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는 죄가 없지

by 김소연 빛나는 숲

오래전 일이다.


문화센터에서 ‘1개월 완성 홈 커팅’ 미용 취미반을 수강한 적이 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갖게 된 취미였다. 온종일 아이와 씨름하며 어른과의 대화방식을 잊고 살아서인지 수업 시간에 만나는 낯선 엄마들과의 짧은 대화도 긴장되고 설렜다. 육아와 가사노동이 아닌 전혀 새로운 기술을 익힌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욕이 샘솟았고 주 1회 하루 한 시간의 사회생활에 내 표정은 한층 밝아졌다.


5회 수업이 마무리되고 어느 정도 가위질에 익숙해진 나는 앞으로 우리 집 남자들의 머리는 내가 직접 깎아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남편은 아내의 활기찬 삶을 격려하듯 기꺼이 자기 머리를 맡겼다.


“여보, 예쁘게 깎아줄게.”

나는 요즘 유행하는 모히칸 스타일을 제안했다. 가위와의 사투가 끝날 무렵 온몸에 진땀이 흘렀고 내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거울로 머리를 확인하던 남편은 머쓱한 표정과 당황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네... 이제 그만 깎아.”

“잠깐만! 거의 다 했어. 5분만.”


왼쪽 오른쪽의 균형을 ‘완벽하게’ 맞추느라 머리카락은 점점 짧아졌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의 머리는 생쥐가 뜯어먹은 것처럼 아주 우스워져 있었다. 미안하고 무안했다.


“어떡하지?”

“괜찮아. 이제 그만 깎자.”

“이렇게 하고 어떻게 회사를 가.”


우리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남편의 머리 위에서 삐죽삐죽 비웃음을 자아내는 못난이 머리카락들을 모두 바리깡으로 밀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추운 겨울, 마흔의 나이에 그는 빡빡이가 되었다.


나는 이케아에서 구매한 철제 수납함에 담긴 고급미용가위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버릴까?'

'버릴 것까지야, '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되잖아.'

'그래도, 비싸게 주고 산 가위잖아.'

'가위는 죄가 없지.'

'안 보이는 곳에 잘 숨겨두면 돼.'


다음날, 회사에 다녀온 남편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여보... 괜찮았어?”

“응. 이번 주 금요일에 회사 전체 시무식이 있는데 내가 대표로 결의문 낭독하기로 했어.”

“왜?”

“상무님이 나한테 하라고 하시네. 머리 밀고 결의문 낭독하면 멋질 거라고. 근데 사람들이 자꾸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서 좀 귀찮았어.”



올해는 유난히 더운 여름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다섯 살 아들의 머리털이 더부룩해 보였다. 세월이 약이던가 독이던가. 찰나의 순간에 가위가 떠올랐다. 아이의 머리는 작아서 머리숱도 많지 않았다. 실패할 확률이 낮았다. 나는 깊숙이 넣어둔 가위를 꺼냈다.


“아들! 엄마가 머리 깎아 줄게.”


달콤한 사탕으로 아이를 설득했다.

싹둑싹둑 가위 소리가 실감 나게 화장실 안에 울려 퍼졌다. 바리깡으로 목덜미와 구레나룻, 귀 주변을 정리하자 거친 기계음 때문인지 아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짧은 머리카락들이 얼굴과 목 위로 촘촘히 떨어졌다.



“따가워. 따가워. 엄마 언제 끝나?”

아이는 울상을 하고 말했다.



“금방 끝나. 5분만 참아줘.”

“5분이 뭔데? 5분이 얼마야?”

“금방이야 금방, 거의 다했어.”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서둘러 머리를 깎았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정면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바리깡 조절을 잘못한 탓에 머리 곳곳이 패인 모습이었다. 다시 연장을 들어 올렸다.



“아니 엄마 왜 계속 깎아, 그만 좀 깎아.”

“진짜 마지막이야.”



결국 더 이상 깎을 머리털이 없을 정도로 아주 짧아진 후에야 커트 보를 벗기고 머리를 감겼다. 어리고 귀여워서 짧은 머리도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 머리를 확인하겠다고 거울 앞에 선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사탕을 쥐여 줘도 초콜릿을 쥐여 줘도 아이는 계속 울었다.



“으앙~이게 뭐야. 유치원 가면 친구들이 대머리라고 놀릴 것 같아!”

나는 다시 미안했고 다시 무안했다. 태연한 척 밝은 목소리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우와~네가 좋아하는 군인 아저씨처럼 멋져! 그리고 머리카락은 엄청 빨리 자라!”

그 말에 위안을 얻었을까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작아졌고 누나가 숨바꼭질하고 놀자는 말에 활짝 웃으며 달려 나갔다. 잘려나간 머리털은 까맣게 잊은 듯 보였다.


‘휴...’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왜 악마의 혼이 깃드는 걸까. 나는 한때 내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던 고마운 미용가위를 집어 들고 화장실밖으로 나왔다.


'가위는 죄가 없지.'


악마의 속삭임을 뒤로한 채, 깊은 쓰레기통 속에 그것을 풍덩 빠트렸다.

아침잠에서 깬 아이가 방문을 열고 느리게 걸어 나왔다. 반쯤 감은 눈으로 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 머리 많이 자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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