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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3. 2023

#22. 멘도사, 그 잔잔한 여행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거창하리

찍하다 싶을 만큼 힘들게 도착한 살타.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이제부터 9시까지만 공항에서 기다린 뒤, 비행기로 1시간 날아가 경유해서 2시간 대기 후 다시 1시간 날아가면 드디어 멘도사에 도착한다. 너무 힘들다보니 이제 '무슨 부귀영화를 노리겠다고..'라는 생각이 조금 든다. '집나가면 개고생'이라고 어릴 때 보던 문구도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래도 항상 긴 여행을 다녀온 뒤에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추억들이더라. 그래서 후일 우리가 이 여행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할 수 있는 추억이 되겠거니, 하고 웃어넘긴다.


그렇게 세상 가장 지겨운 9시간이 지났다. 문제는 비행기가 1시간 연착이란다. 우리, 다음 연결지은 비행기도 있는데요? 조금 있으니 기어코 우리가 탈 뒷 비행기와 같은 시간까지 미뤄졌다. 방송으로 우리 이름도 부른다. 카운터 쪽으로 갔더니 우리 비행기가 연착 되었다며 뒷 비행기를 새로 끊어준다. 오후 6시 비행기. 그래도 알아서 끊어주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그렇게 연착과 연착을 거듭하여 12시 40분에 출발하였는데, 타자마자 그냥 쓰러졌고 눈을 뜨니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 하면 뭐하나, 또 5시간 더 대기를 해야 하는데. 사실 이 정도면 버스타고 가는게 더 빨랐겠다 싶었다. 그렇게 최악의 5시간을 더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비와서 또 연착이란다. 결국 오후 8시 비행기로 바뀌었다. 엉덩이가 눌리다못해 납작궁뎅이가 되어간다. 눈물을 머금고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어머나, 우리 좌석을 비지니스로 바꿔주었던 것이다. 인생의 첫 비지니스. 1시간만 가는데 기내식까지 준다. 단순한 우리 두 사람, 갑자기 그 모든 기다림이 사르르 녹아 용서가 되는 순간이었다.

  

비지니스를 타고 찍어본 하늘


비지니스에서는 하늘마저도 아름다워보인다. 자리도 넓고 좋다. 그러나 여기서의 1시간은 너무 금방 가버린다. 금방 멘도사 공항으로 도착하여 바로 공항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진짜 거의 36시간만에 숙소로 들어온 우리.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드디어 우유니에서 바리바리 싸온 튀김우동 컵라면을 아침으로 먹기로 했다.  


한국의 맛, 튀김우동



이런 곳에서 가장 큰 행복은 이런 한국의 맛이다. 물을 끓여서 넣는데 심장이 한 번 콩, 후후 부는데 심장이 두 번 콩, 입 속으로 면발이 들어가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그 맛이다. 너무너무 맛있다. 컵라면 국물 몸에 안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외국에서는 몸에 좋을지도 모르는 일.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었다. 


오늘은 와이너리투어를 하기로 했는데, 그 전에 할 일은 환전과 유심을 사는 것이었다. 유심은 Claro 매장에 가서 구매하였고, 환전은 근처에 환전소를 갔는데 환전이 너무 전문적이고 사람들 줄도 완전 길다. 근데 그 바로 앞에 수많은 환전상들이 줄서있다. 환전상들에게 환전을 하는 장점을 줄을 기다리지 않는 것 뿐인데다가 위조화폐를 받을 확률이 있어 우리는 기다리더라도 안전하게 환전소에서 했다. 


드디어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여기는 버스티켓을 사서 충전해서 다녀야 한단다. 그냥 돈을 내는 곳이 없다고. 상점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버스카드가 없고, 터미널 가서 사야한다는 상점 주인의 말. 그렇게 결국 터미널까지 걸어가게 되고, 시간은 와이너리투어를 가기에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일단은 우리의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물어보다 결국 버스티켓을 사게 되었고, 얼마를 충전해야할지 몰라 쩔쩔매는데 매표소 직원이 '너네 둘이타고 왔다갔다 하려면 60 충전하면 될거야.' 라고 했다.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의 종류가 왜이렇게도 많던지. 찾는데도 또 한 세월 걸린다. 우리는 유명한 자전거 가게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와이너리 투어를 가고자 했는데, 버스를 타서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프다. 그러나 이미 오후 1시를 넘긴 시간이라 투어까지 시간이 없어 그냥 갔다.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우리가 가려 하였던 'Bodegas López'라는 유명하고 굉장히 큰 와이너리로 갔다.   


