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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Jun 15. 2023

고래? [고래]!

문학동네 독파 챌린지로 [고래]를 읽었다. 2주 정도의 기간 동안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고 진행자의 질문에 답을 하고, 미션에 참여하는 형태의 챌린지였다. 하지만 독파 챌린지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고래]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끊어서 읽을 수 없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했던 말마따나 [고래]의 '최대 경쟁자는 잠이다'. 아마 내 체력이 허락했다면 단숨에 읽었겠지만... 내일과 내 일을 생각해야 했기에 이틀에 걸쳐 읽었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렇게 이틀 만에 독파를 끝내 버렸기에 독파 챌린지를 잊고 있었는데 어제저녁에 문자가 왔다. 독서 모임과 북토크를 참 좋아하는데 무려 [고래]로 이야기를 한다니 당연히 참여했다.



급작스럽게 집 밖에서 참여하게 되어 책도 없이 줌에 접속했다. '화면을 꺼도 좋다, 음소거도 좋다, 편하게 참여하시라'는 보틀북스의 채도운 대표의 진행으로 정말.. 깜깜한 줌 북토크가 이어졌다. 하지만 함께 나눈 대화의 내용은 [고래]의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의미 있는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책을 읽으며 떠돌았던 생각들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도 있었다.



고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특히 춘희의 예술론이 흥미로웠다. 참여자 가운데 한 분은  '고래'를 경외심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옮겨 적을 수는 없지만, 메모와 기억의 의존해서 그분의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금복은 고래를 처음 만난 순간  경외심을 느낍니다. 경외심은 약한 존재가 강한 존재를 바라볼 때 느끼는 두려움이 포함된 감정입니다.  금복과 노파는 경외심을 가질 대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입니다. 반면 춘희는 경외심이 없는 순수한 존재입니다. 김현 문학 평론가는 문학의 이유에 대해 '무용성'을 듭니다. 춘희가 벽돌을 굽는 행위 또한 다른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순수한 무용성의 행위입니다. 그런 춘희의 순수한 모습은 예술과 같고, 그것을 바라보며 독자들은 '경외심'을 느낍니다."



"그것은 ~의 법칙이었다."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나는 이 문장을 모두 찾아보았다. 반복되는 이 문장들의 의미가 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총 49회의 법칙?

1부) 부두 (28회)

27_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31_그것은 무조건 반사의 법칙이었다.

33_그것은 소문의 법칙이었다.

36_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

36_그것은 아랫것들의 법칙이었다.

39_그것은 유전의 법칙이었다.

43_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47_그것은 그들의 법칙이었다.

67_그것은 중력의 법칙이었다.

70_그것은 그녀가 이제 막 건너온 세상의 법칙이었다.

76_그것은 생식의 법칙이었다.

89_그것은 고용의 법칙이었다.

107_그것은 가속도의 법칙이었다.

108_그것은 무지의 법칙이었다.

109_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123_그것은 거리의 법칙이었다.

127_그것은 금복의 법칙이었다.

133_그것은 서부극의 법칙이었다.

136_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141_그것은 비만의 법칙이었다.

143_그것은 운명의 법칙이었다.

147_그것은 무의식의 법칙이었다.

152_그것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었다.

164_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164_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

166_그것은 거지의 법칙이었다.

173_그것은 흥행업의 법칙이었다.

178_그것은 구라의 법칙이었다.

**그것은 서부극의 법칙이었다.

2부) 평대(11회)

185_그것은 진화의 법칙이었다.

257_그것은 유언비어 법칙이었다.

260_그것은 구호의 법칙이었다.

265_그것은 만용의 법칙이었다.

280_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282_그것은 헌금의 법칙이었다.

311_그것은 유전의 법칙이었다.

324_그것은 생명이 축복이자, 자연의 법칙이었다.

355_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377_그것은 알코올의 법칙이었다.

380_그것은 더러운 상업주의와 영합한 플롯의 법칙이었다.

3부) 공장 (10회)

400_그것은 감방의 법칙이었다.

406_그것은 신념의 법칙이었다.

432_그것은 자본의 법칙이었다.

440_그것은 권태의 법칙이었다.

440_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442_그것은 지식인의 법칙이었다.

444_그것은 감방의 법칙이었다.

446_그것은 다시 중력의 법칙이었다.

428_그것은, 오랜만에, 사랑의 법칙이었다.

