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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Mar 03. 2024

초등학교 텃밭에서

그림책을 읽어본다 31: <It’s Our Garden>

<It’s Our Garden: From Seeds to Harvest in a  School Garden>      George Ancona     2013      Candlewick Press

 

그림책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작가들은 물론 예술적인 자질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 열정에 절대복종하며 사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내가 아직 30, 40대인 것 마냥 '그래, 사람이 저렇게 살아야지. 나도 저렇게 살 거야'라며 설레기까지 한다.


조지 안코나는 미국에서 100여 작품 이상의 어린이 대상 사진 동화를 만들어 낸 탄탄한 입지의 사진작가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잡지사에서 일하던 그가 어느 날 '난 이제 그만할 거야'라고 선언했을 때 그는 잡지사의 예술 감독이었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며 진행되는 잡지 디자인 일이 끔찍하여 한시도 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안코나는 말한다.


일을 그만둔 그는 자기 마음이 '그래 이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찾아다녔다. 수 십 년의 잡지 디자인 일의 일상 뒤로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결의를 새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때까지 그는 사진을 찍어 본 일도 없었지만 예술 감독으로 사진작가들의 작업을 많이 보아온 터라 사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피사체를 찾아다니던 그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 같은 진짜 사진을 찍는 일을 하면서 거기에서 자신의 '그 마음'을 찾았다.    


"어느 날 편집자가 사진에 글을 붙여 보면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글에는 통 자신이 없어서 못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글까지 쓰면 인세가 배가 된다며, '할 수 있을 거예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했죠."

그렇게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우리 학교 텃밭>이다.


<우리 학교 텃밭>(It's Our Garden)은 한 초등학교의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텃밭을 가꾸고 소출을 거두며 보낸 일 년을 기록한 작품이다. 아이들이 일 년 동안 텃밭을 들락날락하며 만지고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 조지 안코나의 사진과 글로 기록되어 단단한 사진동화로 만들어졌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샌타페이에 소재한 '어머니 관개수로' 학교가 그 대상 학교다. 한글로 풀어놓은 학교 이름이 이상스럽게 들리지만 샌타페이를 관통하는 500년 이상된 이 '어머니 관개 수로' (Acequia Madre=  mother irrigation ditch)가 학교 앞을 흐르고 있으니 학교 이름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학교 텃밭도 허가를 받고 이 관개 수로에서 물을 대어 썼다고 하니 그 이름이 더 엄숙하게 들린다.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학생 수가 150여 명인 이 조그만 학교는 백인 50여%, 히스패닉 40%이며 저소득층이 20%를 차지하는 학교다. 학교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조건이 아닌데도 10점 만점에 8점 평가를 받는 학교라 텃밭이 그 활력의 바탕이라고 학교 관계자들은 믿는 듯하다. 


편하게 생각해도, 텃밭을 중심으로 저학년의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미술, 음악 수업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정원 한복판의 비닐하우스가 야외 교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아이들은 무엇보다 스스의 힘으로 작물을 생산하는 경험을 하며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가든이라고 이름 붙였듯이 밭만 있는 것이 아니라 꽃밭도 있고 줄기콩 덩굴을 위해 만든 티피도 있다. 한 여름의 무성한 콩 덩굴 티피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을 이 학교의 어린이들은 알고 즐긴다.

 

조지 안코나의 사진은 이런 텃밭의 일상을 담아 보여준다. 아이들과 교사들과 학부모에 자원봉사자까지 함께 거름부터 만들고 작물을 심고 키우고 추수하고 그 소출을 먹는 모습까지, 모두 기록하고 있다.


학부모와 동네주민들이 자유롭게 방문하여 밭도 같이 가꾸고, 아버지 바이올린에 아들 기타 듀오 음악연주도 있고, 부부가 젖먹이 아기까지 데리고 하프를 끌고 와 음악 연주를 들려주는 시간도 있다. 


