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par for the course’는 직역하면, ‘코스에서 파를 했다’로, ‘기본’ ‘보통’ ‘늘 있는 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관용구는 골프에서 유래했다. 툭하면 회사에 지각하는 직원이 있어 “잰 왜 맨날 지각해? 무슨 일 있는 거야?”라고 동료에게 물으면 아마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It’s par for the course for him늘 있는 일이야."(마니아 타임스 2021.7.5.)
일파만파. 첫 홀에서 같이 라운딩 하는 네 명중 한 명이 파를 하면 스코어카드에 4명 전원 파를 기록한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골프 문화이다. 일파만파가 안 되면 한파만파(한국 땅에서 한 명이라도 파를 하면 전원 파를 기록)가 적용된다. 늘 있는 일이다.
골프는 개인별 핸디캡이 있다. 핸디캡이란 것은 최근 몇 회 라운딩 스코어를 평균한 것이 아니다. 핸디캡(지수)은 최근 20라운드 중 잘 친 10번의 기록을 평균한 것이다.(사실 여기에서 조정계수 0.96을 곱해야 하는데, 아주 복잡해서 여기에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전체 평균이 아니라 잘 친 순으로 50%를 평균하는 것을 보면 핸디캡이라는 것은 평균 이상의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목표치인 것이다. 이러한 핸디캡을 정확히 알고 적용하는 것이 공정한 게임을 하는 기준이 된다.(위키하우, 골프 핸디캡 계산하는 방법 2022.1. 26.)
그런데 골프 스코어를 항상 유리하게 적어서 본인이 상당히 골프를 잘 치는 착각에 빠지거나 스스로의 실력 자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한 첫 홀 일파만파, 중간에 멀리건 하나 받고, 2 퍼트 OK, 꺼내놓고 치시죠, 옮겨놓고 치시죠, 트리플 보기 이상 기록 않기, 마지막 홀 자동 올 파all par 등 스코어가 공정하지 못해서 정말 플레이어 스스로도 핸디캡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있다. 핸디캡이 어느 정도 일정하지 않으면 신뢰성도 떨어지고 주변 동반자들과 게임하기도 어려워진다. 제대로 쳐야 제대로 적는데 문제는 제대로 치지 못해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
2012년 7월 한국 미드아마추어 연맹이 주관하는 볼빅배 코리아 아마추어 최강전 4차 예선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골프를 친 이래 처음으로 공식경기에 참가해 본 것이다. 핸디캡이 +7(파 72 기준 79타) 이하인 아마추어가 자격을 얻어서 참가하는 대회인데, 나는 선수자격이 아니고 스폰서 자격으로 참가하여 공식경기를 해보는 기회가 있었다.
2012년 7월 16일, 한국 미드아마추어 골프연맹(KMAGF)이 주관하는 예선전 경기에 스폰서 자격으로 참가했다. 경기규칙에 따라 그대로 쳐보니 정말 힘이 들고 어려웠다.
연맹 경기위원들이 실제로 나와서 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벌타나 실격처리를 하는 가운데, 대회 규정에 의거 라운딩 한 결과를 계산해보니 점수가 많이 나왔다. 쿼드러플quadruple 보기(+4타) 2개, 더블 보기(+2) 4개, 보기(+1) 9개로 최종 스코어가 97이면 평소보다 15타 이상 높게 나왔다. 원인을 분석해보았는데, 주말 골퍼 대비 스코어에 영향을 주는 것이 크게 4가지였다.
첫째, 평소 화이트 티에서 치다가 블랙 티로 세팅된 코스에서 티샷을 하니 매홀 평균 30미터 정도 늘어난 거리를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파 3홀이 180미터 내외여서 한 번에 그린에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파 4홀도 360미터 이상이 되는 홀이 많아 투 온하기가 어려웠고, 특히 파 5는 530미터 내외이며 490미터인 경우는 오르막 경사가 심해서 일반 아마추어 골퍼가 세 번 만에 그린에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매홀 보기를 하는 것이 정상인 듯 느껴졌다.
