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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Mar 12. 2022

Chapter 5. 따릉이 라이더가 되다

나 드디어 경의중앙선 탈출했다 흑흑

 살면서 전학을 가 본 사람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아무래도 미성년자의 세계란 물리적 거주지에 크게 의탁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엔 온라인 주거지의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겠다) 양육자들이 아이들의 전학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자이지 않으려나. 일단 나는 후자에 속한다. 운 좋게도 유치원 입학 전 송파구로 이사 와서 신입사원 딱지를 뗄 때까지 큰 이사를 해본 적이 없다. 거여동에서 오금동으로, 오금동에서 마천동으로의 이사는‘나 이사간다’라고 친구들에게 비장하게 말하기엔 조금 많이 부족했다. 지하철로는 한 두 정거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심지어 타는 버스 노선은 동일하여, 등하굣길을 함께하며 쌓아가는 그 시절 우정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십 대의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이모를 따라 남양주로 이사 간다고 선언했을 때 큰 충격에 빠졌다. 스물다섯 주제에 동네 친구들과 헤어질 수 없다며 이사를 반대하는 남동생을 보며 네가 애냐고 비웃는 동시에, 양재에 살던 그 시절 남자친구와 물리적으로 멀어진다는 사실에 몰래 우울해했다. 한창 야근을 빙자한 저녁 회식에 불려 다니던 2년차 직장인으로서 도시를 넘나드는 출퇴근러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 또한 마음 한구석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이사 간 집에서 서울역에 갈 수 있는 최적의 교통수단은 경의중앙선뿐이라고 했다. 아니 저 문장이,‘최적의 교통수단’과‘경의중앙선’이 양립 가능한 단어였던가? 대체로 출근에는 버스보다 지하철이 낫다고들 하지만 그건 경의중앙선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나마 악명 높은 다른 노선들, 미친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9호선이나 고성방가와 정체 모를 지린내가 잠복해있는 1호선보다는 나은 편이긴 했다. 낑겨 가는 일은 드물었고 지상철이라 환기가 잘 되곤 했으니. 하지만 환기가 잘 된다는 점은 필연적으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따라서 기온차가 극심한 사계절 덕분에 냉동고와 찜기를 오가는 냉동만두의 삶을 사는 한국인으로서, 실외 역사가 있는 전철을 이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경의중앙선은 한 시간에 네다섯대밖에 없는 주제에 양보도 잘했다. 가뜩이나 시간표보다 늦게 와서 마음이 바쁜데, 항상 KTX나 무궁화호 같은 아이들에게 몇 없는 선로를 먼저 내어주곤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할 적에는 강릉을 오가는 열차 때문에 평소보다 15분씩 늦었다(심지어 평소에도 이미 10분 늦은 것이었다). 분노에 가득 차 민원을 넣은 나에게, 비싼 열차가 먼저 가는 것은 세상의 당연한 이치라는 논리를 설파한 코레일 직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저씨도 연봉순으로 퇴근하세요 그럼.


 독립 덕분에 지난한 설움의 시간을 뒤로하고 서울에서 버스로 출근한 작년 여름의 어느 날, 입사 이래 가장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을 했다. 아니 (비록 얼마 못 가긴 했지만) 출근길과 즐거움이 공존할 수 있는 단어였던가? 둘 중 하나를 죽여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역까지는 단 세 정거장이었고 버스는 한적해서 2인석에 1명씩 앉아있었다. 심지어 한 대를 놓쳐도 이어서 또 한 대가 곧 도착 예정이었다. 미소를 감출 도리가 없었다.

 내친김에 퇴근길은 걷기로 결심했다. 시내 한복판이라 걷기에 썩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애플워치를 선물 받은 이후로 운동량 달성에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던 때라 겸사겸사 걸어보기로 했다. 화재와 세월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숭례문을 지나 시청을 향하고 있는데, 인도 가장자리에 평소에 보지 못했던 붉은색 길이 눈에 띄었다. 바로 자전거 전용도로였다. 서울 한복판에 자전거 길이 있던가?  길바닥에 오밀조밀하게 그려져 있는 자전거 그림을 한 번 인식하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서울의 명물이라던 따릉이 거치소가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니 따릉이는 한강에서나 타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집 바로 건너편에도 따릉이 거치소가 있었고, 내 출근길의 90%는 자전거 전용도로로 이어져 있었다. 흠, 이게 바로 운명인가, 그렇다면 내가 모른척할 순 없지.

 당장 다음 날 도전해 봤다. 변수를 생각해서 출근길은 버스를 타고 퇴근길에 따릉이를 시도했다. 그리고 또 금세 신이 나고야 말았다. 아니 퇴근만으로 이미 행복한데 도심을 바람같이 달려 20분만에 집에 오다니! 심지어 따릉이는 24시간에 천 원이고 1개월에 5천 원이며 1년에 3만 원인 미친 가성비인데! 땀에 젖은 등과 운동 목표를 달성했다는 애플워치의 알람이 뿌듯함을 더해주었고, 그렇게 나는 생활체육인이 되었다.


 이제 막 최애가 생긴 사람들이 그렇듯,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따릉이의 장점에 대해 설파하기 시작했다. 따릉이로 출퇴근하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이 시국에 대중교통을 안타도 되고 가격도 합리적인 데다가 운동도 되니 얼마나 합리적인 교통수단인지. 하지만 이는 수요 없는 공급이었고 따라서 실패한 영업이었다. 내 주변엔 어딘가에 실려오는 것만으로 출퇴근에 쓸 수 있는 기력을 다 쏟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자전거 출퇴근에 매력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은 대중교통 출퇴근이 더 빠른 지역에 살고 있었다.

 결국 허공에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따릉이 영업은 곧 관두고, 자동차로 30분 이내의 목적지는 전부 따릉이로 가보겠다는 의욕 넘치는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덕분에 알았다. 지도 앱의 예상 소요시간은 숙련된 라이더들 기준이라는 것을, 서울은 생각보다 언덕이 많은 도시라는 것을, 테니스 레슨 후 따릉이를 타고 집에 가는 것은 오래달리기를 한 바퀴만 돌고 포기하던 나에게 엄청난 무리수라는 것을(1시간이 걸렸다), 따릉이는 포기하고 싶다고 아무 데서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반납장소까지 꾸역꾸역 가야만 한다), 찻길에 그려져있는 자전거 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매연과 경적음에 놀란 내장기관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일임을.

 결국 조승우가 나오는 뮤지컬을 보겠다고 열심히 티켓팅을 해놓고, 광화문에서 신당역 충무아트센터까지 차도를 따라 땀 흘리며 공연장에 가서 그날의 기억이 사라진 이후로 이 무모한 도전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저 출퇴근과 발레 수업을 갈 때 가볍게 타는 것으로, 굳이 하고 싶으면 주말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으로.


따릉이에 미쳐있던 지난 7개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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