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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2. 2023

#18. 아마존, 그 잔잔한 여행

잊지 않고 싶은 순간들을 마음에 새기다

가이드가 비가 안오면 해돋이를 보자고 해돋이를 볼 사람이 있으면 새벽 5시반에 일어나서 나오라고 했다. 나야 아침형이니 벌떡 일어났으나, 비가 애매하게 오고 있어서 갈 수 있나 없나 고민하는데, 몇 명이 일어나길래 나도 가이드를 기다리기로 했다. K가 어제 밤에 나가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된다며 오늘은 좀 나은지 함께 나가겠다고 한다. 우리 포함, 함께 갈 사람들은 6명. 댄과 보, 보쉬라(영국언니), 아닠, 나, K.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해먹 장소에 모였다.


그런데 내가 해먹에 앉으려다가 자리를 잘못 펴서 거의 한바퀴를 돌아 뒤로 넘어졌다. 아프진 않았는데 쪽팔렸다. 다들 아침부터 잠깨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며 엄청 웃는다. 30분이 지나도 가이드가 오지않기에 결국 우리도 그냥 들어가서 다시 자기로 했다. K가 어제 밥을 먹지 않고 자서인지 계속 밥 언제나오냐고 칭얼거린다. 이 자식, 다 나아서 다행이다. 


오늘은 모여서 피라냐를 잡으러 가기로 한 날이다. 피라냐를 잡으러 가는 보트에서 옆에 보와 같이 앉았다. 그 때부터 보에게 한국어를 교육해주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에요?' '제 이름은 '보'입니다'부터, 한국어와 영어의 순서가 어떻게 다른지,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게 왜 유럽이나 다른 국가들보다 더 어려운지 등을 다 알려주었다. 다들 언어에 관심이 많고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외국에는 없는 '언니'와 '오빠'라는 표현도 알려주었는데 '오빠'라는 단어는 네덜란드에서 할아버지를 말할 때 하는 말이랑 똑같다고 재밌어했다. 


내 이름은 다들 발음하기 어려워해서 항상 영어 이름으로 알려주었는데 여기 친구들은 다 내 본명을 불러준다. 서로서로 이름을 외우기 위해 각자 필기도 다들 했다. 뭔가 고마운 친구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내 영어 이름이 아니라, 그냥 한국 이름을 부르기 쉽게 바꾸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손흥민 선수처럼 'SON'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것처럼 내 성을 알려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아무튼 외국인 친구들 입에서 내 정확한 이름을 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기분도 좋았다. 


피라냐가 있을 것이라는 장소로 가서 낚시를 많이 시도했지만, 피라냐는 결국 잡지 못했다. 가이드 말로는 아직 피라냐가 오기 전인 듯 하다며, 2주 뒤에 온다면 넣자마자 잡힐 것이라고 한다. 결국 피라냐 고기는 먹어보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가는데, 그 길에 비가 엄청 쏟아진다. 너무 신나서 사진을 찍었다.  참고로 왼쪽의 친구가 '보'다. 


  


외국에 있으니 외국인 얼굴이 되어가는 기분


가이드가 열매를 보여주며 이걸로 몸에 새기면 '헤나'처럼 10~15일간 새길 수 있다며 보여주겠다 약속했는데 그걸 오늘 하기로 했다. 각자 새기고 싶은 걸 새겼는데 새기는 즉시 보이는 게 아니라, 안보이는 그림을 그리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게 드러난다. 처음엔 예쁘게 그려보려고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거의 몸에 낙서하는 느낌으로 그리게 되었다. 다들 한글로 자기 이름을 새겨 달라해서 결국 다 새겨주었다. 보, 댄, 아닉, 후안 등. 동양의 글자가 신기하고 재밌나보다.


