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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2. 2023

#20. 우유니, 그 잔잔한 여행

진짜 우유니의 매력을 이제야 알았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호스텔을 옮겼다. 의도치 않게 기차와 버스가 없어, 우유니에 하루 더 묵게 되면서 우리가 묵던 호스텔에 새로운 방이 없기도 했고 잠시 잠만 자고 갈 예정이라, 버스터미널에서 더 가깝고 싼 방을 찾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곳은 Hostel Arcoiris라는 곳이었는데, 오랜만에 사람들이 많이 묵는 도미토리로 갔더니 꽤나 불편하다. 


여튼 그렇게 숙소를 이동한 뒤 아침 10시반에 우유니 사막에서의 데이+선셋투어를 하러 갔다. 여행사에 갔는데 여기도 동양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우유니 투어가 전체적으로 그런건가. 함께 가게된 6명은 우리 두 명, 한국인 커플, 일본인 커플이었다. 가이드는 파블로라는 사람이었는데, 저번과 다르게 전문적인 느낌이 난다. 


맨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기차무덤이었다. 사람들이 기차에 올라가서 사진을 많이 찍는데 파블로가 파상풍 걸릴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잘못해서 찔리면 답이 없다.   


오래된 기차 무덤


무덤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한국인 커플 분들이 알려주셨는데 우리가 엊그제 갔던 여행사를 통해 이 곳을 여행한 일본인들이 얼마 전에 기차에 올라갔다가 낙사했다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 떨어지면 여기서 낙사를.. 싶긴 하지만, 그래도 더 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벌벌떨며 올라갔는데 그래도 후에 찍힌 사진들을 보면 이쁜 사진을 건지긴 했다 싶었다. 


그 다음으로는 시장을 잠시 들렀다가 바로 우유니 소금사막에 갔다. 화창한 날씨와 아무도 없는 장소. 그래, 여기가 진정한 TV에서 보던 소금사막이지. 한국인 커플은 알고보니 결혼식장을 잡아놓은 상황이고, 지금은 웨딩사진들을 찍으러 왔다고 한다. 그래서 옷도 흰색으로 이쁘게 맞춰서 차려입고 오셨는데 손에는 꽃도 들고 있어 물어보니, 예비신랑분께서 우유니에 있는 꽃집에서 꽃을 사 직접 꽃꽂이를 해서 이쁘게 부케처럼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로맨틱한 사람..


궁금한 건 못 참는 나, 왜 여기서 사진을 찍게 되었냐고 물으니 한국인 커플 중 여자분이 몇년 전 남미 여행을 하다가 우유니에서 웨딩 촬영을 찍는 커플을 만났고 그게 너무 이뻐보여서 본인도 로망이 되었다고 했다. 단순히 로망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예비 신랑이 '뭐 어때, 가자!' 해서 두 분 다 직장을 그만두고 온 것이라고 한다.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는 계획도 이미 잘 정해져 있었다. 무책임하게 무작정 그만두는 게 아니라서 더 멋있어 보였다. 두 분 다 말투가 너무 이쁘고 착하셨던데다가 실제로도 이쁘고 멋있으셨다. 멋진 커플이었다. 


일본인 커플이랑도 대화했는데 물어보니 허니문이라고 했다. 일본인 커플 중에서 남자분은 영어를 아예 못하셔서 말을 많이 나눌 수가 없었다. 다만 일본인 특유의 젠틀함과 예의가 난 항상 너무 좋다고 말씀 드렸더니 매우 좋아하신다. 


우리만.. 커플들 사이에 끼여 우정을 괄시하고 있었다,   


우리 둘의 우정 괄시와 지나가다 만난 딱봐도 일본인 남자분


우리가 사진을 대충 찍고 서서 구경만 하고 있자 한국인 언니가 와서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다며 포즈를 막 알려주시고 직접 찍어주었다. 한번 마주보라며 각도까지 잡아주셨으나 너무 오글거린 우리는 그냥 재빨리 끝냈다. 오글거리는 거 딱 싫어하는 우리 두 사람. 


바로 옆팀에는 검까지 들고 복장까지 갖춰입고 온 일본인 유튜버가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다보니 무슨 옷이든 어떤 상황이든 다 너무 이쁘다. 근데 넘 웃겼던 것은 한국인 커플이 셀프웨딩사진 찍는데 뒤에서 저 일본인이 혼자 계속 옥의티처럼 사진에 나온다. 멀리서 지켜보니 개그가 따로 없다. 커플은 피하려고 하고, 일본인은 자꾸만 의도치 않게 담기고. 칼까지 빼는 제스처도 계속 한다. 한국인 커플분들이 그들 사이에 나온 일본인 사진을 보여주셔서 봤는데 진짜 너무 웃겼다. 


