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즌정 Nov 16. 2022

인간성이라는 오만함

<애프터 양>, 2022


인간다움의 정의

 최근 화제가 된 게임 중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생김새와 겉모습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기계 인간이 인간 사회 속에 평범하게 스며든 어느 미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원래라면 기계적으로 인간의 모든 편의를 봐주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은 결함을 일으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인' 선택, 자유의지를 갖는 것으로서 인간과 대립을 이룬다.


 인간은 편의를 위해 기계인간이란 존재를 만들어냈으면서도 정작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체할까 하는 두려움에 직면한 것이다.

 

 물리적으로 고기능적인 수행도를 가진 기계에 비해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우습게도 바로 인간의 '불완전함'밖에는 남지 않는다.


 그렇게 고기능적이고, 철저히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기계류더라도 결국엔 사사로운 감정, 실수, 후회 등의 부정적 경험과 기억을 반복하는 '인간다움'에 대한 선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이전의 서사는 말해왔다.


 이는 이전에 나왔던 영화 <아일랜드>라는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묘사하는 유사 인간에 대한 이야기 방법은 조금 달랐다.



존재의 증명 1) 기억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고 싶다.

그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인간 존재의 목적보다 본질이 앞선다는 것이다.

즉, 세상에 인간이 나올 때 어떤 목적으로 쓰인다거나

또는 어떤 부분이나 역할을 채우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본질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계인간의 경우는 다르다.

인간에게 필요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도 기계인간인 '양'의 존재는, 그들의 입양딸인 미카에게 생물학적인 근원에 대한 유대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음을 영화는 설명한다.


양이 결함을 보일 때, 미카의 부모는 꽤 간단하게 장비나 기구를 수리하듯 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 태도는 점점 변해가는데, 이는 양의 메모리(기억)를 관찰하며 들여다봄으로써 생겨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쌓인 양의 기억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도 존재하며 공유하는 것이었다.

기억을 나눈다는 것,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 그것은 존재의 증명이었다.




존재의 증명 2) 공동체 의식

   지구상의 많은 생명체들은 유사한 개체들과 무리 생활을 하는 습성이 있다.

생존에 유리한 전략이다. 사람의 경우도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인간은 이에 대해 점차 관습,  제도, 의미 등 정신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결혼을 하여 가족이라는 혈연 집단을 형성하고, 혈연이 아닌 경우에도 제도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유대를 맺어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것이 보편화되어있다.


각 나라별로 문화적인 특성이 상이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인간 존재는 대개 혼자 남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에, 아무리 혼자가 좋다는 등으로 부정하려고 해도 유전자에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조금 재미있는 가족 구성을 보인다.

어쩌면 지나친 PC(politically correct)의 표현, 또는 서구가 갖는 오리엔탈리즘의 전형도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스토리적으로 변명을 하자면, 가족에 대한 유대와 공동체를 좀 더 강조하는 문화는 동아시아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양철학은 존재에 대해 상대적인 입장, 관계중심적인 입장을 보인다.

즉, 내가 자연 또는 관계, 세상 속에서의 역할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으로, 서양철학의 자기 존재 중심 철학과는 매우 대조되는 모습이다.


 양과 미카의 태생적 정체성이 동양문화에 근원을 두고 있는 점을 설정한 것은 어쩌면 인간 정체성에 공동체 중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존재의 증명 3) 정체성에 대한 질문

사실 기계인간, 복제인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서사들은 이전에도 많이 등장했다.


앞서도 기술했지만, 이전까지의 그런 이야기들은 인간 정체성에 도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간과 갈등을 빚는 이야기의 부류가 주된 흐름이었다.


 그 속에서 '유사 인간'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늘 의문을 품는다.

바로 본인에게는 프로그램되지 않은, 자신에게 없는 인간성, 예를 들어, 감정을 알고 나누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고 갈구하다가 결국엔 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 존재와 똑같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가질 수 없는 인간성을 지닌 인류를 말살 또는 정복함으로써 정상 존재의 상태를 그들로 정의하는 것이 그 해답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달랐다.


양은 본인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음에 유감을 표현하지만 그뿐, 그에 대한 무거운 마음과 슬픈 마음, 여러 복합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오히려 인간들의 몫이었다.




존재는 존재할 뿐

 이 영화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표현하자면,

영화의 미장센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이 물론 맞지만, 차치하고,


인간들이 늘 새로운 존재에 대해 갖는 편견과 확증편향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는 여러 인종, 그리고 복제인간 등 다양한 형태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지만,

미카의 정체성에 대한 학급 친구들의 질문,

복제인간에 대한 안 좋은 시선,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기계인간과 가정을 이룬 이웃에 대한 불편한 감정 등이 흘러가듯이 영화 속에 다루어진다.


 이는 현재의 많은 국가들이 그렇지만,

특히 미국 사회를 비롯한 백인들이 겪어왔던,

또 현재도 겪고 있는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인종들 또한 어느 정도의 유사성과 또 어느 정도의 차이점을 지닌

동등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졌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바로 보이는 이질적인 특징에 주목하여 공격하고 지배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이는 미래사회가 도래해도 변하지 않을 인간의 특성일 듯하다.


 무언가 어느 정도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어떤 미지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미리 짐작하고 또 돌아보게 되는.


 존재는 그저 존재할 뿐일 터인데,

어쩌면 그 존재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찰하고 확인, 규정하려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인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