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독서모임 그 후
나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고독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 기억,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에 열정적인 주위를 기울인다.”라고 말했다.
우연히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책과 만나고, 글과 닿았다.
침전의 시간을 보내며 불안과 외로움 자책감이 엄습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가.’를 다시 물었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 결핍과, 콤플렉스, 지독한 열등감,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이제 괜찮아졌다고 믿어왔던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났다. 독서와 글쓰기,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 보는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과 직면하고 수 없는 자신과의 질문과 답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열 손가락으로 나이를 표현할 수 있던 어린 시절. 좋고, 싫음의 답은 명확했다. 더 이상 접을 수 있는 손가락이 부족해지자,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관심받지 못할까 봐, 답보다 두려움이 모호한 대답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눈에 직접 인식되는 빛깔처럼 선명한 관계가 있을까? ‘예, 아니요.’ 외엔 중간이 없는 나란 사람에게 관계는 늘 어려운 스무고개 같았다. 빛이(답이) 없어 마침내 소멸하는 관계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삶이 근본적으로 외로움으로 향함은 온전히 나로 이해받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좁은 거리에서 공감받을 수 있다면 외로움에서 빛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인간의 몸은 빛과 온기를 좋아하기에.
독서는 하고 ‘만’ 싶던 숙제였다. 어린 시절 성립되지 않으면 결코 완독 할 수 없는 암석 같았다. 팬데믹 시국에 어쩌다 사장이 되어 어느 때보다 세찬 태풍의 길목에 서 있을 때, 결코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암석은 태풍으로 기회가 열렸다. 비바람에 깨지고 부서져 바다에 닿는 일. 그렇게 무한한 활자의 바다에 운명처럼 닿았다. 남의 삶을 엿보고, 탐닉하는, 타인의 상상을 먹고 자라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자신을 만나고, 무섭고도 짜릿한 신비스러운 무한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생각이 글이 될 때까지' 슬로건 아래 ‘독서모임’이 준 변화는 ‘완독’이라는 성취를 통해 감정을 산책하게 했다. 종이 위에서 '글'이라는 낯선 울림이 일렁였다.
나와, 가족, 친구,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은 다르나
서로 상처 줬던 기억들, 가깝다는 이유로 묻어버린,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다그치던 사소함이 가시가 되어 깊이 박혀버린 지난날에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처럼, 자신의 결핍은 친구나 가족, 연인이 메워 줄 수 없다. 좋은 관계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되기에, 마음을 짐작해야 하는 일은 없길 바라며 온전한 나를 찾는 과정을 그려 나가고 싶다.
‘외로움’, ‘온전한 나’, ‘관계 맺음’ 이 불러오는 날카롭고 다양한 성장통이 여러 갈래로 굴절되어, 흩어지는 마음을 다양한 빛깔로 비추어가길 바란다.
당신의 이야기가 프리즘에 닿은 빛처럼 아름답게 산란하기를.
어쩌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