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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부자언니 Sep 08. 2022

아홉. 친했어요? 죽은 그녀에 대해 묻는 말

아프리카 치안의 현주소 - 돈과 살해 


밖에서는 연말 파티가 한창이다.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늘 있는 일이라 그런가 보다 하며 전기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쾅. 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나갔다. 

“전기선이 고장 난 것 같아서 고쳐 드리려고 왔어요!” 

달칵. 문을 열자 두 남자가 들어왔다. 


한 명은 얼마 전부터 귀찮게 쫓아다니며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빌딩 관리 팀의 새 직원이었다. 

몇 번을 얘기해도 듣지 않아 며칠 전에 따끔하게 말을 했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남편이 큰 회사의 CEO로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가 돈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도 말을 꺼내면 남편에게 아예 다시는 말도 못 꺼내도록 강하게 얘기하라고 해야겠다. 


갑자기 두 사람의 눈빛이 겁을 집어 먹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돈 어딨어, 돈 내놔!!!” 


다행히 6살, 4살, 3살인 내 아이들은 한쪽 방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를 각각 방으로 데려가서 위협한다. 


“돈 내놓으라고!! 안 그러면 죽어!!” 


우리가 이사했을 때부터 이미 짐짝처럼 방치되었던 금고를 가리키며 열라고 한다. 근데 정말 저건 우리에게 짐 덩어리 일뿐, 열쇠도 없고 비밀번호 모른다. 모른다고 했더니 열라며 다시 위협한다. 난 아프리카 사람과 결혼한 백인 여성이다. 무섭지만 이 정도쯤이야 감당할 수 있다. 난 회유와 협박이 섞인 말을 하며 핸드폰을 꺼내 이 상황을 녹화하려고 했다. 순간 눈빛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다른 방에서 일어나는 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금고문 열어. 돈 내놔”

“돈 줄게. 그런데 저 금고는 나도 몰라”

“열라고!!!” 


칼이 내 목 뒤를 스치는 게 느껴진다. 다행히 나는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병원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머리의 상당수를 다쳤다고 한다. 나는 결국 응급 헬기로 남아공으로 수송되어 긴급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런데 누구도 아내의 안부를 전해 주지 않았다. 왠지 불안하다. 


나중에 들었다. 

아내는 괴한이 먹인 산을 먹고 의식을 잃고, 이후 베개를 짓눌려 사망했다고 했다. 환하게 웃던 사랑스러운 그녀의 얼굴과 엄마를 잃은 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눈물이 흐른다. 


범인은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청년이었다. 돈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거절하자 꾸민 일이라고 진술했다.




두바이에서 출장 중이던 나는 동료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한밤중이었는데 비상 메시지가 왔다. 우리 컴파운드에 괴한이 침입했고, 남편 상사의 아내이자 내 친구가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것처럼 몇 초를 멍하게 있다가 미친 사람처럼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는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여주고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울었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청 씩씩하고 용감하던 그녀! 난 그녀처럼 멋진 전업주부를 본 적이 없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깔깔거리고, 나에게 보드카는 냉동실에 보관해서 먹어야 진땡이라며 술을 알려 준 그녀다. 처음 라고스에 도착해 어리바리하던 내게 먼저 연락해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상사 와이프라서 꺼려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 계급장 떼고 스스럼없이 대하던 쿨한 그녀였다. 오직 그녀가 상사를 논 할 때는 밥값을 계산할 때가 전부였다. 이제 만 6살, 4살, 3살인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갑자기 엄마를 잃고 어찌할지… 생각하자 눈물이 끊이질 않았다. 


그때 나를 현실로 돌려놓은 동료의 한 마디

“친했어요?”


난 멍한 시선으로 한창 그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쁜 멋진 여자였어요.” 


친했나? 갑자기 내가 그 멋진 여자랑 친했는지 아닌지 계산하다 허탈하게 웃는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이 나랑 친했는지 안 친했지를 생각하고 있다니… 안 친한 사람이 죽으면 조금 더 괜찮아야 할까. 물론 동료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이 “친했어요?”라는 한 마디로 물어봐 지기에는 너무 안타까웠을 뿐이다. 그래서 난 그녀가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근사한 멋진 여자였다고 알려 주고 싶었다. 


너무 빠른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언제 어떻게 우리가 인생을 마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 난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지금은 완연하게 평화를 되찾은 우리 컴파운드에는 좋은 사람들이 산다. 내가 베스트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른이 나누는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주말 저녁을 함께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조용한 수영장을 내려 볼 때면 그녀 생각이 난다. 문득문득 그녀가 생각난다. 남편은 잘 회복했는지,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그녀 역시 잘 지내고 있는지.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하고 보내주었다. 

베네딧. 난 너처럼 근사한 전업주부를 본 적이 없어. 환한 웃음 뒤의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똑 부러지게 일 처를 하는 너는 정말 멋졌어. 항상 누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기꺼이 도와주는 누구에게나 고마운 사람이기도 했지. 남편을 위한 완벽한 아내이자 아이들에게 무한 사랑을 쏟는 사랑스러운 엄마. 넌 배울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어. 널 만나서 정말 감사했어. 잘 지내. 


#책과강연 #백백7기 #최지영작가 #아프리카부자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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