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질 많은 모임에는 가지 않기로...
SnL(Senior Life) Campus 두 번째 모임에 퇴직한 선배를 초청했다. 그분은 35년 넘게 근무하시고 퇴직 후 컨설팅 회사를 창업하였다. 왜 창업을 하셨는지, 퇴직 후의 삶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했다.
모임이 열리는 카페에 선배님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퇴직할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잘 살고 계시는구나! 나는 직감했다. 그녀는 작은 체구에 꼿꼿한 걸음으로 문을 열었다. 강연하는 동안 반듯한 자세를 유지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 회원 중 아는 사람을 발견하고 반갑게 근황을 물었다. 샌드위치로 저녁 식사를 대신하는 동안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강연자는 모임에서 발표할 자료를 미리 작성해서 내게 보냈다. 자신의 공무원 경력, 퇴직 후 삶의 변화, 퇴직자 일자리 유형, 창업 도전과 향후 계획이 담겼다. 깔끔하고 담백한 자료였다. 선배답다.
강연자는 직장 생활 후반부에 사업부서에 근무하게 된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10년 이상 경제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동안 업무를 통해 지식을 쌓고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고 한다. 강연자는 공직사회가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는 측면에서는 가장 알맞은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분야를 접하면서 새로운 정보와 지식, 관계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강연자는 근무하는 동안 직장에서 마련해 주는 교육을 충실히 받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특히 ‘퍼실리테이터 과정’은 퇴직 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라고 하면서 퇴직을 앞두고 있다면 꼭 받으라고 권했다.
퇴직 후 삶의 변화도 컸다. 강연자의 이야기 중 재정적인 부분이 내게는 가장 크게 와닿았다. 반토막 수입에 삶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다행스럽게 강연자는 다른 대체 수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취미활동은 주로 동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의존했다. 직장 다닐 때는 취미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서너 개가 된다고 했다. 수영, 라인댄스, 영화, 영어학습 등등. 영어 실력이 늘었다고 하면서 길게 영작한 문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주민센터의 취미와 문화 강연 수준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퇴직 후 ‘관계’ 이야기에 우리는 빵 터졌다. 모임의 숫자는 줄이고 ‘마음이 가는 모임’에 집중한다고 하면서 ‘자랑질 많은 모임에는 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강연자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절대 조언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나이 들면 안 바뀐다는 말이다. ‘가치관이 비슷한, 동일 직장의 진짜 친구를 한두 명 가지면 최고’라고 귀띔했다.
‘퇴직 후 찾아오는 외로움, 정신적 공허함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경험도 내게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때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집중하기를 주문했다. 강연자는 이를 ‘셀프 토닥토닥하기’라고 이름 지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자신만의 루틴, 즉 일상적인 습관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고 한다.
강연자는 퇴직 후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에 홈페이지 도메인까지 확보해 두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분야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면서 공무원과 청년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구체화시켜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직장 생활 중 친분을 쌓은 사람이 창업을 권했다.
퇴직 전 근무한 분야, 즉 창업과 청년 분야에 평가. 자문, 코칭을 주 업무로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강연자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 명함이 있으니 외부 기관이나 협회, 단체 쪽에도 발을 넓혀 갈 수 있었다. 새롭게 코칭 자격증까지 취득하여 전문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선배는 강연을 마치고 참석자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나는 자연스러운 선배의 모습에 당황했다. 머뭇거림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준비한 명함을 나눠줬다. 프로의 모습이었다. 나는 알아차렸다. 퇴직 후 선배는 한 번 더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스쳐 지나듯이 이야기하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선배는 갑자기 닥친 상실감, 단절된 관계, 줄어든 수입에 당황했지만, 충분히 자기 내면을 들여보고, 스스로 토닥이면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꿨다.
진심과 품격이 담긴 강연에 우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냈다.
D-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