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연 Mar 16. 2022

15. 퍼팅은 또 다른 게임(Ⅱ)

 그린을 읽는 3가지 유형: 합리적 모델, 제한된 합리성, 직관


  사람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주로 3가지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편이다. 합리적 접근방법, 제한된 합리성, 그리고 직관 이 세 가지이다.(Richard L. Drft, 조직이론과 설계, 한경사 2013, pp.301-308.) 퍼팅에서도 플레이어가 라이나 경사를 읽는데 이세가지 방법이 활용이 되는데, 이는  개인 성격이나 핸디캡에 따라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⑴ 합리적 접근방법(합리적 모델)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을 하고, 해결안을 선택하고 시행하는 단계들을 논리적으로 순차적으로 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의사결정 단계에서 비체계적이고 임의적으로 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합리적 의사결정 모형은 매우 이상적이나 불확실하고 복잡한 변화가 있는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을 수가 있다.

  퍼트를 하는 경우 합리적 접근 방법을 쓰는 사람들은 캐디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경사가 어느 정도 되는지, 라이가 홀컵에서 어느 정도 되는지, 그리고 그린 스피드가 얼마인지와 같은 여러 가지 사항을 묻는다. 더한 경우에는 경사가 몇 도 혹은 몇 퍼센트가 되는지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마다 눈의 차이가 있어서 캐디가 그린 경사가 몇 도 인지를 정확히 알기도 어렵고, 예를 들어 20도라고 이야기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20도의 개념이 다를 수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감의 결여로 아무래도 정확한 퍼팅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5미터 이내의 짧은 거리의 퍼트가 남아있는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홀 인을 노리는 경향이 있어 '많은 정보를 분석하는 합리적 모델 방법'에 따라 퍼팅을 할 가능성이 크다.


  ⑵ 제한된 합리성

  의사결정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하고 시간이 부족하면 체계적인 분석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모든 경우의 수를 충분히 고려하기가 어려운 경우나 복잡한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선택하는 경우 취업이 가능한 수백 개 회사를 모두 다 다니면서 원하는 직장을 선택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과 비용의 제약, 그리고 본인의 자력을 고려하여 그 수에 훨씬 못 미치는 몇몇 기업을 선택하여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린에서 제한된 합리성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할 경우는 주로 10미터 이상의 중장거리 퍼팅을 할 경우에 이 방법이 많이 적용된다. 사람들은 3 퍼트가 나오지 않고 2 퍼트로 마무리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분석을 하지 않고 가급적 홀 인근에 붙이는 퍼팅을 하게 된다. 완벽한 그린 경사나 라이를 계산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good enough’고 생각되면 첫 퍼트에서 공이 홀컵 인근에 도달하기를 기대하면서 퍼팅을 한다. 이 때는 캐디에게 세부적인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다.  

볼이 그린에 올라가면 반드시 마크부터 해야 한다. 특히 중장거리 퍼팅 시 방향이 다르다고 그냥 두는 통에 간혹 2 벌타를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KGA 홈페이지)


  ⑶ 직관

  논리적인 과정이나 명백한 추론보다는 경험과 판단이 활용된다. 직관은 잠재의식 속에 쌓여 있는 오래된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독단적이거나 불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을 활용하면 문제를 빠르게 감지하고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능적인 느낌과 예감을 통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가 있다.

  그린에서 캐디에게 질문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라이를 보며 홀컵 앞뒤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이 보기에 애매한 상황이 있으면 캐디에게 한번 정도 확인을 위한 질문을 한다. 이런 사람들은 고수들로서 그린에서 2미터 이내의 짧은 거리의 퍼트를 실수할 확률이 매우 낮고, 중장거리 퍼팅도 공을 홀컵 인근에 잘 붙인다. 소위 말해서 감각적으로 퍼팅을 하는데, 수많은 퍼팅 경험을 바탕으로 직관적으로 라이나 경사를 보고 퍼팅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린에서 캐디에게 질문이 많고 캐디 의존도가 높을수록 퍼팅에 대한 직관이 생기지 않는다. 퍼팅에서 직관을 키울 수 있도록 그린을 읽는 경험치를 스스로 지속적으로 축척해 나가야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다.  


