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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네 Sep 20. 2022

VI. 그 젊은 음악가는
어디로 사라진 건가.

안나 본 디 베네치아 | 마지막편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 최연소로 입학하여 모두를 놀라게 한 신동.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의 오페라를 각 도시에 전파한 가수. 

바이로이트 궁정 안에서 실내악의 거장으로 불린 작곡가.

하이든과 함께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음악으로 가득 채운 음악가. 


이 모든 것을 단 한 명의 어린 여성 음악가가 이루어내었다. 보통의 음악가라도 이루어내기 힘든 이 모든 일을 이룬 다재다능한 안나가 에스테르하지 궁전에서 목격된 마지막 기록은 단 한 줄에 불과하다. 


화가 르 본의 '딸'이 에스테르하지 궁전을 떠남. 


에스테르하지 궁전에 발을 들인 순간에 빼앗긴 이름은 그 궁전을 떠날 때까지 돌려받을 수 없었다. 단지 28세밖에 안된 이 청년은 그렇게 에스테르하지 궁전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게르버가 편찬한 '작곡가 백과사전'은 오늘날에도 음악사의 중요한 사료로 인정받는다.


안나 본이 세상에 사라진 지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독일의 음악 학자인 에른스트 루트비히 게르버 Ernst Ludwig Gerber는 자신이 직접 하나하나 조사한 작곡가들의 생애를 묶은 '작곡가 백과사전'을 출판하였다. 완성된 책을 드문드문 넘기며 추억에 잠긴 그는 문득 한 음악가의 이름을 응시하였다. '안나 본 디 베네치아'. 게르버는 이 음악가의 생애를 조사할 그 당시의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에스테르하지 궁전을 떠난 이후 행적을 알 수 없었던 이 작곡가를 수소문하는 중 하늘에서 내려온 구명줄처럼 이 작곡가의 훗날을 아는 이를 만난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자신을 폰 임호프라고 소개한 남자는 게르버 앞에 앉아 자신이 들은 안나 본의 소문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알다시피 전 유럽을 휩쓴 이 유명한 가수가 에스테르하지 궁전을 떠난 후 행방은 오리무중으로 남겨져있지만 그가 전해 들은 바로는 이러하였다고 한다. 한창 유럽을 떠들썩하게 한 소프라노 가수는 에스테르하지 궁전을 떠난 이후 정처 없이 떠돌다 2년이 지난 1767년에 한 공작의 궁전에 당도하게 되었다. 그 공작은 바로 그 당시 바이로이트 궁전에서 빌헬미네 후작을 그렇게 괴롭혔던 시아버지의 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아버지와 다르게 활기찬 성정을 가진 이 아이는 프리드리히 3세의 궁전에서 빌헬미네 후작의 음악 교육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어린 공주는 궁전에서 고용인들의 입에서 나온 한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보기 드문 여성 음악가가 궁전에 고용되었는데 나이가 딱 자신과 동갑이라는 이야기를. 자신과 같은 나이라고? 그때부터 안나 본과 에르네스티네 아우구스테 소피 Ernestine Auguste Sophie 공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안나는 최고의 친구가 돼준 공주를 위해 활달한 공주와 닮은 자신의 하프시코드 소나타를 그에게 헌정하였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 공주는 힐트부르크하우젠 궁정과 맺어져 공작이 되었다. 그로부터 안나 본이 다시 한번 자신 앞에 나타났을 때는 어느덧 힐트부르크하우젠 궁전이 자신의 고향인 바이로이트 궁정보다 더 편안한 집처럼 느껴질 때였다고 한다. 세월이 그만큼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에르네스티네 공작의 활기찬 성정은 그대로였다고 한다. 몸에 꼭 맞는 사슴 가죽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말 위에서 우렁차게 사냥하는 것 또한 여전히 사랑하였고 빌헬미네 후작의 가르침에 알게 된 피아노와 플루트, 그리고 바이올린과 프렌치 호른을 연주하는 것을 여전히 사랑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안나 본이 자신 앞에 나타났을 때 공작은 그때 그 시절 그대로 순수한 기쁨에 휩싸여 자신의 단짝을 반기게 되었다. 큰 환대를 받은 안나 본은 그렇게 힐트부르크하우젠에 머물며 생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어느 날 새로운 터전에서 안나는 한 남자를 만나 오페라 공연을 이어나갔다고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남자는 잠시 자기 앞에 있는 물로 목을 축였다. 그 사람의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궁금함을 참지 못한 게르버가 물어봤을 때 폰 임호프는 축인 목을 아낀 채 고개를 저어 의사를 전하였다. 이윽고 목을 가다듬은 임호프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안나가 만난 그 남자의 이름은 전해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몬게리 Mongeri라는 성을 지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다고 한다. 평소 실내악을 사랑한 훌륭한 테너였다는 그는 안나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어디에나 들을 수 없는 천상의 하모니를 이루었고 이윽고 그들의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그들 또한 부부로 맺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안나 몬게리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말이다. 이후 그들의 삶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음악처럼 아름다운 여생을 맞이하게 되지 않았을까.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 임호프의 이야기를 들은 게르버는 자신의 원고에 '안나 본'이라는 항목에 더 많은 자료를 덧붙일 수 있다는 기쁨을 안고 남자에게 사례금을 안겨주고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사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 이야기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몬게리라는 훌륭한 목소리를 가진 테너는 이 시기에 이미 안나 본이 아닌, 어느 아내와 3명의 자식을 가진 남자라는 사실이 힐트부르크하우젠 궁정 교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안나 본과 결혼하였다면 교회 기록부에 안나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결혼식과 같은 행사는 당시 커다란 특종이었다. 이 말인즉슨 이러한 특종은 당연히 지역 신문에 수록되야하는데 유럽을 휩쓴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의 결혼식이 지역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는 점 또한 게르버가 남긴 이야기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오히려 학자들은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떠난 안나가 그의 단짝이었던 공작을 찾아간 것이 아닌, 보헤미아로 향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 연유는 바로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활동할 시절, 유일하게 남긴 한 점의 작품이 보헤미아의 한 성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별들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한다.
천국에 바쳐진
신성한 노래들.  