보데가스 로페즈



원래 계획은 2~3군데를 갈 계획이었으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다. 왜 한국에서도 잘 안하던 운동을 여기와서 이렇게 무리해서 한 것일까. 자전거를 잘 타지도 못하는데 1차선 도로라 옆으로 차들이 쌩쌩 달려가는데 솔직히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직진만 할 줄 아는 자전거를 40분 정도 탔나, 겨우 도착했다. 


도착하니 2시반 쯤 된 상황. 한 시간만 기다리면 영어투어를 진행한다고 해서 영어 투어를 듣기로 한다. 처음엔 우리 두 명과 미국인 두 명에서만 투어를 들었다. 진행하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애들이 막 몰려온다. 투어 가이드가 그 중 한 명을 이 로페즈 가문 여자애라고 소개시켜준다. 오호, 부자 아가씨.. 인가보다. 걔가 친구들을 자신의 부모님이 하는 와이너리에 데려 온 것이다. 그렇게 단체로 우리는 와인을 만드는 과정, 와인 통 청소 하는 법 등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와인이 담겨있는 통
이렇게 항상 와인을 연구한다고 한다 (창문에 비친 내가 더 잘보이는 건 기분 탓..)


  

와이너리에서는 직접 이렇게 맛을 보면서 와인의 등급을 연구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하던 와인 마시는 법을 배운다.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이 있었는데 원래는 화이트를 마시고 레드를 마셔야 하는 것이 순서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화이트와인이 더 달기 때문에, 레드와인부터 마셔보자고 말한다.


와인을 조금 받고나서 들어보니, 와인은 잔의 아래쪽을 잡아야 손의 온도로 인해 맛이 변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향을 맡아보라고 하는데 향을 맡아 보았더니 와인의 향이 살짝 느껴진다. 이제 와인잔을 흔들어 본 후 다시금 향을 맡아 보라는데 향이 너무 달라졌다. 훨씬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와이너리 투어 담당자가 오래된 와인은 4시간도 흔들어서 마신다고 이야기한다. 산소가 통하는 것에 따라 맛이 정말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흔들어 주어야 한다고.


또, 와인은 코르크마개로 덮은 것은 몇 년이 지난 와인이다,라고 말하지만 단순히 뚜껑으로 덮힌 와인은 그냥 그 때 생산 되었다고 하지 몇 년이 지난 와인이라고 따로 세지 않는다고 한다. 오, 많이 배운 느낌이다. 이후에 화이트와인을 마시는데 일단 색깔이 로즈와인처럼 영롱하다. 맛도 굉장히 달고 과일주스같다. 과일주스인줄 알고 착각하고 마시다보면 나중에 몇 병은 마신 후일 것이니 조심하란다. 그렇게 와인을 맛봄으로써 와이너리 투어가 끝났다. 


나와서 와인을 사가기 위해 고르면서 잠시 앉아있었는데, 와인을 꽁짜로 준다. 와인을 마시면서 구경하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다들 치즈, 케잌, 와인을 마시면서 일한다. 아까 와이너리 투어 담당자 언니가 '우리는 술을 이렇게 마시면서 일한다, 부럽지 않냐'고 말하는데, 막상 눈앞에서 보니 진짜 부럽다.   


무제한 와인 공급


와인을 따라주는 세뇨르가 언제든 원하는 와인 있으면 다 말하라고 그랬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야했기에 그 이상은 사양했다. 그만 마시고 이제 진짜로 와인을 사기위해 기웃거렸다. 가격이 보통 3천원에서 만원 사이다. 고민하다가 와인을 좋아하는 가족을 위해 꽤 좋은걸로 골랐다. 20년 산 와인이다. 아까 먹은 달달이한 것 까지 두 개를 사고 싶었으나 가방 무게를 생각하여, 거기서 멈추었다. K는 화이트 와인 하나를 샀고, 우리 둘이 마실 와인 반 병 짜리 하나를 추가로 구매했다. 참고로 투어를 듣고 나온 사람들에게는 15퍼센트 할인이 들어간 가격이다. 