502_그것은 다시, 이념의 법칙이었다.


법칙이란 무엇일까? 논리의 산물이다. 척하면 척. 자극과 반응. 원인과 결과.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것. 논리의 산물. 어긋남이 없는 것.


천명관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서술하고 요약처럼, 추임새처럼 "그것은 ~의 법칙이었다'로 마침표를 대신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금복과 춘희와 노파의 삶에는 법칙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원인에서 바로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과 초현실적인 운명이 방향을 틀어버린 것 같다.


작가는 이런 법칙이라는 것이 사실은 허구이며 환상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마치 쓰러뜨리기 위해 도미노를 쌓는 것처럼 법칙을 쓰러뜨리기 위해 수많은 법칙을 빌드업한 것이 아닐까?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그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이라는 수식어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밀수꾼:세관을 거치지 아니하고 몰래 물건을 사들여 오거나 내다 파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 난봉꾼:허랑방탕한 짓을 일삼는 사람  虛浪放蕩(허랑방탕): 언행이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며 주색에 빠져 행실이 추저분함.


* 염량: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는 슬기


*거간꾼: 사고파는 사람 사이에 들어 흥정을 붙이는 일을 하는 사람.


*기둥서방: 기생이나 몸 파는 여자들의 영업을 돌보아 주면서 얻어먹고 지내는 사내.


칼자국이라는 인물은 금복에게 '영화'와 같은 존재이다.


 번째 영화. 금복은 시장에서 우연히 칼자국을 만나고, 칼자국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영화를 본다. 그리고 매료된다. 그리고 그날 밤 걱정은 초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두 번째 영화. 금복은 그녀가 동경했던 고래가 해체되는 장면을 본다. 사람들이 고래 뱃속에서 물건을 꺼내며 탄성을 내지를 때마다 금복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그러고 나서 칼자국의 극장에서 두 번째 영화를 본다. 존 웨인이 주인공인 서부 영화였다.


세 번째 영화. 극장이 아닌 칼자국의 이야기이다. 제목은 '게이샤와 네 개의 손가락'이 어떨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금복은 칼자국의 세계로 들어간다. 걱정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만 자기 본위적인 끌림이 아니었을까?


칼자국에 대한 반복적인 서술은 어찌 보면 칼자국이라는 '영화'로 들어가는 하나의 주제 음악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문장은 읽을 때 리드미컬한 맛이 있다. 칼자국이 죽었을 때 이 문장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 서운할 정도로 입에 착 붙는 문장이 이었다.


코끼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다에서 가장 커다란 동물이 고래이고,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이 코끼리"라는 참여자의 말이 인상적였다.


나는 고래가 금복의 분신이라면, 코끼리는 춘희의 분신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끼리는 거대하고 낯선 존재이며, 말이 없다. 춘희도 그러하다. 사람들이 본 적 없는 거구의 낯선 존재이며, 말이 없다. 쳐다보면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구경거리' 같지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모르게 존재하는 조용하고 고독하며 단절된 존재이다. 이 거대한 코끼리만이 유일하게 춘희의 내면에 닿을 수 있는 존재이며 춘희를 '꼬마 아가씨'라는 이름으로 불러준다. 강하고 성장한 존재처럼 보이는 춘희는 순수하고 무지한 꼬마였다. 영원히 이해받지 못한 존재로 침묵 속에 살다 간다. 코끼리는 서커스에 이용되고, 다방의 홍보용으로 이용되는 모든 순간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춘희도 감옥에서 격투라는 서커스에 이용된다.


가장 무거워서 아래로 하향할 것만 같은 존재인 코끼리와 춘희는 유일하게 우주로 상승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순수함은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순수한 빛에 둘러싸여 투명해져서 계속 날아올라 안드로메다 성운 근처까지 날아간다.


독서 모임에 참여한 소감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실컷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사실... 1시간은 너무 짧았다. 부끄럼쟁이 참여자들이 입이 풀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 끝나 버렸다. 듣지 못한 이야기가 아쉬웠다. 준비 없이 너무 헛소리를 한 건 아닌지 줌을 끄고 나서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헛소리라고 한 덕분에, 그 헛소리를 다 뱉고 나니 생각이 좀 더 또렷해진 것 같다. 역시 책은 덮고 나서 한 번 더 우리는 과정이 있어야 더 향기롭고 맛있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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