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이 눈에 들어왔다.
2020년. 유튜브에서 보는 코로나 시절 초기의 관객 없는 패션쇼다.
분홍이 고운 색이긴 하지만 유튜브 검색에서 fashion show라고 치면 올라오는 유명 브랜드의 패션쇼 등에서 분홍을 특별히 사용하는 것 같은 기억은 없는데 이건 진짜 분홍 분홍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촌스러운데” 지극히 초록스런 초록과 매치를 해놓았다. ‘악’ 소리 나게 촌스럽다. 어색한 색깔의 매치도 각 각의 색을 순도 높게 구현하여 새로운 느낌으로 만들어 내는 프라다하우스의 쇼다. 그러고 보니 그사이 여기저기서 분홍 재킷과 초록 바지 혹은 초록 상의 분홍 하의의 조합을 본 것 같은데...
그래서 프라다가 하니 멋져 보였나?
아니다.
내가 그렇게 입고 나갔단 온 동네 사람들이 쳐다볼 것 같은 지경으로 목불인견이다.
그런데,
자연에서 초록 줄기에 피어나는 분홍 꽃은 감히 아무도 폄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보다 보니 '어울리는 색이 뭐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익히기 나름이다. 상식을 깨는 디자인 도전이고 고인 물을 경고하는 저항이다. 분홍 + 초록, 그리고 그에 붙은 메시지가 바로 그 이미지다.
안주하지 말 것.
의문을 가질 것.
자유로울 것.
흥미롭다.
한편,
우리 집에는 심심하면 스웨터 타령을 하는 개딸이 있다.
주먹구구로 만들어 내던 스웨터도 손 안 댄 지 십여 년 넘어가는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꽈배기 스웨터를 들이대며 나를 압박 중이었다.
“엄마 스웨터 언제 떠줄 건데? ”
“스웨터는 소매가 어렵다. 코 계산을 잘하고 곡선을 잘 만들어 올리고 그것이 몸통에 딱 맞아 들어가야 하는데 …. ”
"어머니, 말이 깁니다."
(설명은 지루한 법이다, 딸아.) (젊을 땐 주먹구구로 머리 굴려가며 뚝딱 해치웠는데. 지금은 아예 생각하기도 싫다.) "그 머리 아픈 것을 왜 해!"
그런데 또 그 와중에,
아래위로 스트라이프로 어울릴 듯 안 어울릴 듯 핑크와 피치와 하늘색으로 각 각 다른 조합의 상하 스트라이프를 입고 인터뷰하는 모 인사의 모습을 잡지에서 본다. 아무래도 내가 “돈” 사람들만 나오는 매체를 좋아라 가까이하는 거지.
그런데 불현듯 스웨터를 떠보고 싶어졌다. 분홍과 초록이 매치된 스트라이프로. 분홍은 아주 싸한 새색시 분홍으로 할 작정이었다.
일사천리로 실을 주문한다. 그러나 역시 눈이 아파서 꽃같이 고운 핑크를 클릭하지 못하고 분홍 게이지가 살짝 한 단 낮은 인디언 핑크로 낙점했다. 그리고 돌진하듯 뜨개질을 시작한다.
“절대 안 어울리는 색깔 같은 건 없어. 딸아, 잘 어울리는 뻔함의 지루함을 깨는 나의 전사가 되어 다오.” 개딸도 “콜!”한다.
스웨터는 완성되었는데 시절은 지나가건만 아직 개시도 안 되었다. 나처럼 동네 사람을 신경 쓰나? 단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는지 개딸이 나의 분홍-초록-스트라이프 다자인과 꼭 같은 스웨터가 어디 진열된 걸 봤노라고 두어 번 전한다.
초점은 분홍색이다.
새삼 찾아 본 프라다 2023 가을/겨울 쇼는 핑크가 특히 눈에 띄지 않는다. 코로나가 절정에 달한 2022년의 관객 없는 쇼들을 보아도 분홍, 노랑, 오렌지, 하늘색 등으로 암중모색하는 분위기는 느껴지지만 분홍에 집착하지는 않는 듯하다. 어울리지 않는 색의 도전도 그리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보이는 핑크의 신호는 뚜렷하다. 이건 어쩌다 보니 핑크가 내 눈에 들어온 일이 아니다.
그런데, 프라다 쇼가 끝난 후 유튜브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바로 아르마니 쇼를 올려준다. 그렇지. 이탈리아에서 아르마니가 프라다 다음으로 큰 하우스니 당연하다.
역시 2023 가을 /겨울 쇼다.
바로 거기서 내가 마음속으로 막연히 그리며 투사해 온 "핑크의 선언"을 본다.
십여 벌 이상되는 아르마니 핑크 라인은 화려하고 부드럽게 흐른다. 이 분홍 의상들은 모두 검정을 포인트로 꾸리고 있어 여늬 핑크 모드가 아니다. 검정의 자태는 분홍-초록의 반항과는 다른 차원을 지향한다. 검정은 모든 색과 어울리며 다른 모든 색을 정의한다. 색채의 예술가, 마티스의 화려한 화판 설명에 꼭 따라붙는 설명이다. 바로 그 느낌을 아르마니 쇼에서 본다. 이렇게 선명한 검정과 핑크의 조합은 거의 처음 경험하는 것 같다. 핑크는 그래야 하듯 화사하고 아름답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검정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88세의 노장 죠르죠 아르마니는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소용돌이치는 갈망을 읽어내고 구체화하여 핑크와 검정으로 보여주었다.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그리워 한 핑크는 감정에 매몰됨 없이 검정과 함께 우리의 집단적인 상실에 대한 오마쥬를 구현해 내며 우리를 달래준다.
이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핑크의 마중을 받으며, 오랜만에 그 화사함에 한껏 젖어 보며. 그러나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리가 증인이 된 역사적 사건 속에 희생되어 간 모든 사람들을. 검정이 그것을 함께 선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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