정원 한편에는 전문가가 만들어준 진흙 피자 화덕이 있다. 아이들이 손을 보태 진흙을 발라 만든 이 화덕에서 텃밭의 줄콩과 토마토를 올린 피자가 구워지고 아이들은 학교 수업 중에 화덕피자를 먹는 호사를 누린다.


안코나는 일 년을 두고 때에 맞춰 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글을 썼다. 책 페이지 사이사이에는 장식처럼 넣은 아이들의 식물 그림이 곁들여져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생산의 일 년이 지난 후 눈 덮인 조용한 텃밭의 정경에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괜찮다, 내년이 또 올 것이니.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덮을 때마다 항상 뒤표지를 쓰다듬으며 "아, 조금만 더 하지..."라고 나는 탄식한다.

뭐를 더 해?


뉴 멕시코 주는 그 이름만큼 역사적으로 멕시코와 관계가 깊고 히스패닉 인구 중 멕시코계가 가장 많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히스패닉인 학교의 일상을 기록한 책임에도 사진에는 백인이 너무 많이 보인다. 사진에 보이는 교사들은 모두 백인계고 학교를 방문하여 음악 연주도 함께 하고 자원봉사하는 부모도 그렇다. 여기저기 비 백인, 멕시코 원주민 후예로 보이는 히스패닉 부모도 간혹 보이고 피자 화덕에 바를 흙을 손에 잔뜩 묻히고 미소 짓는 원주민 후예 같은 소녀가 클로즈업된 사진이 있지만 이 책은 여전히 '백인찬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벌어먹고 살기 바쁜데 언제 학교 와서 이런 놀이를 하냐고...그냥 둬요, " 딸이 핵심을 찌른다. 상대적으로 일상이 여유가 없을 많은 히스패닉 가정의 부모가 학교 일에 언제 참견하고 어떻게 사진에 찍혀서 이 멋진 책 속에 기록으로 남을 수 있을까마는, 1, 2학년 모두 텃밭에서 보낸 시간을 기록한 이 책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별로 찾을 수 없는 히스패닉 아이들에게 이 책은 또 다른 소외의 경험이 될 것만 같다.     


부모 세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멕시코계 미국인인 안코나는 거의 유럽계 백인종으로 보인다. 멕시코인은 유럽계 백인과의 혼혈이 대다수이지만 그 혼혈의 내용에 따라 백인으로 보이는 혼혈에서 점차 내려가 거의 원주민으로 보이는 혼혈까지 간다. "내려간다고?" 통계에 의하면 멕시코에서는 피부 색깔이 백인에 가까운 그룹의 소득이 최상위를 차지하고 색깔이 진해지면서 소득이 정확하게 비례하여 내려간다. 사실,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일로 놀랄 것도 아니고 통계까지 찾을 필요도 없다.   


어머니 관개 용수로 학교의 40% 히스패닉이 얼마나 하얀 그룹일지는 알 수 없지만 20%라는 저소득층 학생 규모를 보면 그다지 하얀 피부일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아이들은 어디 갔을까? 소수이면서 짙은 피부색의 히스패닉을 위해, 그래도 일생을 걸고 "진짜"를 찾아 나선 조지 안코나는 이것보다 조금 더 (잘 그들을 포함)했어야하지 않느냐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1학년 짜리 금발 둘이 이젤에 얹어둔 커다란 스케치북에 텃밭일지를 쓰는 모습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한 명이 왼쪽에 글로 쓰고 다른 한 명이 오른쪽에 그림으로 그리는 텃밭일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왓다. 사가나무에 꼬치 피얻고... 벌이 도라와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철자법 오류 투성이 일지다. 그래도 다 읽어진다. 잘 읽어진다. 일 학년 짜리가 철자법이 틀려도 글은 쓸 수 있고 그렇게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다.  


그렇게, 조지 안코나는 진짜 세상의 가능성을 한편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를 만난다면, "마지막으로 사진 선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편집자의 입김이 센가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떴다), 나는 그냥 스스로를 뒤돌아본다. 진짜의 인생을 사는 일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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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2024 Jane. (삽화 Copyright 2024 m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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