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첨예한 체스게임
프랑스 SF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퀸의 대각선> 중 1권은 한 여자 아이가 케이지 안의 수많은 생쥐들을 학교에 풀어놓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니콜이라는 이름의 그 여자아이가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으면서까지 그런 일을 벌였던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각각의 우리 안에 혼자 갇혀있는 생쥐들이 불쌍했고 다른 하나는 혼자 교실에 갇혀있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니콜의 아버지, 루퍼트는 부유한 농장주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이 그와 같은 업적을 이룬 것도 다른 사람과의 협력과 단결을 통한 것이라고 보는 공동체주의자였다. 루퍼트는 니콜을 혼내는 대신에 니콜이 공동체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공동체주의를 니콜에게 이야기해준다. 그에 따르면 고립된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보다 함께하는 집단의 숫자에서 나오는 힘을 믿어야 한다. 루퍼트는 자신의 목장에 있는 양들에 비유하면서, "양들은 무리를 이룰 때 한 마리 한 마리의 지능을 단순히 합한 것보다 훨씬 높은 지능을 발휘한단다.(p.24)라고 말한다. 그러자 니콜이 인간과 개가 양들을 이끌어주고 있지 않냐고 물었을 때, 루퍼트는 양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 저 양들이 집단 지성으로 개와 인간을 이끌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잠시 루퍼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문득 니콜은 아빠의 말대로 양들이 정말 그렇게 똑똑한지, 집단을 형성하는 게 과연 저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목장 절벽 아래로 인형을 던져 양치기 개 '마오'가 물어오게 시킨다. 본능적으로 마오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고, 그에 뒤따라서 양들도 떨어져 죽었다.
불쌍한 개 마오의 이름은 마오쩌둥에서 따왔다. 1950년대, 아직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마오쩌둥에게 영향을 받아 사회운동을 펼치던 젊은 루퍼트가 개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루퍼트의 고향인 호주는 그때까지도 프로테스탄트적 기질과 자본주의적 신념이 강해 루퍼트의 좌파적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이를 두고 루퍼트는 '개신교의 신은 승자를 사랑하고, 자본주의는 경쟁을 통해 강자와 역자를 가려내지'라고 비판한다. 결국 루퍼트의 결론은 비록 양들이 죽기는 했어도 저 양들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노동자들이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단순한 근거를 제시한다. 숫자가 제일 많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니콜은 양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본능적일 뿐인지를 보았기 때문에 단순히 숫자가 많은 것만으로는 약자들, 공동체의 승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마침 루퍼트가 가르친 체스를 배운 덕분에 그녀는 인류의 운명을 마치 체스판처럼 운영하여 언젠가 인류가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구해내는 사람이 되려는 꿈을 가지게 된다.
반면 니콜과 같은 나이의 모니카는 친구들에게 자주 폭력을 휘둘러 가는 학교에서마다 어머니가 곤혹을 치르신다. 니콜은 사람들을 혐오한다.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자신에 비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는 공포증이 있다. 모니카는 자신의 충동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할머니로부터 체스를 배우게 되는데, 이때 모니카도 체스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세워나간다. 모니카는 체스 게임에서 퀸의 장악력을 보고 뛰어난 개인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굳히게 된다.
이 둘은 청소년기에 체스 선수가 되어 체스 경기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는데, 니콜이 모니카를 이기자마자 모니카는 자신의 폭력적인 충동성을 조절핮지 못하고 니콜의 목을 조른다. 니콜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체스의 전략을 통해 알게 된 그녀의 개인주의적 엘리트주의를 두고 자신은 이 세상의 모든 킹과 퀸과 같은 권력자들의 압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결심한다.
체스 시합이 끝나고 당시 영국과 아일랜드간의 갈등이 첨예했던 상황에서 갑자기 IRA이 테러를 일으키자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도망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넘어진 모니카의 어머니를 밟아 죽이게 된다. 이때 모니카는 니콜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깊은 상처와 복수심을 가지게 된다.
성인이 되고 난후 니콜은 군중학 전공 사회학자로 활동하고 있었고 니콜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있었다. 모니카는 <홀로 대 모두> 라는 책을 써서 개인주의에 방해가 되는 민주적 장치에 대해 비판을 가했고 이 작품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상을 이어가던 와중 어느날 두 사람 모두에게 의문의사람들이 찾아온다. 아일랜드계 출신이었던 니콜에게는 IRA 멤버가 와서 자금난 해결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고 영국의 한 기관에서는 IRA를 잡기 위해 모니카에게 접근해 니콜이 모니카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 중의 한 명이라고 알린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니콜과 모니카 간의 인생 체스게임이 펼쳐진다.
소설에서는 니콜이 상대적으로 모니카에 비해 선한 주인공처럼 묘사되지만 니콜과 그녀의 아버지 루퍼트의 공동체주의는 루퍼트가 예로 든 마오쩌둥과 60년대의 마오쩌둥과의 비교를 통해 그 허점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루퍼트가 말한 마오쩌둥은 60년대의 마오쩌둥과 매우 다르다. 바로 그가 일으킨 문화대혁명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이 새로운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주조하기 위하여 명목한 이기적 존재를 이타적 존재로 교정하는 사회 공학의 실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탈린의 영향을 받은 공포정치에 더한 자신을 숭배하는 사상인 마오주의를 설파하는 플라톤 철인 통치의 질 나쁜 버전을 수행한 것이었다. 그 당시 많은 이들이 사상개조와 고문을 당하고 정치적 박해를 받았으며 그 후유증으로 문화적 상흔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이다.
분명히 공산주의는 공동체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에 대한 인격 숭배를 가능케 했던 이유는 명료하고도 천재적인 지도자는 공산주의를 수행하는 모든 진리를 알고 있으므로 그에게 가축처럼 따라야 한다는 인격 숭배 논리 때문이었다. 공동체주의를 위해 인격숭배를 하는 기묘한 사상에 지식인들은 반발을 했지만 이들은 결국 초기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루퍼트는 공동체주의가 개인주의를 넘어선 인격숭배로 타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니콜도 세상을 체스판처럼 운영하여 위험에서 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엘리트주의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다고 해도 그들을 마치 양들처럼 지도가 필요한 존재로 보는 것은 자신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예외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 게다가 체스판처럼 세상을 통제한다는 생각은 니콜 자신만의 논리 안에 세상을 가두려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니콜이 어렸을 떄부터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가졌던 순수한 공동체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성찰이 필요하다. 앞으로 니콜과 모니카의 체스 대결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퀸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이 싸움에서 먼저 파멸하는 쪽은 자신의 독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