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뉴스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그들의 탱크와 트럭에 그려진 알파벳 Z였다. 전쟁에서 피아를 구분하기 위한 표식인가 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트럭을 모는 운전병 정도가 대강 썼을 듯한 그 글자 모양의 조악함 때문에 '러시아가 참 대책 없는 나라인가, 미사일이 나르는 21세기 전쟁에 동네 담벼락에 낙서하듯 뭐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알고 보니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누구도 그 Z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러시아 국방부 인스타그램이 Z를 심벌로 사용하며 우크라이나에서의 승리를 다짐하는 메시지를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우선 있다. 그리고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인터넷 동영상에 Z를 찍어 넣은 후드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함께 보인다는 이야기 정도가 예의 Z 관련 뉴스다.
그런데 심지어 러시아어나 우크라이나어 알파벳에는 Z가 없다고 한다.
뭔가?
어쨌든 그 Z는 촌스럽게 또 억척스럽게 러시아의 전쟁 의지를 보여주는 심벌로 사용되고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축하하는 세계 체조 연맹 행사에서 러시아의 국기를 달지 못하도록 한 체조연맹의 규칙에 따르는 척하며 러시아 체조 선수가 유니폼에 Z를 붙이고 참가했다. 그리고는 우크라이나 체조 선수 옆에 버젓이 선 모습이 매스컴에 포착되었다. 그 사건으로 해당 선수는 정식 징계 처분을 앞두고 있고 러시아는 앞으로 해당 조직의 체조 시합에는 출전하지 못하도록 조처되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선수는 죄가 없다고 봐주어야 할 뿐인가.
그런데
이 Z를 자꾸 들여다 보고 생각을 하다 보면 그 Z의 의미는,
KGB였다가 대통령이었다가, 총리였다가 또 대통령이 되어 선거, 낙선 같은 것은 관심거리도 아닌, 세상 무식한 그러나 섣불리 꺼꾸러 뜨려 지지 않는, 쌈박질에는 이기는 놈이 장땡이라고 우기는 권력자, "로로 어쩌고"라는 이름을 가진 이탈리아제인지 프랑스제인지 고급진 거위털 파카를 촌스럽게 따습게 입고 러시아 대중 앞에 나서서 전쟁이라는 말은 빼고 우크라이나 침략 사태를 거짓부렁으로 둘러대는 푸틴을 바로 한 칼로 나타내주는 상징이라는 결론이 난다.
물론 90년대 말에 술주정꾼 옐친 대통령에게서 정권을 물려받고 러시아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보겠다고 정치를 시작한 푸틴이 있었다. 세련된 서방 국가들과 교류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나토를 기웃거리는 푸틴에게 ‘촌뜨기야 저리 가. 너랑 안 놀아’라고 미국의 빌 클린턴 등이 그를 무시하였고 심하게 삐친 푸틴은 어쩔 수없이 혼자 이리저리 놀아보다 지금 이 모양새로 그냥 큰 세력이 되어버렸다는 분석이 있다. 당연히 그때 품은 앙심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저들만 영원히 앞서 나갈 줄 알았던 서방 정치 세력에 보란 듯이 주변의 구 소련 국가들을 지분거리며 우리는 원래 한 식구라며 마피아 보스처럼 억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도 누구도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니 푸틴은 정치의 수 중에 가장 높은 수는 '밀어붙이는 수'라고 결론을 내렸을까? 그냥 우크라이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2023년 현재, 백주 대낮에 민간인이 사는 아파트에 포탄을 쏟아붓는 푸틴의 억지에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꼴이다. 전쟁의 현장이 날마다 저녁 뉴스로 중계되다시피 하다 보니 '전쟁의 참상' 같은 "추상적"인 의미의 사태 인식이 아니라 '저런 육X럴 놈들이 멀쩡한 건물을 때려 부수고 사람을 죽이고 있네'로 나오는 일상적인 한탄의 연속이다.
그런데 러시아에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 Z에 대응하는 상징을 사용하며 푸틴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를 사용한 기호다.
러시아 알파벳도 아니고 그냥 별표, 미국말로 애스터리스크다. '전쟁'이라는 말 자체가 금지인 러시아 내에서 조용히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사용하는 상징이다. 러시아어로 전쟁 반대 (No War)는 No를 의미하는 알파벳 3자 단어와 War를 의미하는 5자 단어 조합으로 쓴다. 그러나 전쟁이라고 쓸 수 없으니 별표를 알파벳과 적당히 섞어 8자로 조문하여 기호처럼 표시한다. 별표가 많이 들어간 '전쟁 반대' 기호인 셈이다. (브런치의 글자체로는 표기 불가능하다).
와중에 어떤 여자가 전쟁이란 단어의 첫 알파벳과 끝 알파벳을 쓰고 그 사이를 세 개의 별표로 채워서 '전쟁 반대'라고 길에 썼다가 경찰에 끌려갔다. 설명을 요구하는 판사에게 그녀는, '전쟁'이 아니고 글자가 비슷한 '생선'이라는 말이었다고, '생선 싫어요. 냄새나는 생선 싫어요'라는 뜻이었다고 둘러대었다. 판사는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얌전하게 그려진 물고기, 그게 바로 전쟁 반대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나 다름없는 상징의 세계도 경제의 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아마 지금 쯤은 별표 세 개, *** (NeT, No, 반대)만 살그머니 그려 놓아도 모두 '전쟁 반대, ' '푸틴 반대, ' '살상 반대'로 알고 읽을 것이다.
* * *
#참조: Episode 526 'Orange Alternative, ' 99% Invisible (podcast), 2023.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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