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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Nov 05. 2023

우리 모두 버틴다.

그림책을 읽어본다 29: <Hot Dog>(열받은 개 혹은 닥스훈트)

<Hot Dog>           Doug Salati             2022            Alfred A. Knopf


 

중요한 상을 받으며 등장한 신예의 그림책을 읽는 일은 즐겁다. 이것이 특별히 더 즐거운 것은 앞으로 그림책 세계의 대가가 될 것이 분명한 사람들의 시작을 동시대에 알고 보았다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들 중에서도 차분히 웃으며 조용조용 자신의 그림책을 설명하는 이들에게서는 그 간의 고생이 한층 더 느껴지고 그래서인지 더 마음이 간다.


 <핫 독>은 2023년 칼데콧 메달 수상작이다.

그림책의 노벨상이나 마찬가지인 칼데콧 상을 받는다면 그 작가는 두 팔을 위로 번쩍 쳐들고 '고생 끝!'이라고 외칠 수 있다. 그 고생은 작가로서의 자긍심, 그림책 세계에서의 자신의 입지 등의 문제이기 전에,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는 생활고, 바로 그것이다.

많은 경우 그림책 작가로 이름을 내고 그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림책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야 하므로 고정적인 직업이 없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작가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특히 신예 작가가 우선 자신을 널리 알리고 책이 출판되도록 하기 위해서 물리적으로 출판사 가까이에 있겠다고 결정한다면 출판의 메카인 뉴욕시 근처, 주거비가 끔찍하리만큼 비싼 어딘가에 살아야 하고 그 점이 일상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핫 독>의 작가 더그 살라티는 아마 그 고생의 모습을 이 수상작에 풀은 듯하다. 이야기 속에 뉴욕이라는 지명이 나오지 않고 주인공인 열받은 개와 살고 있는 사람은 중년의 은퇴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내용은 두말할 것 없는 ’만원滿員 뉴욕‘살이 이야기고, 살라티는 실제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빡빡하게 살아내야 하는 대도시 삶의 긴장을 큰 숨 한 번씩 내쉬어 가며 견뎌내는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의 개를 그린 이야기가  <핫 독>이다.  

   

'뉴욕은 만원이다'* 같은 제목으로 누군가가 글을 써 내고도 남을 지경으로 뉴욕은 사람으로 넘쳐나는데 안팎에서 사람들은 뉴욕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부른다. 이 거대한 도시의 명성은 화려하지만 그 명성에 따르는 무게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다 받아내야 한다.

넘치게 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해 도시는 옆으로 퍼져나가고 동시에 위로도 올라간다. 동네에 따라 위로 올라가는 것이 힘의 상징인 곳도 있지만 그 반대인 곳도 많다. 그런 곳일수록 이미 오래전부터 위로 올라간 4, 5층의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들이 많다. 한두 칸짜리로 좁게 뾰족하게 서있는 아파트다.


이야기의 주인공 핫 독(Hot Dog)은 닥스훈트다. 다리가 짧고 몸이 긴 이 개는 숙명적으로 다른 개보다 옆으로 더 뻗어야 하는 몸매인데 그가 주인과 함께 사는 곳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4층의 손바닥 반만 한 아파트다. 거실식당부억(LDK)이 현관문에 바로 붙어있다시피 한 구조에 침실과 욕실이 보이지는 않지만 비슷한 크기의 공간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공간도 비싸 그 반만 한 곳에 살아야 하는 동네에서는 넓은 침실의 여유는 없다.


날이 더운 어느 날 이 일 저 일 볼일을 보는 주인을 따라다니던 핫 독은 시끄럽고 답답하고 후덥지근한 풍경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버린다. 주인이 끄는 대로 건너던 횡단보도 한 중간에서다.

사람들은 큰 걸음을 내딛으며 지나가고 달려오던 차들이 멈추어 서서 빨리 비켜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바닥에 딱 붙어버린 핫 독은 동작을 멈추고 총체적 파업에 들어간 듯하다.    

  

급한 주인은 개를 들어 안고 택시를 불러 탄다. 기차역에서 택시를 내린 둘은 기차를 타고 순식간에 바다에 다다른다.

갑자기 세상은 옆으로 펼쳐진,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변한다.

