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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타 Aug 10. 2023

요리로 사유하기

'나'와 요리


요리는 나의 생각과 감정이 손끝을 타고 짧거나 긴 여정을 떠나
비로소 한 접시 위에 놓여진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의식주(衣食住).

그중 음식은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화무쌍하게 우리의 머리와 입속을 드나든다.


때로는 ‘맛’이라는 감각으로 가장 쉽게 행복감에 빠지게 하는 것도 음식이다.


나는 10대 후반, 가장 잘 먹고 성장해야 할 나이에

그동안 가장 좋아했던 먹는 행복이 먹는 불행으로 탈바꿈되어 버린 식이장애를 겪게 됐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 예체능을 하고 싶었지만 공부도 놓칠 수 없었던 욕심,

막상 어렵사리 외고에 입학한 후에는 학업 스트레스와 꽉 막힐 듯한 환경의 불안감이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 사이에 불협화음을 빚어냈다.


 대개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먹는 것을 절제하면서 보편적인 것에서 충족되지 못한 왜곡된 성취감을 느꼈다.


수년간 식이장애를 겪으며 매일 음식은 투쟁의 대상이었다.

투쟁이라 함은 학업에 있어서의 부담과 욕심, 불만, 불안이 음식과 섭식으로 투영된 것이다.

음식에 대한 왜곡적인 집착과 행동은 단순 먹는 것만이 아니라

학업을 포함해 건강, 사회활동, 대인관계 등 많은 보편성을 앗아갔다.

지금이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보기까지는 짧지 않은 세월이었고

아픈 만큼 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극심하게 음식을 절제했던 그때, 나는 요리에 빠졌다.

나에게 있어 요리의 첫인상은 원재료가 창작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결과물로 탄생되는 것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의 발로였다.

우선 결과물의 맛의 여부를 떠나 내 생각과 움직임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눈앞에 내보일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물론 만든 요리를 가족들에게 선보이면서 느낀

내가 먹지 않는 것에 대한 궁핍한 대리만족도 컸으리라.


 요리는 나의 전공도, 그 어떤 학업도 아니었지만

밤잠을 새며 수많은 레시피들을 찾아보고 종합하며

나는 누구도 시키지 않은 무리한 열정으로 요리에 심취해 갔다.


그리고 몇 년 후, 어려서부터 항상 나를 괴롭게 했던 위장을 낫기 위해서,

또 나날이 요리를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강한 조리법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고민에 와닿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채식’이었다.


채식은 민들레 홀씨와도 같이, 비록 메마른 땅일지라도 어느 순간 홀연 듯 날아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연히 시작된 채식은 나에게 몸과 마음의 편안함으로 비롯되는 긍정적 에너지를 주었다.

요리에 빠진 후 음식을 만들고 행복하게 먹어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

몇 년 동안 방 내 방 안으로, 내 안으로 움츠렸던 몸을

바깥으로 조금씩, 조금씩 더 움직였다.


식사는 대부분의 사회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통과의례이자 친목의 수단이고 대화의 시간이다.

혼자서 먹을 것을 엄격히 절제하고 강박에 강박을 덧씌웠던

방 안의 나로서는 그것이 매우 견디기 힘들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유동적인 상황들에서

내가 만든 나만의 틀을 유지하기는 고역과도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내 삶을 통제하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가 만든 왜곡의 동굴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바로 치료 그 자체임을 인정하고 그 어둠을 벗어나야만 했다.


꾸준히 채식으로 먹고 소화하고 또 그 에너지로

스스로 맛있게 먹기 위한 채소요리를 만들었다.

레시피가 쌓이고 요리가 조금씩 더 능숙해질수록

삶의 어둠의 시기도 점점 밝혀져가고 있었다.


번번이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 되기도 하는 요리,

비로소 왜 음식은 마음과 정신을 반영하는 수단이자 거울이 되는지 매 순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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