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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Oct 21. 2023

존 헨리여, 심장이 터질 때까지 너를 증명해야 했는가?

그림책을 읽어본다 28: <John Henry>(존 헨리)

<John Henry>   Julius Lester     Jerry Pinkney (Illustrations)    1994     Puffin Books


이 센 것은 좋은 일인가?

권투를 배우러 다니는 내 딸에게 물어본다면,

'어머니, 좋고 나쁜 걸 이 판국에 왜 따져요? 나한테 쓰려는"놈"한테 그냥 당할 수만 없는 것이 중요하지.'라고 찰떡 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가족 주변에 한 체격 하는 남자가 없어서인지 이 딸은 남녀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남자는 여자보다 체격이 크고 또 근육량이 많아 이 더 세고, 여자의 은 남자의 반 혹은 삼분의 이 정도라고 하는데 실질적인 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영화 등에서 묘사되는 가정폭력 장면은 그래서 일방적이고, 여자도 같은 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가정폭력이란 개념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말이 안 돼, 억울해.'라고 생각해 보다가, '그런데 왜 인간 진화에서 여자는 센 쪽으로 진화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으로 달려간다. 여자는 폭력의 대상일 뿐이란 사실이 감정적으로 전혀 접수되지 않아서다. 혹시 진화한 것이 이 정도일까? 그럼 언젠가는 희망이 있다는 것인가?  어떤 "놈"이 제 마누라를 집어던지고 주먹을 날리고 차고 밟는 장면에서 피가 끓다가 '그래, 한 십만 년만 기다려 봐, 이 쓰레기야!'라고 하면 되나?


그렇지만 센 은 힘이고 자랑인 것이라, 세다고 상을 주는 올림픽 역도 같은 종목에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는 것이고, 동화에 나오는 센 장사 이야기는 우리를 우쭐하게 만든다. 나보다 센 누군가가 내가 못하는 일을 해낼 때 우리는 행복하고 또 그를 위해 행복하다. 여기서 <존 헨리>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존 헨리는 기골이 장대한 장사로 19세기말 흑인 민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노래로 전해 내려오는, 어쩌면 가상의 인물이다 보니 글을 쓴 작가, 쥴리어스 레스터가 옛날 기록을 참고하여 이야기를 구성해 내었다.

글에 따르면,

존 헨리는 이미 십 대에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어느 날 그가 아버지를 도와 집 현관과 지붕--이미 기골이 장대한 자신이 들락 거리며 부순 것이다--을 고치고 내친김에 그 옆으로 방 한 칸 곁 달아 들이고,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집 앞의 수 백 평의 나무들을 다 베어 그 나무로 깔끔하게 장작을 패 놓고 그러고도 저녁밥때까지 한잠 잘 시간이 있었다고, 그렇게 글은 유머를 넣은 과장법으로 어린 장사를 그리고 있다.


청년이 된 존 헨리는 10킬로짜리 해머를 쌍으로 들고 돌덩이가 길 닦기 공사를 가로막는 곳은 어디든 다녔다. 그가 돌덩이를 부수어 자갈로 만들어 버리면 구경꾼들은 환호로 답했다. 19세기말의 철도 공사가 한창인 미국에서 엄청난 장사壯士는 중요한 자원이었던 모양이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철도 공사 판에 존 헨리가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머를 쌍으로 들고 그가 나타났을 때 마침 철길 공사는 산을 뚫어야 되는 난제에 봉착해 있었다. 증기 드릴차로 터널을 뚫겠다는 공사 감독에게 존이 내기 같은 제안을 한다. 자신과 증기차가 각기 다른 끝에서 산을 뚫고 들어가 누가 먼저 중간에 도달하는지 보자는 것이다.

내기가 시작되어 산 한쪽 끝에서는 증기차가 불을 뿜고 다른 끝에서는 존 헨리의 해머가 섬광을 만들며 산을 깨 나간다.


누가 있어 양팔로 해머를 휘두르며 산속으로 터널을 깎아 들어가는 존 헨리의 위용을 보았겠는가. 단지 쉴 새 없이 울리는 해머 소리와 돌이 튀며 번쩍이는 섬광만이 그가 산을 파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하루가 꼬박 지나고 다음날 아침 해가 떴을 때까지 해머 소리는 계속되었다. 마침내 해머 소리가 멈추고 양쪽이 만났을 때 존 헨리는 기계보다 다섯 배나 더 긴 길이의 산을 뚫은 참이었다.

