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해산물을 사서 너무 행복했다. 오늘 점심에는 왕새우를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장보기를 마치고 차를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아까 그 양아치가 차 앞을 막아선다. 무서운 눈빛으로 위협하며 뭐라고 하는데, 혈기 왕성한 요미의 운전기사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 시작한다. 정글이 그러하듯 이곳에서도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법칙이 있다.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길 양 옆으로 주차를 해 놓았는데 아까 그 양아치 무리들이 나타나 주차비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지 돈으로 200 나이라 (500원)을 줬더니 500 나이라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요미는 500 나이라를 내어주었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운전기사는 절대 안 된다며 강경하게 반대했다. 급기야는 차를 길 중앙에 떡 세우더니 시동을 꺼버리고 차 밖으로 나가 용맹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300 나이라를 지키기 위해서.
갑자기 막혀 버린 그 좁은 길은, 양쪽에 울리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로 정신없이 시끄러웠다. 참다못한 요미가 결국 밖으로 나가 상황을 파악한다. 난 또 뭔가 심각한 일이 생길까 봐 긴장 어린 눈으로 창밖을 내다본다. 아무래도 내(외국인)가 차에 타서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미는 심각하게 그 양아치의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빅 보스는 쿨하게 500 나이라를 줬다.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요미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에 타자 마자 요미는 내 얼굴을 보고 미친 듯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기 시작한다. 영문을 모른 채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한다.
“너 부르스 리 알아?”
“부르스 리? 누구?”
뭐지? 많이 들어봤는데? 아직도 눈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아가며 웃는 요미를 보며 머리가 바빠졌다.
아. 이소룡???!!!
“와하하. 너 보고 브루스 리 여동생이래. 브루스 리 시스터가 시장에 까지 왔는데 어떻게 200 나이라만 내고 가냐면서 최소한 500 나이라는 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응???”
“더 대박은, 브루스 리 얘기하면 네가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오빠 얘기는 차마 하지도 못하고 말도 못 걸었대!! 죽은 브루스 리 얘기하면 네가 슬플 것 같아서. 아이고 배야 ㅋㅋㅋ”
“앍 ㅋㅋㅋㅋㅋㅋㅋ”
이제야 아까 그 시비 상황도 이해가 되었다. 브루니 시스터가 시장에서 왔는데 당연히 시장을 위한 지원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졸지에 이소룡의 여동생이 되어 버린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시장을 벗어났다.
아까는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더니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쿨하게 서로를 대하는 요미와 그 사람을 보며 참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당장이라도 서로 죽일 듯이 덤비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문득 어릴 때 친구들과 싸우면서 했던 말장난이 떠오른다.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지금이지!!!!"
어제 잘못을 하고도 오늘 또 뻔뻔하게 들이대는 그들을 이제는 이해한다.
오늘 시장에서의 에피소드는 그날 저녁 친구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덕분에 남편은 브루스 리의 제부가 되어 신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