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속에서 나를 품다 R=VD
내가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불과 11살의 나이였다. 어머니와 함께 본 연극에서 극 중 몰입해서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과 커튼콜 때의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서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어느 모습이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일까? 연기란 무엇일까?"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에 격렬하게 맴돌았고 그날 이후 내 관심은 오롯이 연기로 향하게 되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네 대의 컴퓨터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기란’, ‘배우가 되려면’, ‘눈물 흘리는 법’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며 끊임없이 정보를 찾아 헤맸다.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결과, 연기를 전공하려면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야 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내 진로는 정해졌다. 아 물론 나 혼자만의 결정이었지만.
“엄마, 아빠, 나 배우가 될 거야.” 어느 날 용기 내어 부모님께 말했을 때 그들은 적잖이 당황하셨다. 어릴 적부터 낯을 많이 가리고 발표 시간에 교탁에 서기만 해도 두려움에 압도되어 목소리는 염소처럼 떨려 교실을 메아리치곤 했다. 그러니 부모님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아마 그들은 나의 꿈이 허황된 일시적인 열정이자 지나가는 바람처럼 금세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바닥 패턴을 분석하며 묵묵히 존재하는 관찰자에 불과했고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마치 코미디언으로 변신하는 '조용한 관종'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다소 새침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입을 열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극단적인 이중성은 어쩌면 무대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배우의 운명과도 닮아 있지 않았나싶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경직되어 있다가도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주인공이 된 듯 짜릿함을 맛보는 것이다.
그들에겐 나는 웃음의 샘이 되어 다른 이들의 곤란한 순간에 적절한 한마디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드는 '비밀 병기'가 되곤 했다.
이런 모순적인 나의 모습을 모르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를 계속 이어가기를 바라셨다.
예중, 예고 진학 이야기는 혀끝에만 맴돌며 조용히 삭혀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배우라는 꿈을 만지작거리며 그 윤곽을 감지하려 부단히 애를 썼다. 어느 순간 이런 나의 모순적인 모습이 연극의 대본처럼 느껴졌다. 여러 색깔의 조명 아래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들처럼 나는 내 안의 다양한 캐릭터를 찾아내며 성장해 나갔다. “이제 더 이상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실천할 때!”라는 마음속의 외침이 내 길을 인도했고 결국 나는 그 무대에 서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왜 우리 학교에는 연극 동아리가 없을까?”라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내 안에서 폭발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다. 정말 무작정이었다. 인문계 학교인 탓에 예술을 희망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고 연극영화과를 꿈꾸는 친구도 나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동아리를 만들려면 10명 이상의 적정 인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피켓을 만들고 쉬는 시간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홍보하여 20명이 넘는 친구들이 지원하게 되었다. 직접 면접을 통해 연극부를 창설할 수 있었고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예대 출신 선생님을 초빙하여 우리는 그 해 뮤지컬 <그리스>를 축제에서 올리게 되었다. 그 경험은 나의 막연했던 꿈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고 무대에 서는 순간,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반드시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될 거라고.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배우가 되는 꿈을 단순한 바람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나의 삶을 이끄는 중심이 되었고 내가 추구해야 할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서는 날,
나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