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문서를 작성하는 일보다 결재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결재 버튼을 누르기 전, 문서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글은 손댈 곳 없이 깔끔하다. 나는 내용만 확인한다.
보고서와 달리 직원들이 문장을 가져올 때가 있다. 인사말과 보도자료, 홍보자료 등 인쇄물을 보면 평소 일을 잘하는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맞지 않은 문장이 많다. 주어와 술어를 일치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왜 그럴까?
나는 한참 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독서율이 떨어지면서 문해력도 약해졌다고 하니, 국민의 평균적인 글쓰기 실력이 예전보다 못해졌다고 변명할 수 있겠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공무원의 보고서 양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의 보고서는 대부분 개조식이다. 공무원은 낱말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문서를 작성한다. 축제 행사를 개최한다고 치자. 다음은 보고서의 예시다.
ㅇ 행사명: 부산바이브 커뮤니티 축제
ㅇ 일시 및 장소: 2024.11.16. (토) 11:00, PODO 야외마당(전포동)
ㅇ 참석: 우수 커뮤니티 10개 팀, 일반 시민 100여 명
ㅇ 주요 내용: 커뮤니티 홍보, 체험 부스 운영, 축하공연, 토크쇼, 이벤트 등
깔끔하게 잘 작성된 보고서다. 행사개요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절제된 단어와 핵심적인 내용이 포함되었다. 나무랄 곳이 없는 문장이다.
위와 같은 문서만 10년 이상 작성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문장을 쓰지 않고 낱말만 나열하다 보니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잃어버리게 된다. 주인의식이 사라지고 목표물을 찾을 수 없다. 서술어, 즉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 없으니 글에 힘이 없다. ‘커뮤니티 축제 개최’보다는 ‘부산시 홍보담당관실에서 커뮤니티 축제를 개최합니다.’라는 문장이 생동감이 있다.
또 다른 이슈가 있다. 보고서에는 늘 사용하는 단어만 등장한다. ‘개최, 추진, 운영, 활력, 계획, 구현, 확산, 성과’ 등등. 어떤 철학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 세계의 한계’라고 주장했다. 단절되고 반복된 단어만 사용하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장 쓰기 훈련을 해야 한다. 문장을 쓴다는 것은 매사에 주인을 찾아주는 일이다. 목적을 명확히 하는 습관을 지니게 만든다. 동사를 사용하게 되면 행동하게 만든다.
세 가지 방법을 권한다. 첫 번째, 보고서 한 장을 펼쳐두고 문장을 써 보라. 문장 쓰는 연습을 하다 보면 좋은 단어와 아이디어가 떠 올라 보고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도 있다. 위 보고서를 문장으로 고쳐 보자.
“부산시 홍보담당관실은 이번 주 토요일(11. 16. 일) 전포동 PODO라는 포도주 가게 야외마당에서 ‘부산바이브 커뮤니티 축제’를 개최합니다. 우수 커뮤니티로 선정된 10개 팀과 시민 100여 명이 어울려 주말을 즐길 예정입니다. (이하 생략)”
두 번째, 인사 말씀, 보도자료, 홍보자료를 문장으로 만들어 보라. 문장으로 만들다 보면 자신이 추진하는 행사와 시책 사업의 중요성과 특징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힘이 생긴다. 왜냐하면 문장을 만드는 시간 동안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단어를 나열하는 행위는 생각 없이 가능하지만, 단어의 관계를 생각하고 주어와 서술어를 배열하는 행위는 깊은 사고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 번째, 독서를 통해 문장 쓰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 관심이 있는 분야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보라. 책을 읽고 문장으로 요약하는 훈련을 하면 핵심을 뽑아내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업무를 잘하는 사람은 요약하는 힘을 가졌다.
나는 글쓰기가 안 되는 공무원이 많은 이유를 업무보고서 양식에서 찾았다. 개조식으로 작성된 문서의 장점이 많아서 양식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요즘은 서술식을 융합한 보고서도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개인의 몫이다. 문장력이 약한 공무원에게 책 읽고 글을 쓰는 훈련을 꾸준히 하기를 권한다. 문장을 만드는 행위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