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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2. 2023

#21. 국경을 넘어, 그 잔잔한 여행

잔잔하지 못한, 우연과 악연 그 사이,

길고 긴 우리의 불확실한 사투 속 드디어 아르헨티나로 가는 날이다. 새벽 6시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샤워하려는데 갑자기 물이 안나온다. 다행히 샴푸를 하기 전이라 그냥 나왔다. 샴푸까지 했으면 진짜 마시는 물로 씻어야 할 뻔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샘솟는다. 그렇게 걸어서 버스를 타러 왔다. 버스 중에서는 그나마 우리가 예약한 투피자 버스가 괜찮다고 들었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나마 괜찮은게, 이거라고? 싶은 생각이다. 우리가 그동안 탄 모든 것들 중 단연 최악이었다. 버스가 최악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길이 최악이었는지 모르겠다. 가다가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데, 나는 무슨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모래바람이 가득한 미래 현장에 들어온 줄 알았다. 숨을 쉴 수 없고, 눈 따갑고, 기침을 계속 나오고, 화장실은 못 가도록 막혀있다. 마스크까지 썼는데도 눈물 콧물 다 나온다. 정말 버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버티지 않을 방법도 없었다. 그 동안 타본 수많은 버스의 시간들 중 단연 최악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매케함이 목에서 느껴지는 걸 보면. 이게 그나마 나은 버스라면 다른 버스들은 얼마나 더 열악한 것일까. 


그렇게 인생 최악의 8시간을 겪고선 어찌저찌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관문인 비야손 마을에 도착했다. 걸어갈 수 있는 지도 모르고 유심 칩도 안되고, 그냥 우리처럼 배낭여행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갔다. 가면서 볼리비아 돈을 아르헨티나 돈으로 환전도 하며 그냥 감으로 볼리비아-아르헨티나 국경에 겨우 도착했다. 거기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려는데 작은 부스하나만 있다. 어딘지 몰라 거기에 서 있는 사람에게 '아르헨티나로 가고 싶다'말했더니 저기 가서 서란다. 응? 아직 볼리비아 출국 도장 안찍었는데? 라고 말 할 새도 없이 그냥 아르헨티나 입국 도장이 찍힌다. 짐 검사도 하는둥마는둥이다. 


블로그에서 보니 누군가가 아르헨티나 입국하는데만 5시간 걸렸다고 했는데 우린 5분쯤 걸렸나. 아마 오후 2시, 사람이 없는 시간에 잘 골라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뭐든 우린 넣어만 주면 되니깐. 그렇게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에 왔다. 사실 걸어가도 되는 거리였던 것 같긴 한데 길을 모르는 우리는 그냥 돈을 내고 택시를 탔다.


버스 정류장에서 일단 K 것만 유심을 먼저 샀다. 여긴 비쌀 거 같아 나는 나중에 마을 가서 하려고 했는데, K가 핫스팟이 안된다. 나는 또 강제 디지털 다이어트행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찾으며, 이번엔 좋은 차를 타자! 하며 꽤나 좋아보이는 차에 가서 물어봤더니 자리가 없단다. 그 뒤에서 우리를 보던 누군가가 마침 우리보고 살타 가냔다. 맞는데, 몇시에 출발하냐 물으니 3시란다. 그 당시 시간이 이미 3시가 넘었었는데. 뭔지 모르고 일단 와보래서 거의 끌려가다시피 갔다. 얼마냐, 우리 달러밖에없다, 했더니 알아서 돈 바꿔주고 알아서 티켓도 끊어준다. 맞게 계산이 되었는지 솔직히 알지도 못하겠는데,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이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버스에 끌려가서 탄 꼴이다. 


그런데 웬 횡재인가. 버스가 천국이었다. 끌려들어간 곳이라 이상한 곳이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참 운이 좋다. 더군다나 남미에서 처음으로 씨씨티비가 달린 버스를 타 보았다. 역시 아르헨티나는 잘 사는 나라였나 싶다. 문제는 우리가 늦게 탄 거라 가방까지 우리가 직접 들고타야만 했다. 뭐, 그정도야 괜찮다. 편하면 그걸로 장땡이다. 이 버스는 살타에 밤 12시 쯤에 도착한다고 한다. 또 9시간의 버스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타고 좀 가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DNI(신분증)을 검사한다. 키크고 잘생긴 아르헨티나 군인이 나를 보더니 'WOW, Que pais(어느나라 사람이니)'라고 물었다. '꼬레아델수르~'라고 말하며 한국인임을 어필하였고 이틀을 감지 못한 머리를 지니고 최대한 수줍고 착해보이게 웃어주었다. 혹시나 내리라고 하면 어떡해.. 다행히 무사 통과하였다.


이 또한 9시간 가까이 가는 버스였는데 대낮인 시간이다보니 잠도 이제 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잡생각들이 나서 한 번 써 보았다. K와 함께 남미를 여행하며 그 친구를 보고 참 많이 배운다. 예를 들어, 어딘가를 찾으러 길을 걸을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 갔다가 내 감이 여기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반면 K는 가다가 내가 아닌 것 같다 하여도 나보고 '너 여기있어봐, 내가 가서 보고 올게.' 라고 말하고 더 끝까지 다녀오는 사람이었다. 그리곤 우리가 찾던 장소를 찾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저 감과 운으로 살아온 사람이라 그냥 항상 적정선에서 멈추곤 했는데, K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서도 난 그래왔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냥 한 번 해보지만 혹여나 아닌 것 같아 중간에 그만둬버린 것이 많지는 않았던가.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내게 드는 이 생각들도 단순히 길 하나를 걷다가 발견하게 된 K와 나의 차이였지만, 인생도 뭐가 다른가 싶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내가 도전도 많이 하고 많은 것들을 하기에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 모든 도전은 울타리 안에서의 일이다. 다들 위험한 길을 간다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사려가면서 그 길들을 가는 것이다. 남들 눈에는 당당하고 대단해 보일지라도 결국 내 스스로는 내가 그 정도는 아닌 사람인 걸 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바뀌어볼까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고싶다. 한 번 시작했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끝을 봐 보는 것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9시간이 금방 흘러 우린 살타에 도착했고 오면서 살타에서 멘도사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기에 공항으로 향했다. 지금은 새벽 2시인데, 오전 9시 비행기로 출발하여 오후 1시 반 도착 예정이다. 고로, 매우 피곤하다. 다시금 시작된 공항 노숙. 오늘만 지나면 그래도 이제 정말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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