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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r 04. 2024

(드라마) 중국 고장극이 고여 썩었다

2018.03.04. 1990년대와 2010년대 사이 어떤 차이도 없는

94'판관포청천과 95'칠협오의를 너무 좋아해서 일고여덟 살 이후 이십대 초중반까진 어지간한 평점 괜찮은 무협극이며 중국시대극이나 중국시대배경 영화는 거의 다 찾아봤다. 비디오방에서 토렌트까지 구비구비 흘러온 덕질이다. 작품별로 황당무계한 허공답보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고대문명을 껴안고 수천년 흘러온 진지한 철학의 묘도 심심찮게 있다. 그런데 진지하고 건조한 작품일수록 작금의 중국(어쩌면 중화문명에 영향받은 동북아시아 모두)이 가진 한계가 처절하게 드러난다.


그 어떤 장엄한 시대에서 얼마나 깊이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든지 그들의 주요 걱정거리는 왕조의 흥망성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오로지 ‘大()江山’이란 한 단어로 요약된다. 당나라는 대당강산, 청나라는 대청강산이라는 식으로 요약하면 되겠다. 사람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고 농경의 느린 시간을 살아온 동북아시아 문화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좀 너무하다 싶다. 여기서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봤자 조정이다. 朝廷.그러면 그나마 구체적인 현실정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다. 강산에 포함된 백성들은 그저 먹여살릴 백성이고, 흘러가는 삶이고, 일어났다 스러지는 허무한 목숨이다. 집단으로 소환되면 그저 순자의 군주민수君舟民水 수준의 당위성 부여 배경쯤 된다. 특정 시간대에 태어나 주변 환경과 개성을 상호작용하며 살아갔을 캐릭터의 입체성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으로 따지면 종묘사직 쯤 될까.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근현대 이전 배경 콘텐츠를 본 기억이 없다. 백성이 개인적으로 불려나올 때는 오로지 피억압자, 핍박자일 때 뿐이다. 그것도 아니면 충효의 아이콘이거나. 사실 일본이나 한국 콘텐츠도 별다를 바는 없는데, 그래도 중국에 있어 조금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뭐라고 해도 동북아시아를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문화선진국이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영미콘텐츠는 적어도 16세기 이상을 배경으로 하면 구체적인 개개인의 삶과 관련된 소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감상할 때는 창작물로서의 평가요소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진지하게 접근하면 결국 그 소재들이 지금의 삶과 꽤 맞닿아 있다. 포괄적으로는 종교에서부터 아주 자세히는 특정 법의 시작과 그 필요라든지. 아니면 어떤 시대배경에서 살아가면서 그 시대에 태어난 개인이 하게 되는 성찰과 그에 따른 사회와의 갈등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개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역할하는지를 조명하려는 편이다. 단순한 선악구도도 덜 드러난다.


결국 이런 것들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니 콘텐츠가 매 이런 식인가 싶기도 하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수준의 질문이긴 하겠다. 물론 다른 외생변수들도 있을 테고. 아무리 그래도, 중화문명권에서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발생해서 현대 동북아 만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도록 발전해온 이념이나 사상, 제도나 체계가 무어냐고 물으면 어줍잖은 것들만 주워섬기게 되는 것이다. 내가 무식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유식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이름이라면 사상이나 제도 등으로는 이미 실패한 게 아닐까. 


지금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주인공으로 60회나 되는 중국 드라마를 틀어놓고 있는데 말이다, 꽤 진지하게 찍어 두었다. 그런데 피상적으로라도 ‘사회’에 대한 고민은 등장하지 않는다. 무려 청의 망국을 다루는데 말이다. 만든 사람들은 현대인이니만큼 그 시절에 대한 고찰을 조금이라도 했을 법 한데. 대청강산, 대청강산. 종묘사직, 종묘사직… 굶주린 백성들. 사실 사람들이 밥만 먹여주면 안빈낙도하며 호숫가에 낚싯대 드리우고 집으로 돌아올 땐 어깨춤 덩실덩실 추고 임금의 덕을 칭송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의 욕망과 욕구와 그것들의 원천에 대한 호기심과 기술의 발전과 규범의 충돌과 뭐 그런 것들은… 없었던 걸까? 아니면 상상력이 부족해서 묘사할 수 없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런 걸 진지하게 생각할 의지가 없는 걸까? 사회가 원천적으로 차단하기에 성공한 걸까? 그 모두일까? 


어떻게 1995년에 볼 수 있었던 작품과 2018년에 보게 되는 작품의 주제의식과 소재가 이렇게 변함없는지 경이롭다. 물론 복잡한 생각 안 하고 볼 수 있어서 맘은 편해진다만 솔직히 한국에서는 그놈의 아침막드도 약 25년간 막장요소와 플롯에 꾸준하고도 매번 급진적인 전진이 있어왔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시대극이 아침막드만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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