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읽어본다 22 : <Anno’s Magic Seeds>
<Anno’s Magic Seeds> Mitsumasa Anno 1995 Philomel Books. (아노의 마술 씨앗)
'저에게 1원을 첫날 품삯으로 주시고 매일 그전 날의 배로 품삯을 계산해 주시면 됩니다.'
'아이코, 이런 횡재가. 1원, 2원 4원 이렇게 불어서 몇 배를 해봐야 얼마나 되려고...'
대략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산수의 비밀 같은 것, 그리고 제 값을 주지 않고 일꾼을 부리려는 주인의 어리석음을 파헤쳐주는 이야기 같은 것인데,
그 이야기를 새삼스레 그림책을 가지고 해 본다.
마술 씨앗 하나가 매 해마다 배로 불어나는 미추마사 아노의 황금 씨앗 이야기다.
따라서, 이 뻔할 것 같은 “썰”(說)은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가는 제 꾀에 당한다는 일괄적인 교훈에 동참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샌 물론 인터넷이 하도 좋아 그 정도로 어리석은 주인은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림책은 교훈을 주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먼저 수, 산수의 비밀을 들여다보자.
2의 0승부터 시작하여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품삯이 한 달 후면 정말 얼마가 되는지 종이에다 계산해 보았다. 원시적으로 곱하기 2를 하는 것이라 암산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21일째에 백만 단위까지 숫자가 커지면서 침이 꼴깍 삼켜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거기서 10일이 더 지난 후 31일째에는 그 수가 십억이 넘어버린다.
이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실제 이렇게 많은 금액이 되는 줄은 몰랐다. 그 일꾼이 두 달짜리 계약을 했다면 마지막 날의 품삯은 2의 60승? 그 숫자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숫자일까?
그런데 씨앗 한 알로 시작하여 그 씨앗이 불어나는 아노의 이야기는 순수한 산수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 안에 인간의 변수가 들어간 이야기다. 산수(算數)에 인간이 사는 세상의 변수가 개입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황금 씨앗은 어떤 마술사가 주인공 청년에게 준 특별한 씨앗이다. 이 씨앗 하나를 심고 잘 보살피면 일 년 후에 열매가 두 개 열리고 거기서 각 각 하나씩 씨앗 두 알이 생긴다. 이 씨앗은 하나를 먹으면 일 년 내내 배가 고프지 않은 특별한 것이라 하나를 먹고 남은 하나를 다시 심으면 앞으로 먹고살 걱정이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청년은 마술사가 말해준 대로 씨앗을 심고 첫 째 해에 하나를 먹고 하나를 심고 다시 두 째 해에도 꼭 같이 반복한다.
글에는 전혀 언급이 없지만 이렇게 보장된 변함없는 반복은 안일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 청년은 자기의 귀중한 식물이 자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그 앞 나무에 해먹을 걸고는 빈둥거리는 시간을 보낸다. 물론 그 식물 한 포기를 잘 지켜보고 있기는 하다.
이렇게 몇 해를 반복하다 급기야 청년은 생각을 하게 된다, 씨앗 둘을 다 심어 보겠다고. 변화 없는 일상이 지루해서 그랬겠다. 그 한 해 동안은 먹고살기 위해 무언가 일을 했을 것이라 해먹 놀이는 끝난 셈이었다.
그다음 해에 당연히 씨앗 4알이 손에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2-1=1의 반복이 아니라 4-1=3, 그다음 해에는 6-1=5의 게임이 되었다.
한 포기일 때는 새들도 그냥 지나쳤던 것인지 이제 여러 포기가 되니 새 떼가 달려들고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는 귀중한 열매를 지킬 수 없어 여러 가지 장치까지 동원한다. 먹고살기 바빠졌다.
그사이 씨앗은 계속 불어난다.
이제 청년은 때가 되어 짝을 만나고 가정을 이루었다. 매 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씨앗을 먹을 것이므로 계산은 빼기 1이 아닌 2가 되었다.
하지만 앞의 수가 이미 십 단위로 넘어갔기 때문에 고정적인 빼기 2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씨앗은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이제는 집과 창고도 마련하여 씨앗을 저장하기도 한다. 물론 훨씬 많은 수의 씨앗을 땅에다 심는다. 그리고 조금씩 밖에 내다 팔기도 한다.
가족이 생겼으니 살림살이도 제대로 마련하고 새도 더 열심히 쫓는다. 그리고 자연히 아기가 태어나서 이제 고정적으로 빼기 3을 하면서, 그러나 저장도 더 많이 하고 더 많이 심고 더 많이 판다.
간단한 산수의 해먹 시대와 달리 셈이 복잡해진 인생이 되어버린 것인가?
숫자만 알려주는 글과 달리 그림을 들여다보면 무언가 답답해진다.
