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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연 Mar 02. 2022

11. 모든 홀에 존재하는 길흉화복

 골프와 인생의 길흉화복


  골프를 치다 보면 한 홀 안에서, 혹은 18홀 전체에서 변화무쌍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 파 4홀에서 드라이버가 잘 맞아서 100미터 이내 세컨드 샷을 핀에 붙여 버디를 노리겠다는 마음으로 쳤는데 뒤땅을 치고, 그 결과가 다음의 어프로치  샷에 영향을 주어 실수를 하게 되어 4 온 2 퍼터로 더블 보기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버디를 노리다가 더블 보기를 했으니 심리적으로는 3타를 잃은 기분이 든다. 전 홀에서 버디를 하고 아너honer 로서 기분 좋게 티샷을 했는데 오비가 나면 이러한 낭패가 없다. 방향이 잘못되어 해저드에 빠질 뻔한 공이 바위를 맞고 그린 안쪽으로 굴러 들어와 홀컵 옆에 붙는 경우도 있다. 골프를 쳐본 사람들은 간혹 이런 상황이나 이와 비슷한 순간을 경험하거나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 골퍼는 이와 같이 예상치 못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라운드 도중에 발생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래서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결과를 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점에서 골프는 세상에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다는 것을 일깨우는 운동인 것 같다. 다가온 행운이 불행이 되어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누가 봐도 확실히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나에게 행운이 되는 것을 보면 골프와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 변방 늙은이의 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중국 북방 요새 근처에 한 늙은이가 살았는데, 어느 날 늙은이의 말이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동정해서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하고 잊고 지냈는데, 얼마 후 그 말이 여러 마리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횡재를 축하했지만 늙은이는 '그것이 화가 될지 어떻게 알겠소'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오랑캐가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징집되어 전쟁에 나가 모두 전사했으나 노인의 아들은 무사했다. 말에서 떨어진 게 오히려 복이 되어 돌아온 셈이었다.(장원일, 핵심고사성어, 미래사 2021, pp.210-211.)

  새옹지마는 인생의 길흉화복은 늘 바뀌어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골프에서 샷이 일정하지 않고 일관성이 떨어지는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에는 새옹지마와 같은 현상이 언제 어디에서 든 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길흉화복 vs SWOT 분석

공이 잘 맞지 않을 경우, 자신의 스윙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나만의 안정된 스윙 루틴 유지에 필요한 5가지 사항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이를 중점적으로 확인한다.

  골프에서 일어나는 길흉화복에 잘 대처를 하는 것이 골퍼로서는 전략적인 방법이다. 심호흡이나 스윙 리듬 등 템포를 조절한다던지, 연습 스윙을 몇 번 더 해보는 등 종전의 좋은 샷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흥분된 기분을 차분히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잘못된 샷으로 인한 길흉화복에 대해 분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석을 잘해야 다음 샷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


  길흉화복(吉凶禍福: 길할 길, 흉할 흉, 재앙 화, 복 복)을 분석한다는 것은 어쩌면 SWOT 분석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SWOT 분석은 기업의 내부 환경과 외부환경을 분석하여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위협threat 요인을 규정하고 이를 토대로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기법으로, 미국 경영컨설턴트 알버트 험프리Albert Humphrey에 의해 고안되었다.(이승주, 전략적 리더십, 시그마인사트컴 2005, p.74.)

  길(吉)할 일과 흉(凶) 한 일은 개인을 중심으로 내부적으로 이루어지거나 발생 가능한 일 들이다. 길(吉)할 일은 개인의 운세가 틔어 '강점'이 되며, 흉(凶) 한 일은 가급적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로서 남들이 흉을 보는 것이어서 '약점'이 되는 것이다. 천재지변과 복권 당첨과 같은 재앙과 복이라는 것은 개인이 예측 가능하거나 인위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외부적 영향이다. 재앙(禍)은 뜻하지 아니하게 생긴 불행한 변고로 '위협'요인이 되고, 복(福)은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으로 '기회'요인이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샷의 결과 발생한 길흉화복을 잘 분석하여 전략적으로 진행해야 좋은 스코어를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골프가 즐거운 것은 내가 잘 쳐도 좋고 상대가 못 쳐도 좋은 운동이라고 한다. 길흉화복에 따라 동반자의 심리가 작용을 한다. 상대방이 그린사이드 벙커에 들어간 공을 칠 때, 손가락을 꼽으면서 몇 번을 칠 것인지를 예상하고 있는데, 한 번에 홀 인이 되거나 핀 옆에 붙이게 되면 정말 어이가 없어진다. 반면에 벙커 탈출을 못한 동반자의 불행이 가져오는 숨길 수 없는 즐거움, 즉 상대방의 불행에 기쁨을 느끼는 이런 감정을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한다. 손해를 뜻하는 ‘샤덴schaden’과 기쁨이라는 뜻을 담은 ‘프로이데freude’를 합성한 이 단어는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을 표현한다.(최영준, 왜 타인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낄까?, KISTI의 과학향기 제3505호, 2020.2.5.) 

