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
제목부터 강렬하다. <거미여인의 키스>. 거미여인이 키스한다면 그 맛은 어떨까. 빨강보다 검은 자줏빛 내지는 다크 와인색의 맛이 날 것 같다. 마치 독주를 단번에 마시는 것과 같은, 목이 타들어 가는 위험을 알면서도 거미줄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지고 싶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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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제목만큼이나 강렬하고 다양한 글쓰기 기법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액자식 구성을 통해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마치 거미여인의 얼굴에 겹겹이 치장된 베일을 벗겨내는 듯하다.
그러니까 희곡, 보고서, 각주 등의 방식이 절묘하게 섞여서 이전에 없던 아방가르드한 작품을 탄생시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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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념으로 감옥에 갇힌 발렌틴과, 미성년자 보호법을 위반하여 수감된 몰리나의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몰리나는 여성성을 지닌 동성애자이고, 발렌틴은 이성애자이지만, 몰리나의 지극한 보살핌에 점점 마음을 열어간다. 이 둘 사이에 성과 정치적 세계관을 뛰어넘는 감정적 파도가 일렁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이러한 감정의 변화는 섬세한 대화와 스토리의 변주를 통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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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삽입된 여러 영화 이야기는 몰리나가 발렌틴을 향해 느끼는 감정과 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메타포로 사용된다. 눈치가 빠르면 그 의미를 파악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나는 틀렸다, 다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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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또한 하나의 은유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거미여인을 ‘몰리나’로 보았다. 그의 촘촘한 거미줄로 발렌틴을 옭아매 마음에까지 속삭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문학’이라는 틀 안에 또 다른 예술 형태인 ‘영화’를 담아, 정치적 사상과 동성애 등 사회적 이슈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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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끝에서 몰리나의 희생적인 몰락에 가슴이 아려오고, 발렌틴의 냉정한 면면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과 다른 극과 극의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느끼는 감정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시각과 차원 높은 휴머니즘을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나의 개인적인 편견이나 사상이 나 스스로 옭아매는 치명적인 거미줄이 된다는 것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