하늘의 별


짧지만 깊은 여운을 주는 이 한 편의 글은 바로 안나 본이 남긴 한 아리아의 가사이다. 라틴어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풍부한 꾸밈음과 하늘하늘 솔직한 감정대로 흔들리는 멜로디가 가슴에 진솔하게 전해진다고 한다. 아직 제대로 된 녹음조차 되지 않은 이 아리아는 주로 가수로 활동한 안나 본이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꾸준히 작곡 활동을 했다는 유일한 증거이자 오페라를 사랑한 빌헬미네 후작의 작풍을 그대로 전수받으며 빌헬미네 후작에 대한 존경을 드러낸 작품이다. 청회색의 올곧은 눈빛을 지닌 이 여성을 닮은 이 작품은 오늘날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 Český Krumlov 성의 한 편에 처박혀 빛바랜 악보로 전해졌다고 한다. 안나는 어쩌다 그 먼 보헤미아까지 당도한 것일까. 그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 채 20대 후반까지 많은 업적을 남긴 음악가, 안나 본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게 된다. 




Anna Bon di Venezia | Six Harpsichord Sonata No. 5 in B Minor: I. Allegro moderato


바로크 음악의 근간을 사랑한 안나 본 디 베네치아가 자신의 악기인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작품, 6개의 하프시코드 소나타는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매력을 펼쳐내는 작품이다. 처음 듣는 순간 수평적인 움직임이 전형적인 바로크 음악과 같지만 고뇌에 절뚝거리는 멜로디,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베이스와 멜로디를 맡은 점, 가벼운 느낌을 주는 얇은 텍스쳐는 물론 주제가 확장할수록 관계 조성으로 변조가 일어나는 새로운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기악 음악이 발전하게 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된 고전 시대의 소나타를 많이 닮은 이 소나타는 그래서 바로크 음악을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안나 본이 가족을 따라 에스테르하지 궁정으로 떠나는 것이 아닌 빌헬미네와 프리드리히 3세의 가호를 입은 바이로이트 궁정에 남아 계속 작곡 활동을 펼쳤다면 얼마나 더 다채롭고 신선한 작품들이 등장했을까 이따금씩 상상해본다. 가수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진 이 여성은 하프시코드에게 목소리를 부여하였다. 안나의 하프시코드 소나타는 유난히 한 명의 소프라노 가수가 아름다운 콜로라투라*를 선보이는 듯 하프시코드가 직접 화려한 꾸밈으로 가득한 노래를 직접 부른다. 안나는 인생의 악기로 선택한 하프시코드를 악기로 바라보지 않았다. 하나의 인격을 가진 사람, 그중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처럼 하프시코드를 다뤘던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 수 없는 이 젊은 작곡가는 오늘날까지 여생이 오리무중으로 남아있다. 바이로이트 궁정에서 실내악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받은 이 여성은 에스테르하지 궁정으로 이주한 후 단지 '딸'이라는 칭호로 위축되다 그렇게 빠르게 잊히게 되었다. 그가 작곡한 플루트 소나타는 당시 C.P.E. 바흐를 놀라게 할 정도로 큰 혁명을 이끌고 왔고 6곡의 즐거운 디베르티멘토는 두 대의 플루트가 서로 대위법적 대화를 나누며 왕왕 바이로이트 궁정에 울려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악보는 빠르게 한 구석에 처박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한 구석에서 점점 기억에서 지워진 빛바랜 악보는 언젠간 빛을 다시 보기 마련이다. 최근 안나 본은 다시 음악가들 사이에서 부활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점점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으며 그의 작품을 연주한 음반이 조금씩 발표되며 이 어린 작곡가의 참신함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빌헬미네의 가호 아래 작곡된 적은 양의 작품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작곡가의 음악 재능을 엿보는데 모자람은 없다. 이렇게 다시 발굴되어 무대에 오른 이 젊은 음악가의 햇살 같은 음악은 세상의 빛으로 나와 다시 한번 빛나게 되었다. 어두운 구석보다는 햇살이 어울리는 이 작곡가에게 더 많은 빛이 찾아오길 바라며 너무나 빨리 세상에서 지워진 이 여성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콜로라투라 Coloratura : 빠른 패시지나 트릴 등에 의해 기교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선율 


안나 본 디 베네치아 Anna Bon di Venezia (1738. 8. 10 ~?)




참고 자료

Wikipedia Deutsch

Vita-mine vag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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