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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 Jun 17. 2022

나의 2021 다이어리

감정일기 모음집

메모 속 일기장을 정리하다 보니 이전에 내가 써왔던 글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감정과 싸워낼 때, 감정에 잡힐 때, 때론 감정에 져주던 때의 모습들이 글 곳곳에 스며들어있었다. 참 치열하게 고민하고 외로워했고, 내면이 단단해지기까지는 대략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던 것 같다. 물론 아직도 흔들리는 구석은 남아있지만. 이전에 비해선 정말 많이 안정감을 찾아내었구나-를 작년 일기를 읽으며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감사한 부분.


작고도 작았던 내가 훗날 미래의 나를 막연하게 상상하고 그렸다는 것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몽글거렸고, 가라앉아있던 그날들이 안쓰럽기도 했고.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들을 적어 내려 갔을 까,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바라고, 원하던 모습으로 내가 많이 성장했구나-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저런 과거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임을 오늘도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해두고 싶은 나의 어여쁜 옛날.



01. 소나기의 부슬거림


몇 시간 거리를 왕복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마음 전하러 가는 길은 늘 가볍기만 하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 좋은 날 있잖아. 마음 충전하러 가는 짧은 여행이라 여겨져서 그런지, 오히려 충만해져서 돌아오는 하루를 경험하곤 한다.


비가 예고된 저녁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무거운 소나기는 아니었다. 아직도 부슬거리는 밤길에 우중충했던 멜버른 거리가 기억났다. 이 정도 비는 껌이지, 라는 우스운 생각을 하며 들고 온 우산은 접어들고 정류장으로 걸어왔다. 오는 비에 추위는 말릴 수 없어 덜덜 떨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 주변을 돌아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갈 열심히 해내고 있다. 바빠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자 나도 무언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생활은 무기력함을 가져오기만 할 뿐이다. 다 지키진 못하더라도 대충 세워진 계획 하나가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동기부여가 되어주거든 (완전 극 J의 사람). 그렇기에 난 내일도 모레도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씻고, 오랜만에 그림이나 한 장 그려볼까. 버스 안에서는 손준호의 뛰어라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기사님, 선곡센스가 기막히시네요.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봐요

부딪히는 빗방울이 즐거워요

울적했던 마음들 활짝 열고 뛰어 봐요

뚜 뚜루뚜 뚜루뚜 뚜 뚜루뚜 뚜루뚜


02. 나는 예민과 아주 가까워


백신 2차를 맞았다. 아직까진 주사를 맞은 부위 외엔 별다른 통증이나 발열이 없지만, 내일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랬다. 일부러 모든 스케줄을 빼놓았으니 몸살끼가 스쳐 지나가도 그러려니 하며 푹 쉴 수 있겠지.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바람이 쌩쌩 부는 거리를 마주하니 멜버른 겨울의 바람이 문득 기억났달까. 한국에 돌아오고 처음으로 패딩을 꺼내 입고 짧은 나들이를 다녀오듯 병원을 다녀왔다. 가는 길엔 이모와 함께, 오는 길엔 엄마와 함께. 물론 옆에 꼭 붙어서 따듯한 실내로 걸음을 재촉했다. 팔짱을 끼는 것은 나에겐 당연한 애정 어린 습관 같은 것이다. 물론 편안한 사람들 기준에서.


나의 간접적인 애정은 팔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불편해할까 봐 (나도 불편할 때가 종종 있기에) 나는 언제나 남몰래 표현의 유무를 갈등하곤 하지. 물론 그런 걱정 따위 필요 없는 사이가 내겐 가장 소중한 기쁨들이고, 때론 새롭게 발전하는 관계 속에서 먼저 용기 내어 표현해야 하는 상황도 있는 것 같아 여전히 내게는 작은 숙제 같아.