투어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유니 한복판에서 의자와 테이블과 파라솔을 펴 놓고 밥을 먹었던 것이다. 우리만 친구들끼리의 우정 여행이나, 아마 커플들에게는 꽤나 로맨틱한 일일듯 싶다. 가이드가 자리를 펴더니 차 뒤에서 요리를 뚝딱뚝딱 해준다. 캠핑 온 느낌도 들고 좋았다.   


우리 팀과 옆 팀


밥을 다 먹고 난 뒤,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룹 사진을 찍어주는데 역시 전문가라 파장이 멈출때까지 움직이지 않아야 이쁘다, 역광이라 저기가 더 좋다 등 자세히 알려주며 찍어준다. 엊그제와는 차원이 다른 사진이다. 

  


귀염뽀짝한 사진들



그 후에는 다같이 다카르 랠리를 갔다. 어딘지도 몰랐는데 예비신랑님이 가이드를 대신하여 친절히 알려주셨다. '죽음의 랠리'라고 부른다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 나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설명을 해주는데 옆에서 언니가 '야, 왜 너만 알아?'라고 하는데 너무 귀여우시다.  


태극기 옆에서 자랑스럽게


사진만 찍고 바람이 너무 불어서 차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모래가 꽤나 날린다. 이젠 구름이 많이 생겨서  하늘도 잘 안 보이고 선셋도 볼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일단 차 안에 타서 한국인 커플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인연들이 항상 새롭고, 배울 점도 많고, 감사하다. 그 분들께 인생 상담도 받고, 언니의 개인적인 연애 썰부터, 두 분이 만나게 된 썰까지. 너무 재밌고 좋은 분들이었다. 


그렇게 흐려진 날씨 탓에 선셋은 보지 못한 채 도란도란 인생이야기만 나누다가 일행들과 인사를 나눈 채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그러다 문득 아까 커플분들이 튀김우동 컵라면을 파는 상점을 알려줬던 기억이 났다. 바로 달려가서 가격을 물으니 한국 돈 4천원이란다. 진짜 한참을 진지하게 고민 한 뒤, 비싼 금액보다 먹을 때의 행복의 가치가 더 크겠단 생각에 결국 두 개를 샀다. 나온 지 한달이 되었더니 앞뒤가 없다. 컵라면은 잠시 가방 속에 쟁여두고, 한국인 커플분들이 추천해 주었던 아사도를 먹으러 출발했다. 


알려준 장소에 가니, 아사도(오븐)을 먹을지 튀김을 먹을 지 고르라고 한다. 옆에서 오븐구이를 통으로 돌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연히 아사도다. 그 곳엔 맥주를 팔지 않는다고 했었기에 먹을까 말까 고민했었으나 막상 가보니 정말 맥주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치킨의 1/4만 먹었는데도 닭 자체가 너무 큰 데다가, 파스타와 바나나, 감자튀김까지 나와서 결국 남기고야 말았다. 정말 맛은 최고였다.  


기름이 쫘악 빠진 아사도


먹고 행복하게 호스텔로 들어와 각자 시간들을 좀 가졌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여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우유니에 와서 느꼈던 전체적인 느낌이 떠오른다. 여행으로 오기엔 너무도 좋은 곳이지만, 살기엔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마을만 해도 그렇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개들은 쓰레기장에서 빗물과 섞여나오는 물로 목을 축이고, 쓰레기는 한 걸음에 수 백개씩 보이는 거의 폐허같은 마을이다. 보기엔 아름답지만 쓸쓸한 곳. 내 감상평이다. 


우유니는 사실, K가 오자고 한 장소였다.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굳이 SNS에서 많이 보이는 곳들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다만 내가 가고싶은 아마존 여행과, K가 가고싶은 우유니 여행을 모두 공존하기 위해 우리 둘 다 서로 조금씩 희생한 샘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보니 우유니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는 것이 왜 사진인지 알 법도 하다. 사진을 보면 그 때의 기분과, 그 때의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기분이 드니깐. 그렇게 우유니에서의 시간은 아름다운 장면으로 나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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