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Mar 25. 2024

(일기) 늙은 가지에 후회와 미련이 널려서

2019.03.15.  너무 외로우면 외로운 줄도 모르게 된다 

나는 후회도 미련도 많은 사람이다. 너무 일찍 어른스러워지는 바람에, 그리고 어른스럽다는 건 결코 어른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에 갖지 못한 것, 가지 못한 길이 너무 많다. 너무 이르게 어른스러워진 건 당연히 어른 노릇을 해 줄 마음이 없었던, 혹은 그게 뭔지 몰랐던 양육자들 때문이다. 내 문제만 극복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후회와 미련의 시체를 넘어서고 나니 양육자들의 늙음이 보인다. 


늙은 가지에 후회와 미련이 당나무 오색천처럼 걸려서 바람이 불 때마다 서글픈 방울소리를 낸다. 사람을 그렇게 싫어해서, 누가 제 몸에 손대는 걸 그렇게 싫어해서, 자식도 사람이라고 서너 살 때도 손 한 번 안 잡아 줬던 사람이다. 예닐곱 살 어린 자식이 밤에 무섭다고 품 안으로 고물고물 기어들어와도 질색을 하면서 내쳤던. 죽어도 친정에 장례 소식도 알리지 말라며 이를 부득부득 갈던 사람이 어느샌가 납득이 어려울 만큼 막내동생을 아끼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막내동생은 팔팔한 오십대 사장님이고 나름 다복하고 섶불처럼 기세등등한 아내와 죽순처럼 싱싱하게 자라나는 아들과 딸이 있다. 그래도 밤마다 막내동생 걱정을 하며 눈물바람으로 지샌다. 들렀다가 이마에 주름이라도 찡그린 모습을 본 날이면 전전긍긍하며 밤새 기도를 한다. 그 마음을 이해할듯 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겠고, 화가 나다가도 문득 그렇겠다 싶어진다. 자식이라도 타인이니까 그 마음 모르겠지만(사실 좀 미련해 보이지만) 그이에게도 거대한 후회와 미련의 덩어리가 두터운 앙금으로 가라앉아 있는 것이겠지. 신세를 본격적으로 망치기 전에 알던 얼굴을 보면 앙금이 휘저어지나 보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란 게 나한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무엇이 남았나 하면 서글픈 인생이다, 정말. 아무리 뭐라고 해도 종교란 그런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위로 같은 거다. 나는 독실한 종교인들을 보면 기도하는 곁에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있어주고 싶다. 정말이지,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그 서글픔에 잠식당하지 않기는 정말로 어렵다. 그저 웬만하면 둥글어져야지 싶다. 내 속에 화도 싫은 것도 너무 많다. 싫은 걸 다 내치고 살다가 정말로 혼자가 되면 얼마나 외로워지는지 뼈저리게 보고 있다. 너무 외로우면 외로운줄도 모르게 된다. 타고난 성격이긴 한데, 나와 함께 태어나 내 나이만큼 키가 자란 집요함이 좀 누그러졌으면 좋겠다. 나는, 너무 날카롭고 너무 집요하다. 너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