팔이 점점 욱신거리는 게 느껴진다. 글을 써서 그런 걸까, 아니면 몸살끼가 올라오는 걸까. 나의 과한 염려증이 도진 가능성도 있다- 어쩔 땐 그저 괜히 느껴지는 예민함의 부스러기들이거든.


나는 예민과 아주 가깝고, 때론 한 몸과 같아. 이런 내가 눈물나게 밉다가도, 이런 나를 끌어안게 되고.


뭐가 됐든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애정도, 누군가의 속상함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사랑 가득한 사람.


03. 일상의 조각들

 

손가락 끝 물집, 낮잠 자느라 퉁퉁 부은 얼굴, 부스럭거리던 나른함. 또 뭐가 있지.

 

기타 연습은 찔끔이라도 매일 하려고 한다. 하다 보니 조금씩 느는 것 같지만 성격 급한 나는 늘 내 손이 못 미덥다. 김광석 씨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치고 싶은데 지금은 절대 못 쳐. 아쉬운 마음에 오늘 저녁 내 방엔 이 노래가 무한 반복으로 맴도는 중이다.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는 마음 하나와 여유를 가지면 안 된다는 마음 하나. 두 가지 마음이 여전히 싸워가는 중이다. 오늘은 여유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어차피 쉴 것 마음 편하게 쉬자,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낸 하루니까.

 

눈꺼풀이 무겁다. 몸이 막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낼 때 얼른 자야 하는데, 자기 전 세수는 해야 하고. 세수를 하면 피곤했던 정신이 번쩍 깨는 경험. 그래서 결국 잠들지 못하고 수면 패턴을 놓치고 마는 경험. 나만 겪는 상황은 아닐 거야, 그렇지?

 

어찌 됐든 나른한 오전과, 조급한 마음의 우울했던 오후와, 애써 생각을 정리하고 결국 마음 편히 맞이한 밤. 늘 나와의 싸움이다. 정신승리 하자 아자.


04. 당신에게도 외로운 밤인가요

 

팔 통증 외엔 별다른 증상이 없길래 그냥 자연스럽게 지나가려나 했더니, 긴 낮잠 후에 눈을 떠보니 역시 백신은 얕보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휴식이 많이 필요했나 보다, 욱신거리던 팔이 꽤 괜찮아진 것을 보면.

 

외로움이라는 키워드가 오늘 내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늘 내내라고 하기에는 사실 눈 뜨고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민망하지만- 외로움이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늘상 그렇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이자 친구이다. 아직은 이 감정을 향한 많은 생각이 가득하기에 말로써 다 설명할 수 없지만- 결국은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떻게 함께 이로운 공존을 이뤄낼 수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만보의 하루를 보내고 나니 사실 쓸 말이 없다. 현재 컨디션은 최상이고, 하루는 이미 지나가 어둑해져만 가고. 이 컨디션으로 아침을 맞이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하다가도 여전히 내 밤은 소중하기만 해서, 결국 쉬이 흘려보내지 못하겠다. 역시 난 아침형 인간은 아닌가 보다. 어둠 속 노란 조명과 고요한 밤이 좋은 사람.


05. 에휴가 가득할 때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들쑥날쑥한 요즘 감정에 아, 마법이 올 시기가 되긴 했다 하며 가볍게 털어내려 애쓰고 있다. 날이 참 밝고 맑다. 햇살 가득 받으며 버스 창가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고. 제일 행복한 하루가 되어야 하는데, 늘 주일마다 방해는 오기 마련이지. 결국 또 마음이 무거운 오늘이 되었다.

 

 

내 감정을 다 드러내는 글을 쓰기 부끄러울 때가 있다. 사실 다 드러내지도 못하는 공개된 공간이지만, 그저 좋다 나쁘다 이 두루뭉술한 감정까지도 늘 솔직하게 써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맑음이 있으면 흐림도 있는 법이니까, 흔들리는 내 모습을 기록해두고, 먼 훗날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되었을 때 한 번 되돌아보고 싶다. 이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구나 하고 추억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흔들려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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