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참견 시점 ] 현대시, Kpop
[예술적 참견 시점 ]
(The Moment of Artistic Intervention)
현대시/ 가사: 제프김.(김남효)
곡:SUNO. 남성보컬
Yeah, they say art is a monologue.
But I say, it’s a high-stakes dialogue.
(그래, 사람들은 예술이 독백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난 말해요, 예술은 모든 걸 건 대화라고요.)
내가 던진 이 피땀 눈물,
과연 누가 받아낼지.
Ready? Let’s play.
내가 던진 이 피땀 눈물,
과연 누가 받아낼지.
Ready? Let’s play.
캔버스 위에 그어놓은 궤적은 Curve ball
내 의도는 직구, 때론 너를 향한 Screwball
정지된 화면 속에 숨겨둔 나의 Breath
넌 그걸 읽어내며 완성해, Finally yes!
전시회장 안의 침묵은 사실 치열한 Court
난 붓끝으로 서브를 넣고 넌 눈빛으로 Respond
내가 던진 질문, 네 해석이 정답이 돼
우리가 마주 선 이 순간, 비로소 게임이 돼
고요한 공간 속에 멈춰있던 조각이
네 손끝이 닿는 순간 숨을 쉬기 시작해
나 혼자서는 절대 완성할 수 없는 Frame
네가 있어야만 비로소 시작될 이 Game
이게 바로 예술적 참견 시점!
내가 던진 공을 네가 받아친 지점
관람자가 아닌 Player로 들어와
우리의 호흡이 맞닿을 때 비로소 Realize!
Woah-oh-oh, 받아쳐 봐 Right now
Woah-oh-oh, 이게 우리의 Art
네가 없으면 이 경기는 성립하지 않아
The name of this game is 'ART'.
보여지는 게 다가 아냐, 그 이면의 Interplay
작가(Artist)는 제안할 뿐, 규칙은 네가 정해
내 고통도 네 눈을 거치면 환희가 되고
내 절망도 네 가슴에 닿으면 노래가 돼
It’s a 1 on 1, or maybe 1 on billion
우린 서로의 참견 속에 피어난 Pavilion.
벽 위의 그림은 외로운 외침이었지
하지만 네 시선이 머문 그 찰나에
차가운 물감에 온기가 돌아
(Yeah, you make it alive)
자, 이제 공을 되돌려줘 내게로
이게 바로 예술적 참견 시점!
내가 던진 공을 네가 받아친 지점
관람자가 아닌 Player로 들어와
우리의 호흡이 맞닿을 때 비로소 Realize!
Woah-oh-oh, 받아쳐 봐 Right now
Woah-oh-oh, 이게 우리의 Art
네가 없으면 이 경기는 성립하지 않아
The name of this game is 'ART'.
캔버스를 넘어, 무대를 넘어
우리는 계속해서 주고받네.
And that’s what we call...
(Whisper) ART.
https://youtube.com/shorts/_aQKY6853o4?si=N3qsFUo8NKMpgUdC
【예술적 참견 시점】
현대시 : 관객이 플레이어가 되는 순간
필자의 「예술적 참견 시점」은 현대시이자, 동시대 예술 철학을 압축한 선언문이다.
SUNO의 보컬이 전달하는 이 곡은, 정지된 캔버스와 관객의 시선이 만나 ‘살아 움직이는 예술’으로 폭발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참견’이라는 일상적이고 다소 무례한 단어를 ‘예술적’이라는 수식어로 승화시켜, 예술이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과 대화임을 강조한다.
스포츠와 예술의 교차: 메타포의 힘
가사의 가장 강렬한 특징은 스포츠 메타포다.
“캔버스 위에 그어놓은 궤적은 Curve ball / 내 의도는 직구, 때론 너를 향한 Screwball”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직구’로 던지지만, 실제로는 ‘커브볼’ ‘스크루볼’처럼 예측 불가능한 궤적으로 관객에게 날아간다. 전시회장의 침묵은 “치열한 Court”가 되고, 붓끝은 서브가 되며, 관객의 눈빛은 리턴이 된다.
이것은 현대시의 본질적 전환을 보여준다. 20세기 후반 이후 시와 예술은 ‘작품 완결성’이라는 신화를 버렸다.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에서처럼, 작가는 더 이상 절대적 의미의 공급자가 아니다.
작품은 독자(관객)가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필자는 이를 “네 해석이 정답이 돼”라는 직설적인 언어로 노래한다.
관객이 플레이어로 들어오는 순간, “고요한 공간 속에 멈춰있던 조각이 / 네 손끝이 닿는 순간 숨을 쉬기 시작해”라고 선언한다.
현대시의 핵심: ‘불완전한 프레임’과 공생
“나 혼자서는 절대 완성할 수 없는 Frame / 네가 있어야만 비로소 시작될 이 Game”
이 구절은 현대시의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전환을 담고 있다. 전통적 예술관에서는 작가가 완전한 세계를 창조한다.
현대시는 ‘불완전성’을 전제로 한다. 작품은 작가의 고통과 절망을 담은 ‘외로운 외침’에 불과하다. 그 외침이 관객의 가슴을 거치며 “환희”와 “노래”가 되는 과정이 예술의 본질이다.
“보여지는 게 다가 아냐, 그 이면의 Interplay”라는 라인은 특히 날카롭다.
표면적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상호작용(interplay)’을 강조한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특히 참여예술(Participatory Art)과 관객-작품 관계성을 다룬 비평 이론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제안할 뿐”, 규칙은 관객이 정한다. 1:1일 수도, 1:billion일 수도 있는 이 게임에서, 예술은 ‘우리’의 호흡이 맞물릴 때 비로소 ‘Realize’된다.
반복과 클라이맥스: ‘ART’라는 게임의 이름
후렴의 “Woah-oh-oh, 받아쳐 봐 Right now”는 단순한 훅이 아니다. 청중에게 직접 던지는 초대장이다.
“네가 없으면 이 경기는 성립하지 않아”라는 반복은, 예술의 존재론적 조건을 선언한다. 관객의 적극적 참견(참여+개입) 없이는 예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이는 현대시가 추구하는 ‘열린 텍스트’의 극단적 형태다.
마지막 “캔버스를 넘어, 무대를 넘어 / 우리는 계속해서 주고받네”는 경계를 허무는 선언이다. 캔버스도, 무대도, 결국 삶의 연장선상에서 계속되는 대화라는 의미다.
Whisper로 끝나는 “ART.”는 마치 게임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속삭임처럼, 예술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임을 암시한다.
우리 시대의 예술 선언
「예술적 참견 시점」은 디지털 시대, 관객이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된 오늘날에 특히 명료한 작품이다.
SNS에서 누구나 댓글로 ‘참견’하고, 리믹스하고, 재해석하는 시대에, 이 노래는 그 행위를 예술의 본질로 끌어올린다.
예술은 혼자서는 죽어 있는 것이라고. 네가 손끝을 대고, 눈빛을 주고, 공을 받아쳐야 비로소 살아 숨 쉰다.
그것이 바로 ‘예술적 참견 시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모두 Player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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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효 박사, 동서양디자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