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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부자언니 Sep 07. 2022

여덟. 여행 중 지갑을 잃어 버린 날

여행에서 만난 감사한 사람들과 귀중한 깨달음

쿠알라룸프르의 거대한 쇼핑센터 안 – 마음에 드는 신발을 쇼핑하는 세 여자는 신이 나 있다. 거기에 반 이상 제품이 50% 할인이라고 적혀 더욱더 두근거린다. 

마침내 신중하게 각자 신발을 골라 카운터 위에 놓았다. 가방에서 지갑을 찾는데 

앗뿔싸.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식은땀이 나면서 5초간 정지. 


점원에게 자초 지종을 설명하고 점심에 식사를 했던 타이 식당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미 우리가 나간 후 몇 번이나 같은 자리에 손님을 받았고 치웠지만 내 지갑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CCTV를 보려면 경찰에서 발행한 허가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안에는 현찰과 신용카드 2개가 들어 있었다. 나의 전 재산이기도 했다. 

순간 앞이 깜깜해지면서 현기증이 나 이마를 부여 쥐었다. 미안하다는 점원의 말도 들리지가 않는다. 결국 백화점의 보안 사무실을 찾아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이 진술서를 경찰서에 갖다 줘야 CCTV를 볼 수가 있는데, CCTV를 본다고 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당장 아이들 식비와 호텔비는 어쩔 것이며, 앞으로 남은 여행은 어찌할 것인가. 35일간의 여정에서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술서를 쓰고 돌아가는데 보안 사무소 매니저가 말레이시아에서 50링깃 지폐를 꺼내서 건네준다. 

경찰서까지는 무료 트램을 타고 갈 수 있으니, 내일 아이들이랑 아침 식사비용으로 쓰라고 하신다. 


아… 내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구나. 그것도 5분 만난 사람에게. 


새삼 온 우주와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는 강한 깨달음이 왔다. 


처음 아프리카에 가는 길에 케냐에서 공항이 폐쇄되어 출국이 미뤄진 적이 있다. 그때 만난 인도인 중년 아저씨가 이상하리만큼 공항에서 헤매는 나를 도와줬다. 처음에는 감사했는데 나중에는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몰라 무서워서 거리를 뒀다. 나는 공항에서 유일한 동양 어린 여자였고, 집적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저녁 먹고 뭐 하냐는 둥, 방을 같이 쓰자는 둥, 지금 생각하면 웃으면서 ㅈㄲ 라고 할 텐데 그때는 무서웠다. 어쨌든 나중에 명함을 받아 이메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때 물어봤다. 왜 나를 도와주려고 했는지. 


“나에게도 딸이 있다. 내가 오늘 당신을 도와준 것처럼, 훗날 내 딸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분명히 누군가가 내 딸을 도와줄 것이다. 당장 내가 준 도움이 상대방에게 바라지는 않지만, 분명 그 에너지는 돌고 돌아 필요한 순간에 돌아오게 되어있다.” 


이 한 마디는 내 인생 전체를 바꿔 놓았다. 

그때부터였다.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보면 계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도움을 준다는 것. 또한 항상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남편의 영향도 크다. 왜 저렇게까지 시간을 낭비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서”라고 대답하는 남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주변에는 항상 그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나 역시 이 믿음을 주변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갓 들어온 신입 사원이 일을 너무 못해서 본인 일이 늘어서 짜증 난다고, 얘가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짜증을 내는 친구에게, 항상 자기보다 못 한 팀원들 때문에 불만인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 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본인이 그런 경험이 있었다며 놀라워한다. 다만 우리는 깨닫지 못할 뿐이다. 


얼마 전 마다가스카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나라이다. 나는 여행 중 단 한 번도 바다를 만나지 못했다. 바오바브 나무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출발해서 10시간을 운전해야 하고, 뽀죡한 돌산 칭기를 보기 위해서는 14시간을 물 웅덩이와 진흙이 수 없이 펼쳐지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하는 험한 일정이었다. 거기다 우리는 코로나로 2년 간 폐쇄 후 첫 손님이었다. 가이드님도 2년 만에 처음 가는 길이라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중간에 차가 한 번이라도 퍼지면 고치는데 꼬박 하루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비행기 일정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이드님은 일주일 내내 마음을 졸이셨다고 한다. 


마지막 날, 다시 수도로 돌아오면 한숨을 쉬듯 말씀하셨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정말 기적에 가까워요. 얼마나 지영 님과 가족분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셨는지 알 수 있네요.” 


결국 모든 것은 통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믿는다. 누군가는 내게 너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고 하지만, 나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한다. 


오늘도 내게 도움을 주신 감사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미래에 만날 또 감사한 인연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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