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나의 보물 1호였다. 세뱃돈을 더 이상 엄마에게 맡기지 않아도 되었던 고3 겨울에 처음으로 수동 카메라를 샀었다. 내 생에 가장 고가의 소비였으며, 필름을 사고 현상을 하기 위해서는 계속 돈이 필요했던 꽤 유지비가 많이 드는 물건이기도 했다.
한 롤에 24장 혹은 36장을 찍을 수 있었던 필름을 끼우고 '출사'라는 것을 가기도 했다. 약간 '출동'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단어는 당시 나를 참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알지 못하는 낯선 장소, 처음 타는 버스를 타고, 멋들어진 카메라 가방을 들고 그렇게 친구들과 출동을 했다.
마치 총알을 장전하듯, 시위를 당기는 카메라의 레버를 움직이면 다음 컷을 위한 빈 필름이 렌즈 뒤에 놓이게 된다. 이 순간 잘못 셔터를 누른다면 저절로 으아악 소리가 나온다. 반대로 정말 멋진 찰나를 발견했는데 '찰칵' 소리가 나지 않으면 더 큰 으아악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총알 장전을 깜박한 것이다.
검지 손톱만 한 작은 뷰파인더를 통해 '찰칵'할 대상을 고르고 다시 셔터를 반쯤 눌러 노출과 셔터 스피드를 확인한다. 빛이 모자라지도 적당하지도 않도록, 현상된 사진이 너무 거칠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조리개 값과 셔터 스피드를 조절한다.
이 과정에서 '찰칵'의 대상은 이미 먼 곳으로 가 버릴 때도 있다. 정말 찰나의 '찰칵' 모먼트를 놓쳐 버려 아쉬울 때가 많았다.
지금도 그때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필름을 구입하고 현상하는데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우연히 발견한 '현상'이라는 말에 문의를 해보니 가격을 둘째치고 택배로 필름을 보내고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량 이상이 모여야 작업이 들어간다고 한다.
한 번 필름 카메라도 다신 찍어볼까 생각이 들어서 꺼내어 오랜만에 필름 카메라를 꺼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 작은 뷰파인더의 양쪽 옆으로 작고 희미하게 보이는 노출값을 읽는 것이 너무 눈이 아파왔다.
휴대폰 카메라는 정말 편리하고 성능이 좋다. 하지만 그 편리와 방대함 때문인지 오히려 사진을 잘 찍지 않게 된다. 너무 쉬어져서 공을 들이지 않게 된다. 나중에 찍자고 생각하다 보니 정말 사진을 찍지 않게 된다.
올해 야심 차게 3년 일기장을 사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게 매일의 기록이 아니라 일주일치, 심하면 보름치를 몰아서 쓰는 기록이 되었다. 이 기록을 위해서 휴대폰 카메라와 카카오톡 내용을 살펴볼 때가 있는데 너무 사진이 없어서 하루를 빈칸으로 둘 때가 많다.
단 한 장의 사진이라도 있었다면 그 하루에 어떤 이름을 붙이고 기록을 해 둘 수 있었을 텐데.... 내 인생에서 하루가 그냥 삭제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요즘을 일부러 어떤 순간을 찍어보려고 노력한다. 너무 뻔한 장면을 굳이, 손수 찍어 보는 것이다.
그런데 휴대폰을 들어 찍고자 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장면인 휴대폰 네모 프레임 안에 들어가고 찰칵 소리와 함께 포착되어 정지 화면이 되어 내 휴대폰에 저장이 되는 순간, 뭔가 그 장면이 특별해지는 감정을 느꼈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의 소유가 된 그 찰나의 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쳤을 그 장면은, 오직 카메라를 들어 그 장면을 포착한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되어 저장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장면 가운데 찍기로 마음먹은 그 장면에서 어떤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찰칵'의 순간을 매개로 세상과 나의 연결고리가 '착' 하고 채워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길을 걷다가 버려진, 놓인, 잊힌, 흘려진 물건들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을 찍는 동안 이 물건들이 그 장소에 놓였던 순간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순간들로부터 멀어지고 잊히게 된 시간의 흐름도 상상해 보았다.
나에게도 있었던 그 순간들과 시간의 흐름을 '찰칵'의 순간에 깊이 맛보았다. 마법 같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