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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2. 2023

#19. 우유니, 그 잔잔한 여행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9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라파즈에서 우유니로 넘어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이제 9시간은 시간 같지도 않다고 느낀다. 자다 일어났더니 어느 새 8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혹시나 역을 지나친 것은 아닐까하여 지도를 켜봤더니 다행히 딱 10분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얼마나 푹 잤던 것일까. 


그렇게 우유니에 도착해서 우리가 묵을 숙소인 Piedra blanca backpackers hostel를 찾았는데 버스에 내려 걸어서 15분은 가야되는 곳이었다. 문제는 우유니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이 모래와 가득하게 널려있는 쓰레기 더미들이었다. 볼 것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 거리를 그렇게 15분간 걸어 도착했다. 도착하니 아침 7시였다. 우리는 피로를 예상하고 프라이빗한 베드룸과 화장실까지 있는 공간을 예약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른 체크인이라 추가 비용을 더 지불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동안 남미에서 다닌 방들 중에 제일 좋은 편에 속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씻고 나가 조식을 먹는데, 한국인들이 엄청 많았다. 한국에 온 것인지, 외국에 온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 동안 남미에서 만난 한국인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얼른 나가서 우유니 사막 투어를 위한 여행사를 찾았다. 해지는 것을 보며 사진을 찍는 투어로 정했다. 그렇게 오후 4시까지 오란 말을 듣고 우린 옆에있는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었다. 피잣집 주인 아줌마의 애기들이 주문을 받는데 꽤나 재밌었다. 딸 셋에 아들 하나였는데, 큰 딸은 사춘기인지 전혀 돕지 않고 한 10살쯤 되어보이는 꼬마 여자애가 다 주문을 받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피자와 맥주를 시킨다. 우리 둘다 지쳐서 말이 없다. 얼른 다 먹고 들어가서 잠을 자고 싶은 마음 뿐이다.


방으로 돌아가서 조금 쉬다가 투어를 하러 나왔다. 우리팀은 한국인 5명과 홍콩인 부부 2명이었다. 한국인 두 명은 우리보다 어린 대학생 여자애들이었고 다른 한 명의 한국인은 페루의 코이카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언니였다. 가이드가 영어를 하나도 못했는데 그 언니가 스페인어를 잘하셔서 다행히도 대화가 가능했다.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주는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다. 구름이 많이 껴서 세계 최대의 거울은 보지도 못하고 그냥 소금만 구경하다 온 느낌이다.  


그래도 사진은 이쁘다


  

밤에 구름도 끼고 하늘에 별은 안보이고 날은 그냥 한겨울만큼 춥고. 10시까지 투어인데 거의 7시부터는 차에만 앉아있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빨리 가자고 말했더니 그러면 마지막으로 불빛을 이용해서 사진만 찍고 가잔다. 가이드가 너무 초짜였던지 전체적으로 잘 할 줄 모르는 느낌이었다. 사진기 세팅만 30분이 넘게 걸렸고 결국 밤이 되어서야 찍었다. 

  

그래도 여전히 사진은 이쁘다


사진보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더 재밌었다. 한국인 언니는 원래 한국에서 교사였다가 코이카에 지원해서 수학을 가르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페루에 있는 학교도 지금은 방학이라 여행을 온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원래 스페인어를 잘했는지 물으니 하나도 못하고 여기 일 년 넘게 살면서 다 배운 것이라 했다. 오기에 쉽냐고 물으니, 학교든 학원이든 사람들을 가르친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오기에 쉽다고 한다. 오,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언젠가 한번쯤 나도?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차를 타고 돌아가는데 우리의 옷은 소금에 젖어있고 너무 피곤하고. 여행사에서 내려서 어떻게 또 10분 넘게 걷지 했는데 다행히 그 언니가 우리랑 같은 호스텔이었다. 스페인어로 얘기해서 가이드가 태워다준다 했다. 그 언니 덕분에 정말 살았다 싶었다. 그렇게 우린 방에 들어오자마자 뻗었다. 





자고 일어나서 오늘은 뒹굴거리는 날로 정했다. 사실 K의 생일이었는데, K가 고산병 때문인지 아프다고 해서 K를 배려하여 좀 쉬기로 한 것이다. 어제 추운데 늦게까지 나가있었던 탓에 나도 피곤하기도 했고.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전날 맡겨놓은 빨래를 찾으러 갔다. 여긴 사막이라 그런가 빨래가 엄청 비싸다. 그러나 팜파스 투어할 때 온 옷에 물이 흠뻑 젖어 냄새란 냄새가 다 나는 그 옷들을 우린 도무지 더이상 가방에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맡기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완전 뽀송뽀송한 빨래를 돌려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다.


