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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부자언니 Feb 12. 2024

내 팬티는 누가 훔쳐갔나 (2)

우리 집에서 청소와 빨래를 담당하는 가사 도우미는 

내가 살고 있는 수도 라고스에서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저 먼 북쪽 지방에서 왔다. 

그러니까, 시골 아가씨다. 


이름은 빅토리아. 


삼십 대 중반의 그녀는 

커다란 눈망울에 호기심이 많고, 솔직하고 웃는 모습이 예뻤다.


나중에야 중학생인 첫아들, 그녀의 막내 딸이 내 막내딸과 같은 나이인 세 남자의 엄마이자, 

걷지 못하는 홀 어머니를 부양하고 

여동생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소식이 끊긴 그녀의 남편은, 아이들 조차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한 지 오래다. 



일 년 전, 처음 우리 집으로 왔을 때의 일이다. 


꽤나 똑똑해 보이는데, 

자꾸 아이들의 교복과 체육복을 섞어 놓는 것이다. 

아이들 옷 장은 이미, 이름 스티커가 붙여져 있고, 

혹시나 헷갈리지 않도록 

교복 상의, 하의, 체육복 상/하의 이런 식으로 코너마다 위치가 적힌 스티커까지 붙여 주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같은 실수를 하는 그녀를 보다가 


설마... 


글을 모르나....? 



조심스레 물어보니 

한참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끄덕.


 

아.... 



여자. 

엄마.

딸. 



우리가 여자 사람으로 태어난 공통점 외에, 

도망간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날 이미, 

그녀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뭔가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혹시 몸이 아프니? 

아니면 무슨 일이 있어? 


조심스레 물어보니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오늘 생리가 시작되었는데 생리대를 살 돈이 없다고 했다. 


하.....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고, 당장 가서 사 오라고 했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연민은 차곡차곡 쌓여갔고, 

그녀의 가족을 챙기는 내 마음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미국 여행 중에 비즈가 잔뜩 박혀 반짝이는 흰색 머메이드 드레스를 발견했다. 

세일 중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사이즈가 내게 조금 컸다. 고민하다가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나중에 좋은 남자 다시 만나서 결혼식 피로연에서 입으면 예쁘겠다. 


결국, 그 옷을 샀다.

아이 둘, 그리고 나까지 두 달을 여행하는 동안 가방이 터져 나가는데도,

그 한 켠에 그녀의 드레스를 소중히 보관해서 가져다주었다. 


입지 않는 옷, 

아이들의 학용품, 

아이들의 옷을 사주는 일이 늘어났고, 

조금만 열심히 해도 팁을 줬다. 

그래야 월급을 모아 가족한테 보낼 수 있을 테니. 

함께 한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녀의 아이 학비를 지원해 주기 위해, 적은 돈을 추가로 주면서 따로 저금을 시켰다. 

카메룬에 있을 때 나와 5년을 함께한 집사가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아이들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매 달 학비를 위해 모아 꽤 큰돈을 모아 준 적이 있었다.

그녀보다 오랫동안 일을 한 요리사에게도 하지 않는 이 혜택을, (왠지 모르게 해 주기 싫었다 이 사람한테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빅토리아에게 해 주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녀는 1년을 일 하면서 6주의 유급 휴가를 받았고, 

휴가 때 마다 200%의 보너스를 받았다. 

그 외에 각종 경조사 및 선물을 포함하면, 꽤 좋은 대우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내가 주는 가치 역시 그 이상이었다. 


두 아이가 정신없이 어지럽히는 방과 수많은 물건들, 

그리고 매일 구글 스피커에게 내 핸드폰의 위치를 물어보는 나의 덜렁거림은 

빅토리아에게 의존하는 또 다른 이유였다. 


빅토리아, 혹시 내가 그거 어디다 두었는지 알아? 


하면 곧 있을만한 자리에 가서 척척 그 물건을 찾아오는 영리한 그녀였다. 


뿐만 아니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 아끼던 귀고리 한 짝을 어디 가방에서 발견해 갖다 주고는, 

며칠 내에 또 어디서 다른 쪽을 찾아다 주는 기특한 사람이었다. 


글은 모르지만, 

타고난 센스가 있어서 어 하면 척 알아듣는 그녀를 

우리 워크숍의 보조 직원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하루 한 두 시간 워크샵에서 일을 하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사 도우미는 전화 한 통이면 당장 구할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직업이지만, 

그녀가 워크숍에서 나와 다른 직원들을 도와 ZAYU를 키워 나간다면, 

향후 그녀의 샵을 혼자 열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올 해부터는 그녀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여 테일러 일을 배우게 할 참이었다. 

여기서 3년만 일 해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본인 스스로 먹고 살만큼의 역량을 가질 터이다. 


그리고 초이가 이미 올해 목표 중 하나를 

빅토리아의 글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삼았다. 

글자를 읽는 삶은,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열어 줄 것이다. 



계획만으로도 난 너무나 설레고 신났다.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그녀와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내게도 정말 의미 있고 감사한 일을 터이다. 




#아프리카이야기 #아프리카 #아프리카에피소드 #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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