둘째, 평소에 설치되어 있는 오비나 해저드 특설 티가 대부분 없다는 것이다. 한번 티샷 오비가 나면 계속 티잉 그라운드에서 샷을 해야 한다. 370미터 파 4에서 티샷 오비로 인해 5 온도 하지 못해 결국 더블 파를 했다. 페널티 구역인 해저드도 규칙에 나와 있는 3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다시 쳐야 하기에 생각보다 타수를 더 잃을 수도 있다. “이왕 한 타 먹는 것 좋은 위치에서 치시죠”라는 주말골퍼의 선의는 규칙에 없는 것이다.
셋째, 볼이 온 그린on green 될 때까지 절대 손을 댈 수가 없고 놓여 있는 상태 그대로 쳐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골프협회 골프규칙에 제일 먼저 나오는 규칙 1.1 골프게임The Game of Golf 정의를 보면 “플레이어는 원칙적으로 코스는 있는 그대로, 볼은 놓인 그대로 플레이하여야 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즉 라이를 개선하거나 공에 손을 대는 순간 골프게임에 위배되는 것이고 벌타를 받게 되어 있다. 디봇divot이든지 벙커bunker의 발자국이든지 공을 옮길 수 없다는 것이 일반 아마추어에게는 상당한 핸디캡으로 작용을 한다.
넷째, 퍼팅에서 1미터 내외의 짧은 거리에 대해 컨시드가 없다. 스트로크 게임에서는 퍼터로 홀 아웃을 해야 그 홀의 경기를 마치는 것이다. 아주 짧은 거리도 신경을 쓰며 끝까지 퍼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첫 퍼팅을 긴장하게 만들어 공을 홀컵에 붙이는 거리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승부를 가려야 하는 대회이기에 평소대비 핀 위치 자체가 조금 까다로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3 퍼터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골프에서 3 퍼트는 파를 절대 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으로 퍼팅 이전에 이루어진 굿 샷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외에도 카트를 이용은 하지만 공식경기라 평소보다 걷는 구간이 많아서 체력이 일찍 고갈되어 피로감이 많이 들었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 투수 중 한 명이었던 윤석민(35, 전 KIA 타이거즈)이 2021년 9월 3일부터 이틀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비즈플레이 전자신문 오픈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출전해 최하위로 컷 탈락을 하였다. 윤석민은 당시 이틀 동안 20 오버파 164타로 프로의 벽을 절감했다. 그는 “코리안투어에 참가하게 돼 큰 영광이었다. 다시 한번 KPGA 선수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걸어서 라운드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걸을수록 발바닥과 발목, 종아리, 무릎, 골반, 허리 등에 통증을 느꼈다. 정말 쉽지 않았다. 1라운드에 체력, 멘탈 다 무너졌다”라고 돌아봤다.(JTBC GOLF 2021.9.7.)
■ 이 시대의 화두 '공정성'
평상시에 공정하게 라운딩을 하지 않았기에 본인의 핸디캡을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매번 라운딩이 끝나고 나면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어제 술을 마셔서, 잠을 설쳐서 등 108가지 이유를 대면서 핸디캡 자기 합리화를 한다. 실제 본인이 얼마나 공정하게 스코어를 기록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골프를 치고 스스로에게 피드백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스코어를 기록하고 라운딩을 마치고 나면 이를 해석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스코어를 제대로 적지 않으면 피드백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LPGA 투어 우승을 72회 한 에니카 소렌스탐Annika Sorenstam도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을 이야기한다.
“나는 16세 때부터 라운딩 내용을 기록했다. 버디가 없는 아마추어의 대부분은 퍼터보다는 드라이버, 아이언, 어프로치 샷 중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고 고쳐야 한다. 기록은 나쁜 샷 수정에도 활용되지만 좋은 샷의 이미지를 기록해 놓아 그 행동을 반복적으로 해서 좋은 경기를 만든다.”(GOLF KOREA 방송 2020.6.9.)
