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살의 나이에 그는 이미 사람들이란 모호하고 무례하며, 매일같이 행하는 서너가지의 활동을 제외하면, 그저 도시를 활보할 뿐, 시골에 수백만 개의 독방을 짓게 하여 그곳에서 환자로 있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또한 무사태평하게 지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p.114
이 책의 주인공, 아담 폴로는 후자의 인물이다. 그의 첫 등장은 어느 텅 빈 저택의 방 귀퉁이에서 거지 행색을 한 채 공상을 하며 자신의 연인이었을지도 모를-책에서도 그가 진지하게 연애를 했다고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았다-미셸이라는 인물에게 편지를 노트에 쓰는 장면이다. 편지에서 잠적한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과 자신의 기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고 해도 뻔한 잔소리나 늘어놓았을 것이라고 독백하는 내용이 그가 사회적인 인물은 아니라는 점만이 그에 대해 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인식이다
간간이 이어지는 기억 조각들에서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담의 말은 점점 황당해지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들은 아담 폴로가 그저 사색가인지, 광인인지 헷갈리게 한다. 아담이 도망쳐 왔다는 곳이 정신병원으로부터인지, 군대에서인지 그가 아무렇게나 자신이 만나는 군인마다 지껄이는 횡설 수설 속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아담이 이야기하는 전쟁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전쟁이기에 PTSD일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하지만 소설의 나레이션에서 말하는 아담만의 세계는 상당히 신비롭다. 여러 가지 형상과 상징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주의 평화가 불현듯 느껴지기도 하고, 시적이다. 그 세계에서 아담은 도시 속의 고독한 순교자였고 그의 운명은 그가 선택한 만화 속 같았다. 그는 유아 같았다가도 현자 같았다. 이 모든 게 뒤엉킨 곳이 아담 폴로의 정신세계였다. 현실에서는 걸거리의 걸인이고 말하는 것도 천박하고 미친 사람이었지만.
이런 아담 폴로의 모습은 잘 드러내는 것은 어느 흰 쥐였다. 아담 폴로가 흰 쥐를 저택에서 찾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과 쥐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쓰레기를 먹으러 다니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종인 쥐와 자신의 모습을 겹쳐본 아담은 쥐를 미친듯이 죽이려고 한다. 자신은 인간이라는 자존감만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를 두고 작가는 쥐가 마치 하늘에 기적을 바라는 성자의 모습과도 같다고 묘사한다. 마치 아담이 자신을 임박한 대재앙의 순교자라고 느끼듯이.
그렇다면 바깥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을까? 어머니는 아담 폴로에게 무사히 돌아와 원래 가지고 있는 대학 학위로 프랑스어 강사를 하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처량하다시피 하는 사랑 어린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 나온대로 아담은 군복무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휴가 중일 뿐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아포칼립스의 순교자도, 핍박받는 쥐도 아닌 그저 폴로 집안의 아담 폴로였을 뿐이다.
하지만 아담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신비로운 세상을 간직하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받아들여지기를, 그의 정신적 고립이 이해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외딴 독방에 갇힌 것 같은 삶. 그의 오랜 외로움이 그를 미치게 만든 것이다. 결국 아담은 거리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 체포된 후 정신 병원에 들어간다.
정신 병원에 들어가서야 아담은 진실과 환상이 섞인 자신의 과거를 들려준다. 아담은 늘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지만 머리는 총명했다. 그러나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소심했다. 그는 악마 숭배를 했다고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학우들과 친구가 되는 것에 실패한 것이었다. 그러니 대학에 가서 배운 지식들은 하나 같이 그의 형이상학적인 환상만 키웠고 그를 더욱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시켜서 이십대 후반에 이르는 나이에도 독립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자, 아담은 이제 파자마 차림으로 초점을 잃은 채 정신병원에 누워있다. 그는 언제든지 퇴원할 수 있있지만 지금도 그 자리 그대로이다. 르 클레지오는 이 소설을 쓰던 당시 1960년대의 문학적 사조라던지, 철학을 반영하여 만든다고, 그래서 난해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경고를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심리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에게 여전히 의미가 깊다고 본다. 아담이 지껄이는 허영 가득한 추상적인 말들이 핵심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하게 된 그의 동기, 그의 슬픔, 눈물로 다 표현될 수 없기에 광기로 드러나는 그것을 보아야 이 작품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옆에 누군가는 외로움으로 미쳐가고 있다. 아담의 어머니처럼 그들에게 바깥세상으로 돌아오라고,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