흙먼지가 가라앉는 터널 밖으로 해머를 멘 존 헨리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환호로 그를 맞이했다. 미소를 띤 얼굴로 군중들을 마주 한 존 헨리는 눈을 스르르 감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전설은 그의 심장이 터져 버렸다고 한다.

또 전설은, 그가 터널에서 나왔을 때 산 위에 걸려 있던 무지개가 내려와 그의 어깨를 감싸주었고, 해와 달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울어주었다고 하던가...


"Bu@@ shi#!"

이건 존 헨리 이야기를 어디서 듣거나 보거나 할 때마다 내가 뱉어내는 신음 소리다.

'얼마나 순진하면  잘 쓴다고 칭송하니 심장이 깨질 때까지, 목숨이 끊어지는 것도 모르고 해머질을 할 수가 있냐는 말이지... 가스 라이팅을 당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요. 눈을 크게 뜨고, 너를 이리 부리고 저리 부리는 인간들이 꼼짝 못 하게 해머를 썼어야지!'   


존 헨리 이야기는 당시 1870년대 언저리의 흑인의 처지를 보여준다. 인간으로서의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자신들이기에 놀라운 힘을 가진 누군가가 힘없는 나 대신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기를 바라는 참이었다.

그러니 19세기의 흑인이 가진 것이라면 여전히 힘이 아니고 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하필 목숨이 끊어지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을 증명해야 하는 영웅을 만들어 내었을까?


<존 헨리>는 자연스럽게 흑인 작가들의 창작품이다. 이들은 존 헨리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을 보고 자신들의 관점대로 이야기를 구성하여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었을 것이다.

글을 쓴 쥴리어스 레스터의 유머와 과장법은 설화의 허구성을 즐거운 이야기로 극복해 내고 있다.

삽화의 제리 핑크니는 특유의 수채화풍 사실화로 이야기를 묘사한다. 그의 그림 채색은 늘 흐리고 탁한 갈색빛 위주라 화면이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데 <존 헨리>도 마찬가지다. 기골이 장대한 존 헨리는 흐릿한 색의 작업복에 검은 조끼를 받쳐 입고  챙 달린 작업 모자 혹은 카우보이 모자를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얼굴 모습이다. 어떤 설명이 노랫말에 들어 있었을까? 핑크니가 그려낸 존 헨리는 이빨 새가 뜬 큼직한 대문니를 드러내 보인다. 웃는 모습은 아니지만 입을 다물고 있지 않다. 그는 입을 꼭 다문 의지의 사나이 모습이 아니라 순하고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 흐릿한 색의 일복 차림이지만 항상 빨간색 반데다 목수건을 두르고 있는 모습에서 그의 낙관적 기질을 그려볼 수 있다. 작가의 결심인 셈이다. 핑크니는 숨기는 것 없고 계산하지 않는 그리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흑인의 힘의 정의를 형상화해 놓았다.


순하고 붙임성 있는 센 영웅.

역사적으로 또 현재 진행형으로 "당하고만 있는" 흑인 사회가 순하고 진심인, 당하는 영웅을 세기를 넘나들어 가며 칭송하고 있을 일인가?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려면 당하지 않을 의 균형을 보여야 할 터인데.

책 표지의 존 헨리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하려는 듯하다.

철로 가 침목 더미에 앉은 존 헨리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해머 하나는 어깨에 메고 땅에 세운 다른 해머에 팔을 얹은 모습이다. 입을 살짝 다물고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고 있다. 눈의 흰 자위가 특별히 선명하다.

책을 들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 눈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지긋이 본다. 지긋이, 꿰뚫어 본다. 쉽게 잊히지 않을 눈길이다. 연하게 미소 짓는 얼굴 같지만 수 만 가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답답하게 심장이 터질 때까지... '라는 나의 채근에 그 얼굴이 이렇게 되묻는 듯하다.   

'정말 내가 그런 것뿐일까요?'


이 센 것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제대로 정리해 주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냥 우쭐해지고 행복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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