나는 내 남자친구 이름도 새겼는데 보가 무엇을 새기냐길래 남자친구 이름을 새긴다고 하니, 너무 놀란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싶었지만, 한참 뒤에 생각해보니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들 모두 나와 K가 커플인 줄 알았던 듯 하다. 개방적인 사람들. 우리 둘은 뭐랄까, 흔히 생각하는 여자애들 같은 느낌이 아니긴 하다. 약간 힙한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고, 말하는 말투도 그래서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외국애들도 뭔가 자기들만의 틀이 조금 있나보다. 우리가 이렇게 오해를 어디서나 받는 걸 보면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나뭇가지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 우측은 마지막 식사


타투가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 점심이라 그런가 더 거하게 잘 주는 느낌이다. 칠면조까지.  너무 맛있었다. 점심을 먹자마자 시간이 없어 루레나바케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번에는 내 옆에 영국언니인 부쉬라가 앉았는데 내가 언제 영국으로 돌아가냐 물으니 일단은 4년 여행 중에 6개월이 남았는데 끝나고 나면 콜롬비아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할 예정이라 했다. 콜롬비아인 이유를 질문하니 그 곳이 너무 좋았단다. 산도 하늘도 바다도 다 이뻤다고. 나보고는 뭐할거냐고 하길래, 일단 해외에 나가든 해서 영어를 더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이전 글을 쓰는 와중 돌이켜보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을 그리워서 이 글을 다시금 쓰는 와중의 나는, 생각치 못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K는 내 뒤에서 툭툭 친다. '보수적이다'가 영어로 뭐지? 하길래 대답해줬더니, K의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들이 보수적인 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왜 비건들이 한국에는 없는가, 비건이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등등 질문을 퍼붓는다. 역시 K도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은 친구다. 이래서 우리가 여행가면 잘 맞는 듯하다.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금방갔다. 그렇게 육지에 도착.


문제는 우리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 루레나바께 마을까지 달려야 할 시간이다. 문제는 우리가 가방을 여행사에 놓고 왔다는 것인데, 우리 여행사 운전기사 아저씨가 처음에 타고왔던 6명을 태우고 다시 그대로 간다. 우리가 여행사에 갔다가 짐을 들고 가야한다니까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흙길을 날듯이 질주한다. 달리면서 드는 생각은, 바퀴 펑크나면 끝이겠거니,였다. 그렇게 체크인 2분 남기고 도착. 너무 감사해서 아저씨한테 팁을 줬다. 같이 탄 친구들이랑 인사도 엄청 빠르게 하고 체크인에 성공. 그렇게 겨우겨우 비행기에 타고나니 아쉬움이 깃돈다. 마지막에 친구들이랑 인사와 여운을 즐기고 싶었는데 너무 허겁지겁 달려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인스타그램을 공유했기에 일상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





루레나바께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라파즈에 도착했다. 바로 우유니로 가는 버스를 찾아 나섰다. 공항 근처에 구버스터미널이 있다 해서 갔는데, 버스 터미널이 아니라 그냥 정류장 느낌이었다. 장소가 정신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버스들을 보니 깨진 유리창을 테이프로 붙여놓은 등 상태가 안좋아서 결국 그냥 다시 신버스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갔다. 뭐니뭐니해도 안전이 최고니깐.


루레나바께에 있다가 라파즈로 돌아오니 다시금 고산병이 오는 것이 느껴진다. 신버스터미널에서 결국 크루즈델노르떼를 타기로 했다. 비싸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안전이 가장 우선순위니깐. 그나마도 다행인 것이 우리가 마지막 탑승객이었다. 우리보다 5분정도 늦게 온 사람들은 실패해서 결국 다른 버스를 찾아 나서는 걸 지켜보았다. 버스에서는 지난 2박 3일 아마존 여행을 다시금 떠올리며 딥 슬립에 빠졌다. 


꿈에서 다시금 내가 갔던 팜파스 투어가 나온다. 진심으로 행복했었나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여서 기뻤다. 나는 인복이 참 좋은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짧은 시간마저도 우리 팀 사람들은 다 착하고 좋은 친구들이었다. 항상 밥을 먹고나서도 다른 팀들과는 다르게 그릇을 꼭 주방으로 갖다드렸다. 마음이 착한 사람들. 짧은 시간동안 정말 친해졌고 모두가 배움에 열정이 있었고 모든 것이 그저 행복했다. 이 순간 순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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