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경제학상 기념으로 2016년 감상 메모 업로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3장, ‘번영과 빈곤의 기원’ 감상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빈곤을 조장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실수와 무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뜻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논리나 최선책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을 넘어 실제로 어떻게 의사결정이 내려지며 누가 그런 의사결정을 하고 그들이 왜 그런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연구해야 한다. 다름 아닌 정치 및 정치 과정을 연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109~110p.)
1.
위 인용은 2장을 끝마치는 곳에 나오는데, 2016년 한국은 독특한 케이스가 아닐까 한다. 지도자와 지도집단이, 명확하게 세대와 나이로 갈리는 한국 사회에서 근대 이후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채 ‘무지’로 인해 내린 잘못된(자해에 가까운) 선택들은 나중에 어떤 언어로 해설되게 될까.
1-2.
십 년, 이십 년 단위로 인생을 설계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성격상 나중에 하게 될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석사, 박사 전공을 혼자 상상하고 즐거워하는데, 역시 원천적 토대를 제공하는 깊이는 있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있는‘가정’을 토대로 하는 이론적 모델보다는 어느정도 실천적 성격이 가미된 과목이 생각하기 즐겁다. 행동경제학, 공공경제학 같은 것들.
2.
이 책에서, 물론 이해도 하고, 엄격하게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도 알겠지만, 제도도 문화의 일부이자 문화를 만들고 문화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너무 배제하고 있어서 역사의 연속성이 설명이 안 된다. 그러니까, 어떤 제도가 등장할 때 갖추는 형태의 원인을 지적하는 깊이가 너무 떨어진다는 말임(의도적인 것 같기도, 문화의 정의가 다른 것 같기도).
이를테면 140~141p.에서
‘경제성장의 번영과 밑거름은 포용적 경제 및 정치 제도이며, 착취적 제도는 으레 정체stagnation와 빈곤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착취적 정치제도하에서도 성장이 가능한 개별적이면서도 보완적인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착취적 정치제도하에서 가능한 두 번째 성장 유형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제도가 어느 정도 포용적 경제제도의 발달을 허용하는 상황에서 목격된다. … 역사적 상황 때문에 착취적 집권 세력이 얼마간 포용적 성향의 경제 제도를 물려받게 되고, 어떤 이유에서든 그런 제도를 차단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이 급속도로 산업화한 것이 그런 예다.’
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저 ‘역사적 상황’이라는 말, 그리고 정치 제도는 특히 문화가 많은 부분 기여한다. 같은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해도 영국의 민주주의와 프랑스의 민주주의, 미국의 민주주의는 상당히 다르다. 지금은 3장 감상을 쓰고 있지만 4장 서문에서도 ‘결정적 분기점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결과는 역사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시작한다. 어찌되었든 정치와 경제는 날카로운 특성을 모아 제도로 만들기 이전부터(혹은 식민지에 이식하기 이전부터) 만수산 칡넝쿨처럼 얽혀 있기 마련이고, 문화는 그 넝쿨들의 접촉면과 같다.
한국에서 박정희 같은 독재자가 프로파간다라도 사용해서 정치선전을 하지 않았더라면(할 필요성을 못 느꼈거나, 그 프로파간다에 자기자신이 정말 경도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독재는 금방 무너졌을 것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최고지도자와 엘리트 집단의 가치와 철학이 공고한 나라였다. 그리고 그 가치와 철학은 여러 교육 제도를 통해 비(非)집단의 합의를 얻어낸 헤게모니(지배적 논리)였다. 그래서 ‘박정희는 다른 독재자와는 달랐어’라는 말에 어폐가 있는 것이다. 한없이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는 다른 국가의 독재자들과는 달라야 한국의 독재자가 될 수 있다.
헤게모니를 얻은 지배권력은 공고한데, 북한의 예도 들어맞는다. 오랫동안 체계적인 중앙집권에 익숙하고 그 집권세력이 교육시스템을 통한 지배적 논리체계 설계에 숙련되어 있다면, 더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선을 넘어설 때까지 집단 구성원은 어떠한 반발도 하지 않기 쉽다. 오히려 내부 돌출자를 자발적으로 제거한다. (북한의 8월 종파 사건을 보라)
물론 동일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그 결과는 역사적으로 미리 정해진 필연이 아니라 우발적인 것이다.’ 아니, 책에서 연구결과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올바른- 포용적인 제도의 설계-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 설계가 경제 발전과 사회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의견에 찬성한다. 다만 내 시선이 좀 다른 곳에가 있는 것이지.
4장은 동유럽 관련 설명이 재미있을 듯하다.
(5장)
1.
내가 생각하는 헬조선 담론의 논리적 근거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5장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에 나온다. 인센티브가 없으면 일 할 이유가 없다. 사실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것, 혹은 집단이 얻은 수익을 구성원에게 인센티브로 분배하는 과정은 경제제도보다는 정치제도의 힘이다. 사실, 경제는 제도보다는 구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음, 이 말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인 듯하다. 제도와 규범의 문제. 사회구조의 문제. 서로 같은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 구조의 문제 어쩌고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은 커뮤니케이션 스터디 학부 전공자의 마지막 발악이다)
2.
스탈린이 포기하고 소련이 포기한 ‘인센티브 없이 일 열심히 시키기’를 오늘날 헬조선의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이, 공장 제조업이 시전하고 있다. 사실 대기업이더라도 조선소 같은 곳들을 보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자들과 취미 혹은 명예, 또는 가치관으로 일은 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노동을 관둬도 먹고 살 수 있는 자들이 수저 원재료로 대립한다. 총 파이의 크기는 상관이 없다. 이미 파이가 있는데도 한 만큼 얻지 못하는 곳은 또다른 형태의 지옥이다. 이 때는 파이를 키우려는 노력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는 더 절망적이다.
* 추가. 메모해둔다. 196p.
‘소련공산당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썼다. 경제의 생산성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잇따라 법을 만들어, 꾀를 부린다 싶은 노동자는 모조리 범죄자로 몰았다. 가령 1940년 6월에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허락받지 않고 20분 이상 자리를 비우거나 농땡이를 부리는 것으로 정의된 무단결근을, 6개월 강제노동 또는 25% 감봉으로 응징 가능한 범죄로 규정했다.’
다들 의도적으로 눈감고 있지만 동북아시아의 근대화는 너무나도 국가사회주의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