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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1. 2023

#17. 아마존, 그 잔잔한 여행

모든 순간이 소중해,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느꼈다

밤에 잠을 자는데 비가 엄청나게 오기 시작했다. 롯지인지라 나무로 되어 있어 투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그리고 비 자체가 많이 오기도 했다. 나무에 떨어지는 적당한 빗소리는 백색 소음이 되고 종종 로망도 되지만, 과도한 빗소리는 흑색 소음이 되어 나를 깨운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났는데, 밤새 내가 꿈이라도 꾼 것일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화창하다. 정말 내가 비가 오는 꿈을 꿨던 걸까.   


우리가 머무는 롯지


아마 존 속에 함께 공존하는, 아름다운 롯지다.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데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새끼 카이만


아침에 일어나 밖을 걷는데 새끼 카이만이 보인다. MBTI에서 N을 가진 나는 집과 집이 이어진 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이 다리가 무너지면 쟤네한테 다 잡아먹히는 것은 아닐런지, 걱정과 근심을 한다. 그것도 잠시 밥을 먹으러 갔는데, 역시나 밥이 너무 잘 나온다. 팬케잌에 과일들에 커피에 도넛에 빵에. 다들 여기가 바로 천국이냐고 했다. 밥을 먹는데 새 소리마저 황홀하다. 새 소리 너무 이쁘다 말하는데 '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 다시 들어오더니 하는 말, '방금 내가 너네 기분 좋아지라고 새소리 낸 거 들었어?'한다. 아니, 댄, 그 말 하려고 문까지 열고 나갔다 온 거야? 너무 귀엽잖아. 보기에는 안 그래 보였는데 같이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장난기가 엄청 많은 친구였다. 우리들의 분위기 메어커였달까.


그렇게 아침을 먹고 장화를 신고선 아나콘다를 찾으러 여정을 떠났다. 가는 길에 장화가 없는 친구들이 있어 다른 롯지에 들러서 장화를 빌리려고 하는데 거기에 고양이가 있었다. 우리의 보트가 궁금한지 올라오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K가 같이 놀아주다가 물리고야 말았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


피가 나는 걸 보더니 곧바로 medicine을 전공하는 보가 물로 씻겨주고 피도 짜내주고 약도 바르고 밴드까지 붙여준 뒤, 나중에 자기한테 한 번 더 말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배운 걸 이렇게 써먹네 라고 웃으며 말했다. 근데 난 그게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졸업을 앞뒀는데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 자신을 보며 벌써 수업 때 배운 걸 써먹는다는 것이, 그리고 스스로 뿌듯해 보이는 모습까지도 부러웠다. 나는 대학생활 내내 무엇을 했었던 거지 대체.


정글을 한참 들어가 어떤 섬 같은 땅에 내렸다. 다른 한 팀도 이미 와 있었는데 그 팀은 가이드가 같이 다니고 있었다. 우리 황정민 배우를 닮은 가이드는 성격도 비슷한지 우리를 풀어놓더니 각자 모든 구멍과 나무 위를 뒤져보라고 한다. 아나콘다를 찾으러 온 거 아니었나요? 우리 물리면 어떡해요? 어리석은 짓 하지말고, 건드리지도 말고, 자기를 부르란다. 우리를 강하게 키우시는 가이드님. 그렇게 한참 찾아다녔지만 비버는 보였으나 뱀은 보이지 않았다. 뱀 허물만 겨우 발견할 수 있었는데 다른 팀 남자애들이 그걸 만져보다니 콘돔이랑 느낌이 똑같다며 웃었다. 그랬더니 황정민 가이드도 막 가져가서 쓰라는 둥 드립 시전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자유분방한 드립력.


아무튼 거기서 아나콘다를 찾지 못해 황정민 가이드가 다른 땅에도 데려다 주었다. 거기서도 섬을 한바퀴 다 돌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가이드 말로는 원래 건기때는 아나콘다들이 잘 보이는데 우기에는 잘 안보인단다. 섬 두 군데를 돌고오니 모기는 한 10방 정도 물린 것 같다. 위에는 우비를 입어 괜찮았지만, 바지를 뚫고 들어온 모기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여기 모기는 굉장히 작고 새까매서 잘 보이지도 않고 물리는 동안 느낌도 안났다가 물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야 느껴진다. 뭐, 그래도 괜찮다. 나는 간지러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도 아니고, 모기 쯤이야 이런 경험을 하는데 별 거 아니지. 그저 모든 시간이 즐거울 뿐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잠시 쉬는데 K는 자겠다고 했다. 나는 나가서 애들이랑 카드게임을 했는데 이번엔 또다른 방식의 카드게임을 배웠다. 영어로 설명을 듣는데 참 어렵다. 난 원래 설명 없이 하면 깨닫는 타입이었기에 망정이지. 맨 처음에는 어벙벙해서 보랑 아닠이 도와주었다. 하다 보니 너무 재밌었다. 금방 승부욕에 불타올라 기어이 두번째 판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야호. 신기했던 것은 알파벳은 같지만 발음이 다른 네덜란드 언어 때문에 카드가 J Q K 가 아니라 다른 알파벳이었다. 읽는 건 잭 퀸 킹으로 똑같이 읽었다. 뭔가 신기했따.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오후 3시쯤에 돌고래와 수영하러 가자 하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가는 길에 이번에는 원숭이들에게 우리가 직접 바나나를 주는 시간을 가졌다. 애기를 뒤에 업고 바나나를 먹으러 온 엄마원숭이도 있었는데 다 너무 귀엽다. 가다가 원숭이들을 자주 보았는데 쟤네들에게는 우리가 구경거리가 아닐까 싶다. 배타는 인간, 먹이를 주는 척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받아먹어주는 척 해주는 인간, 등등. 