그렇게 호스텔로 돌아와 조식을 먹고 이제 슬슬 기차를 끊으러 기차역으로 가 보았다. '내일 비야손 마을로 가는 기차 있어요?'라고 질문하자, 거기에 있는 아저씨가 '내일 가는 건 표가 없어요'라고 한다. 네? 우리 둘다 벙 찔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이 시간에 맞춰서 멘도사에서 이과수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해놓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금액이 싸서 미리 끊어놨던 것으로 기억한다)


칠레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버스를 타는 걸까, 고민했다. 일단 LTE가 안터지니 방 다시 가서 생각하자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칠레로 돌아갈까 버스타고 그냥 국경마을인 비야손(villazon)에 가서 바로 아르헨티나로 넘어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국 볼리비아 티켓 홈페이지에서 버스표를 찾는데 버스는 또 하필 내일에 가는 건 어딜 들러서 16일 새벽에 도착을 하는 것이었다. 지역사람들이 많이 타는 로컬버스로만 거진 18시간 넘게 걸리는 일정, 그리고 국경을 넘어서 다시 아르헨티나 살타지역까지 8시간은 가야하는데.. 우리에겐 그 정도를 버텨 줄 엉덩이가 존재치 않았다. 


한참 고민한 끝에 그냥 16일 새벽 6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끊고야 말았다. 그러면 그나마 7시간 걸리니, 차라리 우유니에서 하루 더 있으면서 사진이나 더 찍고 가자는 게 우리의 전략이었다. 하루 방값을 더 내도 로컬버스라 도난당하기 쉽고 힘들기로 소문난 악명높은 버스를 그나마 적게 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즉흥형 성격들은 어쩔수없는 손해를 안고 살아가나 보다. 우리의 예상 계획은 일단 비야손에 가서 국경을 통과한 후 살타로 가는 버스를 탄 뒤, 하루를 쉬거나 아니면 바로 버스나 비행기를 통해 멘도사로 갈 계획이다. 우리의 이 계획은 마지막 여행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주일간 머무르기 위한 계획이었다. 


멘도사부터는 이제 모든 일정을 픽스시켰다. 멘도사에서 이과수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이과수에서 2박을 한 후 다시 비행기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와 일주일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이정도면 매우 계획적인 사람들 같다. 만족해.


무튼 모든 불확실한 일정들을 계획한 후, 호스텔에서 키친을 사용하게 해주어 K의 생일 축하 겸 라파즈에서 사온 뒤 묵혀두었던 신라면을 먹기로 하였다. 본인 말로는 최고의 선물이 아마 신라면일 거라고 한다.  


이 얼마만에 먹는 라면인가



끓이면서도 냄새에 군침을 흘리고 드디어 먹는데, 아니, 그동안 너무 매운 것을 먹지 않았던 탓일까. 미친듯이 맵다. 하물며 매운 걸 좋아하는 K도 맵다고 난리다. 남미에서 더 맵게 만들어서 파는 것일까.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눈물콧물 흘리며 먹는데 난 또 왜 맵기만 하고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던지. 항상 내가 뭘 먹든 K보다 더 많이 먹었는데 이 라면만은 포기하고야 말았다. 내 일생 일대에 해보지 않은 말을 했다. '너 다 먹어....'


내일 할 우유니 사막 투어2의 여행사부터 가기로 했다. 전날 가이드에 실망했던 나머지 새로운 곳에서 데이투어와 선셋투어까지 모두 끊고 나왔다. 아침 10시부터 해서 저녁 8시까지에다가 밥도 주는 것이니 괜찮은 듯 했다. 그렇게 예약 후 진짜로 이제 방에서 뒹굴뒹굴하러 갔다. 각자 쉬다가, 자다가 하다가 저녁엔 K의 생일 기념으로 비싸면서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추천한 식당에 가기로 했다. 이름은 'Tika'. 사실 우유니에 좀 있어보이는 식당이 거기뿐인 듯 했다. 근처에 도착하니 외양부터 삐까뻔쩍하다.  


정말 혼자만 삐까뻔쩍한 곳


들어가자마 느껴지는 위압감. 옷을 갖춰입고 갔었어야 했나 싶었다.  옷이 너무 여행객 느낌이라 추레한데.. 일단 k의 생일이니까 배터지게 먹기로 했다. 그렇게 시킨 음식은 K가 선택한 라마 스테이크와 내가 선택한 돼지고기 립. 그리고 나름 스페셜한 생일 기념 반병짜리 와인 하나. 남미에서는 말벡이 많아 그걸로 시켰다. 와인을 잘 모르는 우리지만 그런 우리의 입맛에도 너무 맛있다. 


꽤나 고품격으로 만들어 주려는 듯한 음식


생일 케잌을 못해줘서 미안했지만, 그래도 밥이 맛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K. 뒹굴거림도 꽤나 즐거운 여행 일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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