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먼 Jun 21. 2024

2024년 6월 21일 - 두 달간의 타지생활

포항으로 이사를 했다.

방 자체를 구하는 게 간절했던 나는

방 사이즈의 규모를 선택할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넓은 거실에 방 2개 딸린 월세 68만 원의 투룸에서 살게 됐다.


넓고 깨끗한 집이다. 마음에 든다.

초파리가 가끔 한 두 마리씩 날아다니긴 하지만 이 정도는 양호하다.

비데도 설치되어 있고 심지어 빨래를 건조할 수 있는 베란다도 딸려있으니

이 정도 자취방은 친구들로부터 듣도 보도 못했다.


이 넓은 집을 혼자 쓸고 닦으며 애정을 줘본다.

처음에는 이 넓은 집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아 적적했는데

집에 조그만 애정을 주고 나니 적적함이 조금 가셨다.

매트리스도, 소파도, 책상도 없어 훤한 거실이지만

그럼에도 집에서 고집부리며 가져온 무드등이 꽤나 만족스럽게 허전함을 채워주었다.


이 집에서 나는 홀로,

아니, 사실 둘이서 살게 된다.

나는 K와 두 달간 포항에서 함께 동거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냥 나와 같이 살고 싶다며 K가 무작정 따라오는 거였는데,

그가 올해 하반기에 일본으로 워홀을 가겠다며 결정하고 나서는

8월 말에 떠나니까 그전까지는 충분히 같이 있자는 의미가 강해졌다.

참 걱정이다.

K를 너무 가까이 두는 것도, 너무 멀리 두는 것도 모두 걱정이다.

그냥 적당한 거리에 두고 싶은데

그 사람이 내 마음대로 되는 사람인가.


적어도 K와 함께라면

잠드는 순간도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도 외롭진 않겠지.

내가 이따금씩 무너질 때마다 무기력에 짓눌려 나 자신을 내팽개치는 일도 없을 거다.

그래도 이 넓은 집에 만약 혼자서 살았더라면

나는 분명 어떤 날에는 이 넓은 집에 압도당했을 것이다.

어떤 날엔 한 끼도 먹지 않고 넘기는 날도 있을 거고

어떤 날엔 무거운 감정들에 짓눌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든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K랑 있으면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기뻐서 일어나든 화가 나서 일어나든

슬퍼서 일어나든 즐거워서 일어나든

결국 그와 함께 있으면 적어도 자리에서 일어나게는 될 테니까.


나는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졸업을 한다.

그래서 이번 학기를 마치는 동시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바로 대학원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시간까지는 없었다.

나는 이제 포스텍에서 두 달간 인턴을 한 뒤 내년 전기 대학원 입시를 뚫어야 한다.

참 불안하다 불안해.

나 같은 걸 누가 뽑아줄까 싶다.

난 아직도 자신이 없다.


이번 인턴기간 동안 잘해야 할 텐데.

아무리 내가 자대에서는 수석이고 학점깡패라도

여기는 무려 포항공대인데, 나보다 똑똑하고 멋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이 나를 볼 때는 그냥

수박이 되고 싶어 스스로 줄을 그어온 호박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덜컥 겁이 난다. 걱정도 든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멍청하다.

나는 더 노력해야 하고 더 대비해야 한다.

아, 이대로 있다간 생각에 잠식되고 말겠어.


두려움반 설렘 반,

아니, 솔직히 두려움 70% 설렘 30%.

나의 진가를 알아달라고 부르짖는 일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남에게 나의 진가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나약한 나는 계속 불안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4년 5월 25일-혐오시대에서 개인주의로 살아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