그렇게 여기저기 한참 돌아다니다가 핑크 돌고래가 보여 황정민 가이드가 수영하고 싶은 사람들은 강에 빠지라고 했다. 그렇게 다들 강에서 수영을 하는데 나도 6개월정도 배운 실력으로 빠져들었다가 정말로 죽을 뻔 했다. 단순히 수영장 수영과 깊이 5m가 넘는 곳에서의 수영은 달랐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가 다리를 잡고 올라오라고 해서 살아 남았다. 결국 보트에 계속 대롱대롱 메달려만 있었다. K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보트에서만 있겠다고 한다.   


다들 이렇게 수영을 잘한다


우리나라는 시골에 사는 게 아닌 이상 강 같은 곳에서 수영할 일이 잘 없다보니, 이런 수영이 잘 안된다. 대결 수영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 나중에 다시 제대로 생존 수영을 배워와서 도전해보고 싶다. 그렇게 막 놀다가 갑자기 댄이 잠수를 하며 조용히 다가오더니 보트 앞에서 갑자기 소리지르며 강 속에서 튀어 올라왔다. 다들 소리지르고 기겁했고 K는 그 바람에 모자를 물속에 빠뜨렸다. 장난기 많은 댄, 영화 죠스를 흉내내고 싶었단다. 성공적이었다. 


수영을 다 한 뒤 어제 실패한 선셋을 다시 한 번 보러 갔는데 여전히 또 구름이다. 아마도 아마존에서의 선셋 보기엔 실패한 듯 싶다. 괜찮다. 그래도. 모든 순간들이 즐거우니.

  


천지개벽같은 사진


앉아서 멀리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아르헨티나 사람인 후안이 대마초를 핀다. 갑자기 엊그제 칠레 아줌마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우리 보고 '마리화나 같이 할래?' 라고 물어봤었다. 우리는 깜짝놀라 거절했었지만. 당당히 대마초를 피는 후안을 보며 궁금증이 생긴다. '너네 나라는 대마초가 합법이야? 우리나라는 불법인데' 그랬더니 웃으면서 '우리나라도 불법인데 요즘 뭐 다들 펴. 다른 나라도 많이 피는데. 유럽도 많고 남미는 거의 다 피고. 너네 한국은 안그래?' '음.. 우리나라는 마약에 대한 법이 강해서 사람들이 잘 안 펴' 그랬더니 꽤나 놀라는 듯 했다. 오히려 내가 놀랐다. 영화와 미드에서만 보던 삶이 여기서는 진짜로 그냥 일상이구나 싶었다(물론 이 이야기를 나눈게 벌써 3~4년 전의 일이니깐, 지금 이 글을 다시 쓰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지금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나라도 비슷하다고 말해야 할 듯 하다)


여하튼 저녁을 먹기 전에 빠르게 씻으러 갔다. 씻고 나오는데 K가 아파서 저녁을 못 먹겠다고 한다. 요즘들어 자주 아픈 K. 아마도 감기에 걸린 듯 한데. 일단 약만 주고 나는 밥을 먹으러 나왔다.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식탁에서 밥을 다먹고 떠들며 앉아있는데 중국애가 파스타가 너무 맛있다며 남은 걸 30초 안에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해보라고 부추기기 시작. 성공 하면 뭐해줄거냐길래 성공 못하면 부러진 침대에서 자게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30초. 30초가 아니라 3분을 줘도 못 먹을 속도로 먹어서 결국 실패했다. 다들 자지러지는데 뭔가 대학교 MT 놀러온 느낌이다. 


그렇게 저녁을 먹다가 불이 나가버렸다. 여기선 정전이 일상이다. 결국 휴대폰의 후레쉬를 켜고선 물컵을 올려놓았다. 다들 로맨틱하고 이쁘다고 난리였다. 너네나라들은 이렇게 안 하니..? 우리가 너무 소주의 국가라서 이런 걸 잘 아는가 생각이 든다. 조금 있으니 불이 다시 들어왔고 황정민 가이드가 마침 다가와서 보트타고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K는 몸이 많이 안 좋은지, 쉬겠다며 혼자 나가라고 한다. 


잠깐 가이드를 기다리며 해먹에 누워있는데 한 6명의 친구들이 해먹에 각자 누워 손잡고 서로 밀어주며 로맨틱한 시간을 보냈다. 다들 누워서 대화하는데 모든 말들이 그렇게 재밌다. 다들 낭랑 18세 같았달까. 걱정 없이 그저 행복하게 여행을 다니고 있어서 그런걸까. 그냥 모든 순간들이 행복하고,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깜깜한 밤에 어디 가나 했는데 가이드가 보트를 태워서 데리고 나가더니 아마존 강 한복판에서 보트의 모터를 끈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하늘을 바라보며 이 순간을 즐겨 보란다. 그제서야 들리는 모든 아마존의 소리들. 거북이가 강물로 뛰어드는 소리, 새 소리, 원숭이 소리, 비버 소리, 돌고래가 물 뿌리는 소리 등, 고요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하늘의 쏟아질듯한 별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 시간이 꿈만 같았다. 세계 곳곳에서 온 8명의 사람들이 모여, 같은 시간에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소리를 듣고 있는 그 순간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우리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듯 고요해졌다. 그렇게 평온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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