최근에 공정성에 대해 젊은 층의 관심이 많아졌다. 공정한 게임이란 경기결과 스코어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기규칙을 준수하여 제대로 쳐서 개인별 스코어가 실력대로 기록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샷을 개선하거나 연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동기 부여시키는 공정성에 대해 많은 이론적 연구가 추진되어 왔으며 공정성 이론equity theory은 '분배적 공정성', '절차적 공정성', '상호작용 공정성' 세 가지로 구분된다.(위키백과 조직공정성 2022.1.26.)
'분배적 공정성distributive justice'에 대해 아담스J. S. Adams는 개인의 투입과 산출 비율과 타인의 투입과 산출 비율을 비교해서 공정성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내가 일을 많이 했는데 일찍 퇴근한 다른 사람과 대비해 월급을 적게 받으면 분배적 공정성이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티샷에서 멀리건mulligan을 받거나 애매한 해석이 될 수 있는 구역에서 무 벌타 구제를 받은 동반자가 파를 하고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가 파를 했을 때, 정상적인 파를 한 사람은 결과에 대해 심리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
레벤탈G. S. Leventhal은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justice'에 대한 인식은 개인들이 절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거나, 절차가 일관적이고, 윤리적이며, 정확하고, 공정하게 느낄 때, 절차적 공정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2020년 6월 인천 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중 일부를 정규직으로 고용을 전환하면서 일어나 논란은 '결과의 평등' 보다는 '경쟁 과정의 공정'을 중시하는 젊은 층의 시각으로서는 불만족스러운 조치로 인식된 것이다. 골프에서는 라운딩을 시작하기 전에 로컬 룰을 확인하고 팀 룰을 명확히 정하고 정확한 핸디캡을 적용해 주는 공정한 과정을 거쳐야 결과에 대한 수용성도 높아진다.
바이어스R. J. Bies와 모그J. F. Moag는 '상호작용 공정성interactional justice'을 신중하고 예의 있게 의사결정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정보를 전달할 때 개인이 받는 대우를 일컫는다고 정의했다. 분배와 절차 진행에 대한 의사소통에서 대인 간 공손하고 정중하게 대우받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골프에서 게임 룰을 결정할 때 권력, 정보, 연령, 그리고 재력이 앞선다고 공감대가 가지 않는 룰을 독선적으로 정하는 것은 상호작용 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세가지 중 MZ세대의 공정성 화두는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공감대 여부이다. 한국 여자 골프는 1900년 파리 대회 이후 116년 만에 부활한 2016 올림픽에서 박인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여자 골프에도 국가별 최대 인원인 4명(박인비, 김세영, 고진영, 김효주)이 나섰으나 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선수단에 쏟아지는 비난이 없었다. 넬리 코르다Nelly Korda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우리 선수보다 당일 컨디션이 좋아서 메달을 딴것이지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다. 당연히 세계랭킹 기준으로 선발을 해서 아무 논란거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선수 4명을 세계랭킹 순위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다른 방식으로 선발했다면 선발 절차의 공정성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결국 노메달 논란이 공정성 시비로 비화되었을 것이다.
한국 대표되기가 메달 따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있는 양궁 역시 선수 선발 공정성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다. 2021 도쿄 올림픽에서 안산 선수가 3관왕에 오름은 물론 한국은 네 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역시 세계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였다. 편법이나 특혜 시비 한 번 없이 바늘구멍에 비유되는 치열한 선발 절차의 공정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양궁은 6개월 동안 5차례 대표 선발전을 치렀다. 경쟁률은 30 대 1이 넘는다. 리우 2관왕 장혜진 선수는 3차 선발전에서 탈락을 할 정도이다. 대표로 뽑힌 선수들이 선발전에서 쏜 화살만도 1인당 1300발가량 된다. 매일 300발씩 1년에 10만 발을 쐈다고 한다.(동아일보 2021.7.5.)
2022년 양궁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60명이 동시에 사대에서 화살을 쏜다고 한다.(SBS 2021.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