡)


일본 귀신을 욕할 때도 보면, 일본 귀신은 원한이 있어서 사람을 해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게 일본 귀신의 특성인 것은 맞다. 그런데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건 어마어마한 컬쳐쇼크다. 왜냐하면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권선징악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원한이 생기고, 원한을 갖게 한 자는 마땅한 인벌이나 천벌을 받으면 구천을 떠돌던 영혼은 원한이 해소되어 좋은 곳으로 간다. 권선징악이다. 그런데 일본 귀신은 권선징악이 없다. 그래서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조선 땅은 권선징악 유교랜드니까.


그래서 결국 주인공들이 일본 귀신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었냐고? 은혜를 저버리지 않은 이(스님)의 도움을 얻어 서로 식구가 된다. 한국인은 일 끝나고 같이 밥 먹으면 한 식구가 된다. 병실에서도 지관(최민식)이 의식을 되찾으면 식구들은 제각기 밥을 먹고 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 거니까. 지관(최민식)이 왜 중상을 입고도 안 죽었냐고? 딸자식 결혼을 앞두고 애비가 어떻게 죽어. 자식 새끼 결혼하고 애 낳아서 대를 잇는 모습 보기 전까지는 죽어도 눈을 못 감는 게 한국 부모다.


반일은 뭐냐고? 한국인 군상을 빚을 때 반일감정을 제외할 수 있나? 일제강점기는, 그리고 그 이후에 전개된 산업화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특정 기간을 소환할 때 너무나도 당연히 딸려오게 되어 있다. 그 시기 우리나라에 대해 말할 때에는 빛도 그림자도 일본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이념에 경도된, 어색하고 멍청한 정치적 술수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기간, 제국주의 일본은 이 땅에 함께 있었다. 


그 짜증나는 사실 자체에 진절머리를 내며 그러한 역사를 막지 못한 자기자신에 대한 혐오가 밀레니얼 이전 한국인의 영혼에 박혀 있다. 감독은 반일을 주장하는 반일 영화를 찍은 것이 아니라 그걸 보여준 거다. 후반부에 갑자기 장르가 바뀐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장르는 시종일관 유교랜드 K저씨 파헤치기였다. 대한민국 중년 세대의 정신분석이었다고. (아이고, 불쌍한 우리 중년세대)


감독의 의도는 병실에서 장의사(유해진)의 대사에 명확하게 등장한다. 아직도 쇠말뚝 같은 걸 믿냐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쇠말뚝이고 뭐고 문화재 있는 곳까지도 돈 되면 다 파헤쳐서 아파트 올리는 시대인데(이걸 암시하는 대사도 대놓고 나온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독의 역량 덕에 길고 긴 러닝타임이 무색하게 재미있고, 재미에 비해 반전 따위 하나도 없이 예측 가능하다. 그러니까, 진부하고 유치하다. 유교랜드에 살면서 우리 저 서사 너무 익숙하잖아. 이런 일이 있으면 그렇게 전개돼서 저렇게 끝나는 게 옳다는 생각, 권선징악, 아무리 다른 척해도 마음 속에 묻어두고 있잖아. 유교가 죽었다, 죽었다 해도 썩은 관짝 한 개 쯤 속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잖아. 솔직히 말해봐요. 이 영화 보면서 어떤 이유로든 '아휴 진짜 한국사람들 진짜...' 하지 않았느냐고. 감독 욕을 포함해서 말이지.




※ 배우자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무덤이라는 단어로 의견을 정리해 주셔서 얼른 받아먹었다. 양갓댁 마초이자 유교 좌파이며 히피를 옹호하는 빅토리안 젠틀맨, 종교적 무신론자인 이해송.


※ 비슷한 의견이되 좀 더 풍요로운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래 있는 유튜브 채널로. 역덕 겸 종교덕질하는 클라라님의 썰이 펼쳐집니다. 

https://bit.ly/4bT4jq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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