 네벌 업, 네벌 인Never up, Never in 


  "퍼팅할 때 공이 홀에 미치지 못하면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디오픈The Open을 4차례나 제패한 '골프 전설' 톰 모리스Tom Morris(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격언이다. 미국 골프아카데미에서는 실제 프로 지망생들에게 "17인치(43cm) 지나가게 퍼팅하라"라고 가르친다. 17인치는 쉽게 1 퍼트로 마무리할 수 있는 거리다. 미국에서는 "짧은 퍼팅은 골프 역사 300년 동안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아시아경제 2018.9.5.)    

  아마추어 골퍼는 이 격언을 잘 지키려고 너무 세게 쳐서 홀컵을 많이 지나치면 3 퍼트를 초래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골프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3 퍼트를 방지하기 위해 교토삼굴(狡兎三窟: 현명한 토끼는 숨을 수 있는 세 개의 굴을 파놓는다 라는 뜻으로, 지혜롭게 준비하여 어려운 일을 면한다는 의미)을 생각하며 쳐야 한다. 다음의 남은 퍼트가 내리막이나 슬라이스 혹은 훅과 같은 옆 라이가 되지 않도록 첫 퍼팅을 유의해서 잘 쳐야 한다. 내리막 급경사일 경우 무리한 퍼팅이 4 퍼트라는 어마한 화를 부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듯이 ‘네버 업, 네버 인’도 절대적 명제는 아니다. 내리막 경사에서는 짧은 것보다는 약간 길게 쳐서 다음 퍼팅은 오르막이 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때도 있다.

경기도 과천시 자하동길 과천 골프연습장 락카 입구에 ‘Never up, Never in’을 한자로 표현한 '부달불입(不達不入)' 액자가 걸려있다.

  퍼팅을 하다가 홀 컵 옆에 짧은 거리가 남게 되면 일반 아마추어 골퍼의 경우 홀 아웃을 끝까지 하지 않고 ‘컨시드concede’를 주게 된다. 컨시드는 매치 플레이 방식 골프 경기에서 짧은 거리 퍼팅을 성공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것을 말한다. 흔히 '오케이OK'라고 하는 컨시드는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1m 안팎의 거리 정도에서 용인이 되나 승패와 상관없으면 아주 먼 거리도 컨시드를 주고받는다.


  2021년 9월 미국의 압승으로 끝난 미국-유럽 골프 대항전 라이더컵 때 브라이슨 디샘보Bryson DeChambeau(미국)는 짧은 거리의 퍼트에 컨시드를 주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퍼터 샤프트 길이 남짓 퍼트라면 컨시드를 주는 게 관행인데 주지 않았다고, 퍼트를 그린에 눕혀 거리를 재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연합뉴스 2021.10.18.)

  이렇듯 컨시드에 대한 딱 부러진 기준이 없다 보니 컨시드 여부를 놓고 마음 상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일반 아마추어 골퍼들은 매치 플레이가 아니라도 컨시드를 주고받는 게 일상인 한국에서 컨시드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는 일도 더러 있다. 받을만한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컨시드를 주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컨시드 때문에 생기는 불화는 야박한 컨시드에서 비롯되는 게 일반적이다. 더구나 네 명이 함께 골프를 치는데 상대에 따라 컨시드 기준 거리가 다르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도 있다. 명랑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컨시드 기준 거리를 첫 홀 티샷 이전에 팀 룰로 미리 정해놓고 지키는 것이 좋다.


   퍼팅에 부여되는 또 다른 의미는 한 홀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타이거 우즈Tiger Woods의 아버지 얼 우즈Earl Dennison Woods는 “한 홀의 시작은 티잉 구역이 아니라 그전의 퍼팅그린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우리가 운전을 하다가 터널을 빠져나갈 때, 터널의 끝은 새로운 도로의 시작이라는 의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이전 홀 그린에서 버디를 하게 되면 다음 홀에서 티샷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전 홀 퍼팅그린에서 버디로 감정이 격해져서 다음 홀 티샷을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숏 퍼트를 놓치거나 3 퍼트를 한 경우에도 아쉬운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다음 홀 티샷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이전 홀 퍼팅그린이 한 홀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봄직하다.

작가의 이전글 14. 퍼팅은 또 다른 게임(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