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ome alo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Feb 26. 2022

Chapter 4. 네버엔딩 집들이

혼자 살지만, 혼자 있고 싶어요

 청첩장을 돌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가 ‘누구한테까지 연락을 할 것인가’ 라고 한다. 갑자기 연락해서 결혼 소식을 전하는 모습이 마치 축의금 수거를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혹은 부담스러울까 봐 연락하지 않았더니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고 섭섭해할까 봐 고민이라고 하는데, 이게 다 관계의 애매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이 고민의 기저에는 ‘우리 사이’의 친밀함이 어느 정도인지 물리적으로 측정이 불가능하고, 상호 유사한 수치를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깔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친밀도에 대한 기대감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바탕으로 고민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아, 청첩장을 돌릴 계획은 없다. 다만 최근에 내 주변을 둘러싼 애매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독립 사실을 어디까지 알릴 것인지, 집들이 초대를 누구한테까지 건넬 것인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단언컨대 친구가 많은 편은 결코 아니다. 외부에 쏟을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내향형 인간으로서, 맞춰가기보단 맞는 사람만 만나는 인생을 살아왔다. 다만 한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직장 동료보다는 가깝고 친구보다는 먼 거리에 있는, 적절한 이름표를 붙이기 어려운 관계들이 꽤나 많이 생겼다.

 대체로 시작은 점심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근황 이야기로 이어졌고,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빠르게 친해졌다. 일 미루는 꼰대라는 공통의 적을 만나 그의 저열함에 대해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허니버터칩 품절 대란 때 한 달 동안 매일 돌아가며 각자 동네 편의점에서 한 봉지씩 구해와서 나눠 먹는다거나, 사랑하는 고양이 똥쟁이와 강아지 또리를 위해 함께 캐리어를 끌고 펫페어를 간다거나(심지어 똥쟁이 어머님께서 우리 또리를 위해 강아지 영양제 샘플 줄도 같이 서주었다), 호텔비를 아끼기 위해 각자 다른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서 만나 매일 저녁을 함께 보내면서 시간을 쌓았다.

 그런 동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집을 나온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평생을 엄마 껌딱지로 살겠다고 선언했던 과거가 있는지라, 친구가 결혼하고 미국에 가면서 독립하게 된 내 이야기를 모두들 흥미로워했다. 심지어 그 친구가 이 회사 출신인 것은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라 더더욱. 물론 우리 팀장과 같은 결혼무새*들이 껴 있는 자리에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호구조사로 한 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궁금해서 꼬치꼬치 물어보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스몰토크와 질문에도 격이라는 게 있고,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약간의 노력도 하지 않는 그들에게 내 사생활의 어떤 일부분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한없이 가볍고 무가치한 조언, 예를 들어 해야만 하는 결혼과 사야만 하는 서울 아파트 같은 화제를 던질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지 않다. 조언의 탈을 쓴 자기 자랑을 듣는 일도, 반박을 날리는 일도 이제는 너무 지겹다.


 그렇게 투머치토커이자 투머치꼰대인 그들이 정보 비공개 그룹의 기준이 되다 보니 ‘이 사람 정도면 말할 수 있지’의 ‘이 사람’들이 점차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들 우리 팀장에 비하면 ‘불필요한 조언을 빙자한 공격력’이 0에 수렴하는데, 같이 일하는 모책임은 팀장에 비하면 내 눈치를 백만배 정도 많이 살피는 사람인데, 입사한지 2년 된 우리 아기 신입사원은 팀장이랑 비교선상에 둔다는 사실 자체가 미안할 정도인데….

 그렇게 비교군을 빡세게 설정한 결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출가를 알게 되었고, 예상치도 못한 독립 축하 선물을 많이 받게 되었으며, 먹튀를 할 수 없어 양심상 집들이 초대를 건넸고, 초대를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예의인지 그들은 모두 초대를 수락했다. 그 결과 나는 세 달 내내 매주 한 번씩 집들이를 하고도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 집들이의 형벌에 처해지게 되었다.  


 힘들었다. 그들을 좋아하지만 집에 초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사적인 공간을 완전히 사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내어주는 행위에 대한 스트레스를 미처 몰랐다. 서로 간의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친밀함이 지속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두기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에게 집은 아직 친구에게까지만 허용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손님들을 보내고 나면 치울 기운도 없어서, 최소한의 정리만 하고 씻고 누워 바로 곯아떨어졌다. 너무도 혼자 있고 싶었던 가을이었다.

 독립 6개월 차인 지금도 아직 두 번의 집들이가 남아있다. 다행히 한 명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한 명은 날이 풀리면 오겠다고 한다. 절대 내가 먼저 말 꺼내지 말아야지, 그리고 다음번엔 몰래 이사해야지.




* 결혼무새 : 싱글들에게 틈만 나면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독립했다고 말하면 결혼은 언제 하냐고, 결혼 소식을 전하면 애는 언제 낳을 거냐고, 출산 소식을 전하면 둘째는 언제 낳을거냐는 질문을 들을 수 있다. 질문만 보면 이들 인생 초미의 관심사가 결혼과 육아인 것 같지만 막상 행복한지, 결혼을 추천하는지, 왜 저녁에 자꾸 술약속을 잡고 집에 안 들어가는지 물어보면 얼렁뚱땅 넘기고 한 잔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Chapter 3. 도전! 가계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