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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ul 02. 2024

(일기) 어린 시절 독서의 힘

2020.07.02 '그 다음'을 길어올리는 힘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에도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 나 자신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압박이나 기대나 희망도 없이(발전이란 때로는 희망도 고통인 법이라) 비가 오는 서늘한 여름 낮 조용한 마루를 뒹굴며 책 속 세계에 빠져들던 기억은 축축하고 또 아늑하고, 눈이 오는 겨울밤 따듯한 이불 속에서 노닥거리며 귤을 까먹고 또 책 속을 탐험하던 기억은 바삭바삭하고 또 느긋한 것이다. 아, 너무 일상적이라서 굳이 떠올릴 이유가 없었던 침잠된 기억들. 그치만 어쩌면 지금껏 나를 지탱해온 힘은 그런 작은 평화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몰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 같은 거. 무슨 개 같은 일이라도 한 발 물러서서 일단 웃고 시작할 수 있는 심지. 사람들이 (아마도) 나한테서 가장 좋아하는 거. 써놓고 보니 조금 머쓱하지만… 전혀 다른 잘난 거 없는 사람한테 꽤 많은 사람들이 잘해주고 사랑해주고 의지해주는 이유는 그거 같아. 언제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는 힘. 어린 시절의 독서가 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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