씨앗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젠 씨앗 냄새를 맡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쥐도 근처에 있고 따라서 고양이도 키우고 있다. 시장에 내다 팔 수레도 이를 끄는 소도 있고 살림살이도 차곡차곡 갖춰 놓았다. 이제는 더 이상 자연이 허락하여 불어나는 씨앗의 산수 문제가 아니라 소유의 셈법 문제가 되는 것을 그림에서 느끼게 된다. 소유에 더하기 혹은 곱하기의 산수가 바탕하여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내 년이면 지금의 배로 불어날 씨앗을 어떻게 처리하며 간수할까?
이젠 소유의 문제에 더해 집착의 문제까지 생기게 될 것만 같다.
다행히,
그 해 가을 추수 전에 태풍이 몰아쳐 세상이 뒤집혔다.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나무에 붙들어 매어 겨우 건진 집, 소, 그리고 식구들, 또 저장고에서 급하게 건져 낸 씨앗 한 봉지, 10알이 남았다.
이 그림책은 기본적으로 숫자 놀음이라는 주제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계속적으로 열매가 몇 개 열렸는지, 몇 알의 씨를 심었는지 물어보고 있다. 따라서 씨앗 수가 불어남에 따라 빼기와 곱하기 2의 연속으로 머리에 쥐가 날만한 어린 두뇌에 숨통이 트인다. 계산이 다시 십 단위 산수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땅에 심은 씨앗은 몇 알인가요?”
계산 식은 10-3이 될 것이고 답은 7이다.
쉽다.
그리고 소유와 집착의 문제도 일단은 가라앉았다. 주인공은 없어진 씨앗을 애통해하지 않고, 가족이 무사하고 그러고도 씨앗도 충분히 건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다.
감사하다.
부부는 씨앗을 7알 심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그림은 밀레의 <만종> 패러디다.
끝인가?
아니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림이 주는 다른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황금 씨앗이라고 부른 이 동그란 씨앗은 그림 채색도 금빛을 입혀 페이지를 넘기거나 빛에 반사될 때 반짝하며 눈에 특히 뜨인다.
씨앗이 64알이 되었을 때 아직 가지에 달려 있는 씨앗을 두 페이지에 걸쳐 펼쳐 그려놓은 모습은 아름답다. 아름다울 수 있는 정도의 풍족함이다.
그러나 그 시점 이후부터는
창고에 올려놓은 자루에 담긴 씨앗,
밖에 내다 팔기 위해 수레에 실어 놓은 씨앗 자루,
땅에 심어놓았다는 씨앗.
너무 많은 씨앗으로 화면이 분주하다.
그런데 밖에 내다 팔기 위해 수레에 올려놓은 씨앗은 금빛이 아니고 붉은색이다. 어린 친구들의 산수 계산 편의를 위해서겠지라고 생각한다. 각 페이지마다 '땅에 씨 몇 알 심었나?' 혹은 '열매가 몇 개 열릴 것인가?' 하고 물어보니까.
먹은 씨앗은 빨갛게 표시하여 먹은 사람 몸에 붙여 놓고 팔 씨앗은 빨갛게 표시하여 수레에 올려놓았으니 이제 더 이상 그의 소유 씨앗이 아닌 것 즉, 셈에서 빼기를 할 숫자를 빨갛게 칠해놓은 의미 같기도 한데...
그런데 심은 씨앗 수를 물어보는 질문에 답하려면 창고에 보관한 씨앗도 빼기를 해야 하는데 그 씨앗은 여전히 금빛이다.
그리고
먹어 없어진 것이든 밖에 내다 팔 것이든 모두 빨간색인 부분이 특별히 궁금한 다른 이유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마술사는 "씨앗 하나는 오븐에 '빨갛게' 되도록 잘 구워서 먹고 다른 하나를 심어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와 가족들이 먹은 씨앗은 빨갛다. 더 이상 생산을 하는 황금 씨가 아니고 정기가 없어진 씨앗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가 결혼식을 올리고 손님 다섯 명에게 씨앗 요리를 대접했고 하나씩 기념으로 주었다고 했는데 모두 빨간색이다.
'기념으로 주는 것도 구워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랬는데 장에 내다 파는 6자루 60알, 또는 10자루 백 알씩 실려있는 씨앗까지 모두 빨간색이라면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다 구워버렸을 수가 있을까? 마술사는 오븐이라고 했지만 청년은 바깥에 피운 불에 씨앗을 구워 먹었다. 그런 시대다. 100 알의 씨앗을 구울 수는 없다.
구웠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운을 나눠 주기 싫어서?
역시,
산수의 문제는 인간 세상에서는 순수 산수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철학을 논하고 싶은 어른들이 있다면 이 빨간 씨앗을 같이 들여다보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지.
*이 그림책은 여러 가지 비유와 패러디를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의 비교적 쉬운 밀레의 <만종> 차용에서 작가 스스로가 고백한 셈이다. 3과 7은 서양 문화에서 중요한 의미의 숫자인 것도 분명하다. 그와 달리 수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봤을 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숫자들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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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2023 Jane. (삽화 Copyright 2023 m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