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앤 오프
on
어스름한 매시간마다 발걸음에 물이 찬다. 성에 차지 않는 하루엔 아쉬움이 찰랑이고, 내일도 오늘 같으면 어떡하나 불안이 발걸음을 무겁게 할 때. 퇴근이라는 두 글자가 무사함을 확인과 동시에 덜컥하고 멈추게 한다. 퇴근길에 마음이 홀가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도 어스름한 시간에는 발치에 물이 첨벙거린다.
내향적인 성격을 지닌 터라 더 예민하게 하루를 돌아본다. 자신과의 내면 대화는 종영이 없다. 힘들고 괴로운 길을 스스로 택해 지나간 시간을 왜 지지고 볶는지,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20대 후반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 등장했던 그날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살 줄만 알았지 내 몸 돌볼 줄 몰랐던 그때. 발끝에 치이던 물이 인중을 넘어 넘실댔다.
무수한 시간을 통해 ‘평상시의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나를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매뉴얼은 온 오프가 확실한 삶이다.
조용하지만 열정이 넘쳐 일할 때는 건전지를 끼운 동력 인간이 된다. 어떤 광기 하나를 허리춤에 차고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와야만 직성에 풀리니, 언제나 날 선 모습이 장착되고 만다. 지나친 열정으로 결과는 좋았지만 뒤따르는 건 번 아웃이 발목을 잡았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결과는 언제나 차다. 나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미움과 무관심이 싹을 틔우면 일을 할 수 없을 단계가 찾아온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결국 맞아야만 했던 차디찬 번 아웃을 겪고서야 틈틈이 나를 돌보는 일을 병행하며 산다.
여전히 on
겹쳐지는 시간
여전히 물기가 있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몇 발자국만큼은 물기가 사라진다. 빈집을 들어가는 발이 가벼워진 건 3킬로그램에 작은 생명. 그 온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지친 하루의 끝에 시크한 눈인사 한방이면 마음이 보송보송 해진다. 함께 살고 있는 그녀는 고양이 답지 못하게 어둠을 무서워한다. 주인 없이 혼자일 때 무섭지 말라고 언제나 작은 불 하나를 켜놓고 집을 나선다. 워낙 태어나면서부터 사람 손에 키워져서 그런지, 고유의 고양이 기질을 조금 잃고 인간성을 탑재했는지도 모른다. 불 켜진 집과 인간보다 2℃ 체온이 높은 생명이 나를 반긴다. 잃어버린 하루의 온기를 그녀는 지니고 있다. 벌써 마음에 온도가 1℃ 상승했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내향적인 풍경에도, off의 시간에도 그녀와 함께다.
도어록 첫 버튼을 누르면 현관문 안 그녀가 소란스럽다. 세상 조용한 그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도어록 버튼 음과 음 사이에 '야옹'이 섞인다. 물기 하나 없는 발이 되는 순간이다. 그녀에게 몇 번의 쓰다듬질 과 유산균을 섞은 습식 간식을 주고 나면 그녀는 더 이상 인간에게 질척거리지 않는다. 건조한 뒷모습에 실망하지 않는다. 닮고만 싶은 모습이다. 그녀는 언제나 한 입 정도를 남긴다. 고양이에게 어떻게 박(朴) 씨 유전자가 흐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박(朴) 씨 성(姓)을 가진 아빠와 나처럼 딱 한 숟가락을 남기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엄마 말로는 유전자라는데, 그냥 집안 내력인 셈 친다.
이제야 on이 끝나간다. 이제부터 off로.
off
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시간. 그건 바로 건전지를 빼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기. 집에서만큼은 최대한 두 발이 땅에 닿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티브이를 켜고 그날 심리 상태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는다. 맥주 혹은 와인을 홀짝이며 훌쩍거리기 참 좋은 내일은 쉬는 날. 슬픔은 느끼는 거지 말한다고 아는 게 아니다. 빈 병에 잠시 넣어둔 그 마음을 꺼낸다. 보이지 않는 외로움 또는 불안과 고통을 마음껏 느끼고 인정한다. 흔들리는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라지지 않는 감정을 외면하면 결국엔 파도가 되어 날 덮치는 걸 안다. ‘할 수 있다’는 표면적인 위안이 아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시간을 마주한다.
티브이 프로그램 ‘유 퀴즈’에 배우 류승범이 나왔다. 류승범은 화가인 아내에게 왜 그림을 그리냐고 묻자
어린아이들은 다 그림을 그려
자기표현을 그림으로 하는 거야
단지 너는 멈췄고, 나는 멈추지 않았을 뿐
아내의 대답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멈췄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니 익숙해져 버렸겠지.
어른으로 산다는 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의 비중이 훨씬 더 많아진다. 해야 하는 일에는 언제나 그늘진 마음이 자라난다. 온도 낮은 감정을 바라보는 일. 그것은 멈추지 않고 나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바라볼 수 있어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거니까. 이젠 나무도 꽃도 어떤 생김새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으니까.
책을 읽다가 혹은 영상물을 볼 때, 마주한 장면에서 그늘진 마음을 발견한다. 지나간 일에서 느꼈을 감정과 상태를 본다. 타인을 통해 딱 맞는 언어로 짜인 감정과 마주한다. 우리가 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되듯 무수한 단어와 비유가 나에게로 들어온다. 다시 나의 상태로 배출될 때, 그제야 온전한 감정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떨 땐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 감정이 내 눈과 귀를 통해 들어와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 그때를 포착해야 한다. 퇴근길 질퍽이는 발자국을 위로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가라앉은 마음으로 찬찬히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기만 했던 상황이 보인다. 돌아보고 인정하고 나면 다음엔 좀 더 현명한 태도로 상황을 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 탓만 할 수는 없을 때가 있지 않은가.
타인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퇴근 후에 잠시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오래 넣어두면 다른 마음도 잊어버리니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시간’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보자.
나는 멈추지 않을 거야
너도 함께 할래?
어느덧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내일의 on을 위해 오늘도 굿 나잇.
우리, 마음에 불을 켜요.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