바닷바람과 눈앞에 확 트인 물과 하늘이 순식간에  해방감을 안겨준다.


이야기 시작에서, 좁고 빡빡하게 수직으로 올라간 동네를 보여주기 위해 화면은 페이지를 여러 개의 수직 박스로 나누고 그 안에 갖은 복잡, 바쁨, 소음의 세상을 연출해 보였다.

그리고 바닷가로 달음질해 나간 후에는 바다와 하늘과 해변을 한 번에 아우르는 끝간대를 모를 화면을 연출한다.

해변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노는 닥스훈트의 즐거움을 보여주기 위해 페이지는... 당연히 수평의 길게 잘라진 박스 속에 개가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들을 담고 있다.

평화로운 수평의 세계다.


지치도록 해변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온 둘에게 좁은 수직의 세상은 그래도 내 동네라 반갑고 내 집이라 좋다. 좁은 LDK의 식탁에서 저녁을 먹은 듀오는 밤바람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 놓은 채 길게 수평으로 뻗힌 침대에 들어 잠을 청한다.

이 침대는 얼마나 넉넉한가? 화면을 가득 채워서 크기가 가늠되지 않지만 넉넉히 편안해 보인다.

  

'그림을 뭘 어떻게 보란 말인지, 아무 생각이 없어요'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라도 이 그림책을 펼쳐 보는 순간 위로 올라가는 긴장의 수직 박스와 옆으로 펼쳐져 편안한 수평의 박스를  일아 차릴 것이다. 그리고 그 일러스트레이션의 의미를 읽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글로 서술된 이야기가 별로 없는 그림책이니 더욱 그림의 메시지를 강하게 느낄 것이다.


인터뷰에서 살라티는 수직과 수평으로 구분된 페이지 화면 사용에 관한 질문에 바로 답했다.

이어서, 위로 쫓기듯이 올라가는 세상에서 사는 고생을 보여주기 위해 닥스훈트를 사용한 것이냐는 질문에 웃음을 띤 작가는, "친한 친구 개가 닥스훈트였어요"라고만 답한다.

우연히 닥스훈트, 핫독이라고?

역시, 작가들은 본심을 다 말하지 않는다,


그런다 해도 핫 독은 열받은 개이고, 핫독은 길게 옆으로 뻗은 닥스훈트며 결국 살라티 자신이었을 것이다.

‘양치기 개‘가 뉴욕의 손바닥 반만 한 아파트에서 견뎌내려면 가끔씩 넓은 자연의 공간으로 달려 나가 만사를 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하나 보다.

  

이제 칼데콧상 수상자가 된 살라티는 빡빡한 수직의 세상을 곧 졸업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독자들이 그의 책을 구매할 것이니 돈 걱정은 당분간 없을 터이고 이제 저 멀리 자연이 깊은 곳으로 나가 살 걱정만 하면 될 것 같다. 사람보다 짐승이 더 많은 곳에서 햇살과 바람이 넘치도록 들어오는 집, 수평으로 맘껏 펼쳐진 집을 마련하는 것이 다음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더 원숙한 그림책 작업을 할 것이다. 더 이상 가제본 된 꼬마 샘플 그림책을 들고 출판사 근처를 뱅뱅 돌며 출판 낙점을 받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을 것이고 이젠 에디터가 이메일로 작업을 의뢰할 것이다. 원한다면 닥스훈트도 여러 마리 키울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희망과 고민을 안고 몰려들 수밖에 없었던 "세계의 중심" 뉴욕을 성공적으로 졸업한 쾌거가 되는 것일까?


설명을 풀다 보니 '이게 무슨 어린이 그림책이야?'라는 반응이 들리는 듯하다.

그림책은 추천 연령에 상한이 없다. <핫 독>은 아마 5살 이상이면 누구에게든 적당한 책이다. 내가 내 나이에 맞춰 읽었다면 다섯 살짜리 어린이는 그 나이에 맞게 멋들어지게 핫 독의 고생을 읽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수직의 세상이 수평의 세상으로 변하는 순간에 또 다른 변한 것이 그림에 보이는지 물어보면 그 아이들은 금방 모두 짚어낼 것이다.

 


*<서울은 만원이다> (이호철  1967)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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