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alone
돌이켜보면 이 사건의 작은 불씨는 코로나19로부터 발화되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내가 뮤지컬을 자주 볼 일도(해외여행에 쓸 돈 다 씀), 공연장 근처에 사는 친구가 황금 같은 토요일에 집에 있을 일도, 그렇게 성사된 급만남에서 광화문 맛집탐방 대신 굳이 배달을 선택할 일도, 그래서 10년만에 처음으로 방문한 친구네 집에 홀딱 반할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첫눈에 반한 적이 없던 난, 이 집 덕분에 한눈에 반한다는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원룸이라길래 대학생 시절 동기 녀석들이 술판을 벌이던 개판오분전의 자취방을 생각했는데, 전면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찬란한 햇살이 웰컴인사를 건네는 밝고 아늑한 방이라니! 심지어 주방은 방과 분리되어 있었고, 방은 적당히 작아서 침대 구석탱이를 내어주지 않아도 손님 두어명은 재워줄 수 있는 크기였다. 최상층인 18층에 위치해 있는 것도 좋았다. 층간소음이 없을테니까. 게다가 당시 뮤지컬에 꽂혀 일주일에 두 번씩 세종문화회관을 가던 시기라, 위치가 광화문이라는 것도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오자마자 방에 홀려 감탄을 금치 못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집주인마저 모 대학교 교수라 신분이 확실해 보증금 날릴 걱정이 없다며 이 집의 완결성에 방점을 찍었다.
결국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공연 관람날의 오랜 루틴인 관람후기를 쓰는 대신, 네이버 부동산과 호갱노노*앱을 켰다. 그리고 폭풍검색 끝에 깨달았다. 친구가 알려준 집세는 집주인의 특성과 호의가 반영된 가격임을, 이 짝사랑은 자각과 동시에 고이 접어야 하는 것임을. 그래, 나도 집에 가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내 방 있어! 어차피 하루에 한두시간 핸드폰 보는거 방에 누워서 보나 지하철에서 보나 똑같지 뭐. 이 월세 낼 바엔 뮤지컬을 6번 더 보면 되지 흑흑.
이렇게 자본주의에 굴복한 정신승리로 종결되는듯 했으나, 급작스런 친구의 결혼으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니, 코로나 때문에 미국에 사는 남자랑 페이스타임으로 소개팅을 했다는 것부터가 충격이었는데, 6개월만에 그 남자랑 결혼을 하고 미국에 간다고? 경악과 축하를 동시에 건네는 한 편,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집을 쟁취할 타이밍이라고. 그리하여 흰 눈으로 뒤덮인 서울을 배경으로 친구가 다소 파격적인 소식을 전해준 어느 겨울날, 나는 청첩장보다 집주인 연락처를 먼저 받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대소사는 얼떨결에 한 배를 타게 되었다.
이후의 일들은 한동안 순조로웠다. 이사는 친구의 출국일에 맞춰 하기로 했고, 남는 기간에는 집주인이 도배와 세탁기를 새로 해주기로 했으며, 직계약인 덕분에 복비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는 산 지 2년 된 에이스 침대와 발뮤다 전기포트, 블루보틀 드리퍼에 서랍장 4개, 테이블, 의자, 전신거울까지 독립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사하고 가기로 하였다. 몸만 오면 된다는, 세상 제일 로맨틱한 이야길 친구에게 들을 줄이야. 당근마켓을 뒤로한 그 우정에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수많은 예비부부의 결혼식을 연기하게했던 거리두기 4단계 정책, 바로 하객 제한이 생긴 것이다. 가족과 친인척 50인만 부를 수 있다는 정책에 많은 예비신부들은 울며 결혼식을 미뤘고, 친구도 잠시 멘붕에 빠졌다. 그러나 출국 일정도 있고 애초에 결혼식을‘해치워야 하는 과제’정도로 생각했기에, 친구는 조금 아쉽지만 부케를 받기로 한 나만 오면 된다며 때마침 성(姓)이 같은 나를 친척 명단에 올리고 원래 일정대로 식을 진행했다. 정말이지 그 한여름에 잘 어울리는, 살면서 만난 가장 쿨한 신부였다.
그렇게 친구의 호의와 추진력에 힘입어 2021년 8월 7일, 방에 있던 공기청정기 한 대와 한 몸 가릴 옷가지만 들고 얼레벌레 서울시 1인가구에 편입하게 되었다.
* 호갱노노 : 단지별 전세/매매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스마트폰 어플로, 회사 사람들에게 사는 건물명을 알려주면 즉시 어플을 켜서 검색하는 경악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