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동물원
육아 1단계: 분노와 후회 그리고 망각
by 김소연 빛나는 숲 Aug 22. 2025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인간은 처음엔 사람이 아니었다. (완전한 동물이다!)
그들은 먹고 자고 싸고 울다가 갑자기 소리 지르고 물어댄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하늘 아래 부끄러울 것 없다는 듯 드러누워 버린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 제멋대로 쿵쿵 뛰고 높이 오르고 위험천만한 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간다.
아프면 온 동네가 시끄럽게 운다.
기분이 좋으면 작은 얼굴이 다 망가지도록 웃어낸다.
내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네 것은 무조건 뺏어야 하고 호랑이 새끼들처럼 뒤엉켜 싸운다.
나는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이들을 혼낸다.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강아지처럼 멀뚱히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마치 순수하고 힘없는 생명체가 커다란 지구인에게 말과 눈빛으로 잔혹한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고 나면 커다란 지구인은 제 머리 쥐어뜯으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모습이 가여워 결국 아이를 다시 끌어안는다.
아이의 눈빛은 금세 장난기 가득한 호랑이 새끼로 돌아온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우리 집은 “동물의 왕국”이 된다.
맹수들처럼 싸우고 물어뜯고 포효한다.
스스로 호랑이가 되어버린다.
이제 내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헷갈린다.
나는 진짜 사람일까? 혹시 사람의 탈을 쓴 동물이 아닐까?
그런데 대체 ‘사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한 이래로 그들은 문명을 발달시켰고 스스로 ‘사람의 탈’을 씌우기 시작했을 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탈'은 더욱 이상적이고 고차원적인 형태가 되었다는데...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는 일은 참 어렵다.
나도 아직 사람이 다 못 된 탓?
매 순간 새롭게 생각해야 하고 모르는 것을 새로 배워야겠지.
"어려서는 아버지가 하느님이고 젊어서는 스승이 하느님이고 나이가 들어서는 하느님이 하느님이다."
(다석 유영모)
요 녀석들이 청년이 될 때까지는 부모인 나의 몫이라는 말씀!!
그러나 굳은 다짐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우리는 다시 호랑이가 되어 있다.
누나가 동생을 세게 밀었고
아이는 바닥으로 고꾸라져 코를 박았다.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진다.
뜨거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큰 아이는 지레 겁을 먹고 오줌을 싸버렸다.
일단 우는 아이의 코를 꼭 잡았다.
5분이 지났을 즈음 어쨌든 코피는 멈추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큰 아이를 씻기고 바닥을 닦아냈다.
속으로 울부짖었다.
‘대체 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뱃속으로 다시 넣을 수도 없고!‘
‘일단 멈춤’ 버튼이 필요했다.
퀭해진 눈빛으로 기다시피 걸어 냉장고 앞에 섰다.
‘뭐라도 먹어야 해.’
파란색 맥주 한 캔이 눈부시게 빛났다.
주신酒神 강림이던가
탁! 캔 따는 시원한 소리가 내 마음을 식혀주었고
울렁울렁 잘도 넘어가는 맥주의 탄산은 내 속에 꽉 찬 홧김을 밖으로 빼주었다.
내 얼굴이 좀 누그러져서일까 큰 아이가 머뭇거리며 동생에게 다가간다
“준범아 미안해.”
녀석이 나를 한번 슬쩍 보더니 답한다.
“괜찮아 누나.”
두 녀석은 서로 꼭 안고 잠깐 키득거린다.
어이없음에 할 말을 잃은 내 곁으로 작은 아이가 슬금슬금 오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엄마, 화내지 마. 응? 엄마 예쁜 마음 돌아오게 내가 만져줄게.”
녀석이 내 가슴을 동그랗게 쓰다듬는다.
마법 같은 그 말에 나도 웃는다.
처녀 적에는 술맛을 몰랐다 이 맛없는 걸 왜 먹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아이를 키우면서 두 번째로 알게 된 사실이다.
술은 약이다.
술은 마음으로 마시고 마음의 약이 된다.
술이 없었다면
사람과 동물 사이를 오가는 이 황당하고 억울하고 힘든 육아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오직 주(酒) 님께 감사할 일이다(하늘에 계신 주님께도 감사를...).
사람을 키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덜컥 둘이나 낳아버렸다.
엄마의 후회와 망각 사이에서 아이들은 자란다.
지난 주말,
장난 가득한 두 아이의 손을 꾹 눌러 잡으며 복잡한 백화점 엘리베이터를 탔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유모차가 보인다.
일부러 빼꼼 고개를 빼서 살펴보니
세상에... 진짜 인형 같은 아기가 누워있는 게 아닌가?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자니 나도 한참 기분이 좋아져
옆에 멀거니 서 있던 남편에게 속삭였다.
여보, 우리 셋째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