  잘 나가던 직장 동료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속으로 고소함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유명 정치인의  거짓말이 온라인에 화제가 되어 지탄을 받을 때 정의가 실현되는 느낌을 받는다. 외교관계가 좋지 않은 주변 국가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하늘이 그들의 잘못을 응징하는 기분이 든다. ‘참 깨소금이다’라고 느끼는 것이 샤덴프로이데이다

  샤덴프로이데는 소외와 분열을 부추기는 감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거기에는, 혼자 실의에 빠지기보다는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는 우리의 욕구가 담겨 있다.(티파니 와트 스미스,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다산초당 2020, pp.32-33.)


 프로도 운이 따라야 한다


  골프도 가끔은 운이 따라 주어야 한다. 특히 프로들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그날따라 중장거리 퍼팅이 잘 들어가는 선수가 리더보드 상단에 있을 확률이 높다. 중장거리 퍼팅도 실력이라면 실력이지만 그래도 약간의 운이 작용을 해야 홀 인이 되는 것이다.


  박민지 선수가 2021년 6월 20일 충북 음성 레인보우힐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했다. 최종일 17번 홀까지 16언더파로 박현경 선수와 동타였지만 18번 홀에서 3번째 아이언샷을 해저드 건너 핀 1미터 안쪽에 붙여 버디를 해서 우승을 했다. 그런데 인터뷰에서 반전이 있었다. 박민지는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는데, 사실은 미스 샷이었다. 방향을 중계탑(핀 우측)을 보고 쐈는데 살짝 드로가 먹히면서 곧바로 핀을 향해 날아갔다. 핀을 바로 봤으면 해저드에 빠졌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다.(OSEN 2021.6.20.)

  이와는 반대로 참 운이 없는 경우도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투어에서 신경철 선수는 2018년 11월 1일 제주 세인트포CC 에서 열린 A+라이프 효담 제주오픈 1라운드에서 파 4홀인 4번 홀에서만 OB를 무려 7개나 내는 불운을 겪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18타(+14) 만에 홀 아웃했다. KPGA 사상 ‘한 홀 최다 OB’ ‘최다 타수’ 불명예 기록을 안았다. 그는 “샷이 안 되고,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프로로서 경기를 중간에 포기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면서 ‘프로정신’을 강조했다.(문화일보 2018.11.2.)

2018년 10월 10일 경기 용인 화산CC에서 생애 처음으로 홀인원을 했다. 홀인원 발생 확률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한다.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서 공자는 “지지자(知之者)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 호지자(好之者) 불여낙지자(不如樂之者)라고 말한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골프에서는 즐기면서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이 말에 한 구절을 더하자면 ‘즐기는 사람(樂之者)은 운 좋은 사람보다 못하다(不如運之者)’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회사를 직접 경영할 때도 “나는 운이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뽑았다. 그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차피 잘 될 거야’라는 느긋함이 숨어 있다. 느긋함은 두려움을 이기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런 사람들은 매사에 감사해하고 그런 사람들에겐 기쁨과 행복이 항상 찾아온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운이 좋다는 것은 한마디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인 셈이다. 어린 시절 워낙 가난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마쓰시타는 아주 병약한 체질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큰 뜻을 품고 남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했고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됐다며 가난과 병약함을 ‘타고난 운’으로 여겼다고 한다.(한경비즈니스 2012.2.3.)


  일생을 살아가면서 시작에서 웃는 것은 ‘교만(驕慢)’, 중간에서 웃는 것은 ‘자만(自慢)’, 마지막에 웃는 것을 ‘충만(充滿)’이라 한다. 골프는 우리의 인생과 같이 길흉화복이 번갈아 일어나는 운동이다. 우리 모두 골프 장갑을 벗을 때까지 라운딩에 집중하면서 18홀 마지막에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한 샷 한 샷에 정성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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