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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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구름


나의 집은 암흑으로 둘러싸인 동굴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였고 나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거기 누구 있어요?”

기나긴 침묵을 깨트린 그가 내 영역을 부수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자, 여긴 살기 좋지 않아. 밖에 나가면 먹을 것도 마실 것도 훨씬 더 많아.”

난생처음 보는 소년이 등불을 내밀었다. 평온이 깨져 귀찮고 신경질 날 만도 한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의 손에서 불을 받아 들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을 상처받지 않으니 평화로운 생활이라 스스로 속인 것을 깨달았다.

“왜 이제 왔어!”

초면인 아이에게 대뜸 서러움을 쏟아부었다. 지난 9년간,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혼자였다고. 함께할 사람은 없었다고. 친구가 한 명도 없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다른 애들 눈치 보느라고 나랑 안 어울렸다고. 그럼에도 소년은 그냥 가만히 하나하나 귀담아들을 뿐이었다.

“오늘부터 내가 있을 거야!”

말간 웃음을 띠는 그의 얼굴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동굴 밖의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 * *

자퇴하고 싶다.

중학교 2학년쯤부터 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학교생활은 늘 단조로웠다. 조례, 수업,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엔 혼자 책 읽고 청소 끝나고 종례. 특별히 즐거운 일도 괴로울 일도 없었다. 애초에 아무도 나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나도 억지로 어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특별히 없었다. 아, 속으로 별로 안 좋아하는 아이는 조금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은 무례하지 않았고 나를 괴롭히지도 않았다. 단지 서로 이질감을 느꼈을 뿐이다. 아무래도 취향도 생각도 사고방식도 다른 사람을 어린 중학생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미리부터 마음에 벽을 치니 그 아이들 입장에서도 내게 먼저 다가올 분위기로 보이지 않았다. 그다지 목소리가 큰 편은 아니기에 행사와 학생들의 의견 위주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이 학교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원래 자신감이 바닥을 기어 다녔던 나는 단지 나서서 활동지 않는 것에 불과함에도 학교 분위기에 휩쓸려 자괴감에 빠졌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긴 것이다.

내가 왜 살아있어야 할까?

이득이 되어줄 사람이 아닌데. 계속해서 이러한 생각만 드니 별로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죽음을 생각하는 나를 간신히 땅에 묶어두고 있었으니 혼자서 생활하는 편이 스트레스만 받는 것보단 더 편안해 보였다. 허구한 날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 먹으며 동정 어린 시선 받는 것도 지겨웠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부모님께서 고등학교 가서 생각해 보라고 하셨기에 말씀을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말이 쉽지, 할 수 있겠냐고. 학교를 어떻게 다녀.’

위안이 되는 것은 중학교 때부터 좋아한 희재가 같은 반이라는 것이었다. 말투는 자신만 생각하는 듯 보이지만 행동이 워낙 세심하고 아이들을 한 명씩 챙겨서 별로 살갑지 않음에도 모두의 신뢰와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우리 반의 암묵적 반장이었다. 희재 보면서 1년 버티자. 마침 짝으로 같이 앉으니 기가 막힌 얼굴 옆선이나 슬쩍 감상해야겠다. 그래도 늘 그랬듯이 별로 희망적인 학교생활은 아닐 것 같기에 우울하던 순간이었다.

“우와, 여기가 더 넓어!”

교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다른 반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안녕? 이름이 뭐더라? 내가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지?”

그가 곧장 내 앞으로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의외의 상황이었지만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늘 처음 만났어. 난 서봄비.”

“봄비구나! 이름 예쁘다. 난 선우야!”

1학년 4반 차선우. 나의 고등학교 3년이 이 녀석으로부터 시작될 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