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의 사랑법

시선에 담긴 권태



2022년 유월의 저와 연인은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저흰 닮은 듯 하나도 닮지 않은 서로입니다. 그간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정도 많이 떨어졌었습니다. 많이 힘들었고, 지쳤기도 했습니다. 권태가 찾아온 것이었겠죠. 연인의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이별을 고하기도 했습니다. 떠나려는 저를 붙잡은 건 역시 또 연인이었고, 병들어 무너져 내리는 저를 따스히 안아준 것 역시 제 연인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나는 몰랐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살면서 몇 번의 삶을 구원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에 대해 어느 때보다 깊게 생각해 본 유월이었습니다. 인생에 대해서도, 관계에 대해서도 말이죠.

사람은 저마다의 조명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조명엔 먼지들이 쌓이게 되죠.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먼지들은, 빛의 형태를 바꾸기도, 어둡게도 할 겁니다. 뿌옇게 가라앉은 입자들이 가린 스스로의 조명을 비관하기도 할 테죠.
하지만 며칠 전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에 본 거리의 가로등은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가로등의 빛줄기가 유난히 선명하다고 느낀 밤이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최고로 나쁜 날이었거든요. 모순적이게도 조명의 빛선은 먼지가 많을수록 구체적으로 변모했습니다. 광선을 굴절시키는 공기 중의 입자들이 없었더라면, 그 날의 가로등이 그렇게 확실했을 순 없었을 겁니다.

먼지 쌓인 것은 때로 무엇보다 선명한 빛을 발하기도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의 먼지로 덮인 조명은 어느 날 선선히 불어온 산들바람에 흩날리고 산란되어 누구보다도 밝은 광선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 바람을 불어줄 관찰자의 역할입니다. 내 조명은, 너의 조명은 어둡다고 비관하며 가만히 지켜보지만 말고, 당신과 나의 조명도 빛을 낸다며 따스히 바람을 불어주는 그 태도가 필요한 겁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우리는 본인의 사진기 너머 시선으로 상대를 관측합니다. 관계를 맺는 것은 서로를 관찰하며 사진으로 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조명에 바람을 불 줄 아는 멋진 사진사는 상대의 조명도 아름답게 조명할 수 있겠죠. 바람을 불어 먼지를 날리고, 배경과 잘 어우러지는 구도로 찰칵. 찍을 수 있는 자의 눈엔 당신의 아름다움이 넘실거릴 겁니다.

사랑을 하는 일도 사진을 찍는 일과 같습니다.
사랑은 지나치게 열린 감정이란 조리개로 피사체에만 초점을 두며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며 감정의 심도가 깊어질수록 피사체의 주변까지 조경하는, '평범'의 구도로 돌아갑니다. 이전엔 몰랐던 그대의 모습들이 배경에 흩뿌려지고, 이를 관측할 수록 내가 좋아했던 당신의 주변에 날리는 먼지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먼지 쌓인 것은 때로 무엇보다 선명한 빛을 발하기도 한다는 걸 기억합시다. 이걸 기억하면서 그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읍시다.
배경이 시선에 들어온다고, 당신의 먼지가 눈에 밟힌다고 실망할 것 없습니다. 선명해진 배경은 그대가 지금까지 걸어온 곳 또한 알려줄 겁니다. 그것이 당신을 보다 온전히 알게 해주고 '너'라는 빛을 더욱 선명하게 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역시, 아름답게 보고자 하는 사진사의 태도니까요.

우리는 각자가 지닌 마음과 감정을 서로에게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따스한 시선으로 담을 수 있기 위해, 각자가 타인에게 원하는 모습만이 아닌 당신의 먼지들 또한 품을 수 있기 위해, 이야기해야 돼요. 당신의 먼지가 지닌 아름다움조차 또렷하게 관측할 수 있게 말이죠.
서로가 정말 빛나는 멋진 사람이란 걸, 스스로가 알 수 있게, 그러기 위해서 말입니다.​

내가 너의 먼지를 보았듯 너도 나의 먼지를 보았겠지.
내가 너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았듯 너도 나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았을거야.
항상 먼저 얘기하고 안아줘서 고마워.
우리 지금처럼 위험한 순간에는, 대화를 하자.
내가 너를 따뜻하게 볼 수 있게, 너가 나를 부드럽게 볼 수 있게, 이야기하자.
우리의 대화를 통해 서로가 찍어준 아름다움으로, 너와 나 앨범이 채워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