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낯선 곳으로 왔다. 낯선 곳으로 향해서 그런지 더 멀게 느껴졌다. 먼 곳으로 가는 사람처럼 세탁기 안에 널지 않은 세탁물을 걱정하고, 점심때 먹다가 남겨둔 냄비 안에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두지 않은 것이 떠올라 잠깐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다가 '몇 시간 뒤면 돌아갈 텐데....' 그런 걱정을 하는 내가 우스워진다.
빨간 신호에 잠시 세운 차 옆으로 수국이 피어있다. 그리고 빗 속을 나비 대여섯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여린 날개로 이 빗 속을 날어야 할 중대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비가 오면 나비들은 풀 숲에서 비를 피한다고 했는데... 나비들의 사정에도 잠시 궁금해져 고개를 갸웃 거린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쌓인 재난문자를 보며 언제가 방파제 너머로 파도가 치던 그날을 떠올리며 걱정하던 것이 무색하게 바다는 고요하다.
정자 안에 맞춤하게 나를 위해 비워둔 듯한 의자를 만나 이렇게 멍하니 바다를 본다. 온몸을 감싸는 습기와 적당한 바람과 뒤로 지나가는 느긋한 자동차 소리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