문제는.. 거기서 선물이라며 와인 큰 거 한 병을 공짜로 넣어주고, 아까 마신 와인도 선물이라며 그냥 준단다. 결국 어깨가 무거워진 우리. 그리고 이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가 우릴 막아선다. 인자한 미소를 지닌 한 남자가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 너무 인자해보이는 데다가, 젠틀하고, 거기다 얼핏 보기에 제복 같은 걸 입고 있어서 일단 멈췄다. 자세히 보니 제복에 경찰 비슷하게 쓰여있었다. 그 사람이 우리보고 스페인어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 못한다 했더니 자기들도 영어를 못한단다. 흠, 무슨 일일까, 난감하다. 일단 뭐라뭐라 스페인어를 하더니 우리 자전거를 자기들 차에 싣는다. 우리보고도 타라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일단은 뭔가 어리둥절하지만 타 본다.


투어리스트 전담 경찰들


그렇게 차에 일단 타고 나니, 그들이 번역기를 돌린다. '여기 위험해. 너네 자전거 빌린 곳까지 차로 태워다 줄게.'.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설마 택시기사인가? 아니면 사기꾼인가? 우리 잡혀가는건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가보 인자하고 당당해보이는 두 분의 미소에 넘어갔다. '오...케이..?'라고 불확실한 답을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사실 조금 불안했다. 돈을 달라고 하려나. 근데 사실 우리 이 무거운 가방 들고 음주운전하는 것보단 이렇게 자전거까지 실어주는 게 더 편하긴 했다. 돈을 달라고 하면 돈 내지 뭐, 하는 마음으로 그냥 탔다.

  


우리가 이게 경찰차 같은 건지 어떻게 알겠는가..


사진 속 저 차를 탄 우리였다. 나중에 MINISTERIO DE SEGURIDAD을 찾아보니 외무부 같은 거였는데, 아무튼 저 사진만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데 유리에 이상한 자국이 있다. 총에 맞은 자국이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번역기를 통해 '저거 총 맞은 건가요?'라고 물으니 맞다고 한다. 두 방이나 맞은 흔적이 있었다. 충격이었다. 우리 이런 곳을 그냥 자전거 타고 즐겁게 온 거야?


그 분들이 우리가 빌려왔던 자전거 매장에 도착해 주었고 진짜 돈은 받지 않았으나 주인 아저씨랑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우리한테 즐겁고 친절하게 인사해주곤 간다. 아저씨가 우리보고 잠시 들어오라더니 이름, 국적, 여권번호 등등 몇가지를 적어달라 했다. 'Porque.. Policia? (왜.. 경찰..?)'이라고 아는 스페인어를 총 집합해서 물었다. 대충 들리는 말로는, 안전 같은거 때문이라고 말한 듯 하다. 그러면서 'No problema (문제없어)' 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우리, 편안하게 온 것에 그저 감사할 뿐.


버스를 타고 멘도사로 돌아가려는데 버스를 탔는데도 카드를 찍는 게 없다. 뭐지? 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니, 기사님이 뭔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공짜인지, 내릴 때 찍는건지, 우리가 모르는 데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 앉아서 새로이 타는 사람들을 지켜보니 그들도 다들 처음에 들어와서 찍는 곳을 찾으며 의아해하다가 기사가 뭐라 말하니 행복해 하며 그냥 들어가 앉더라. 꽁짜구나. 역시 전세계 모두 공짜는 좋아해. 뭔가 시범운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금 멘도사에 도착. 아르헨티나는 소고기의 나라이기에,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제대로 한 번 썰어보자, 해서 유명한 곳으로 갔다. 이름은 'Cordillera Vinos y Fuegos'. 점심도 못 먹고 와인만 마셔서 고픈 배를 움켜쥐고 도착했다. 소고기는 그래도 와인이지, 하며 와인 한 잔씩 시키려는데 와인 한 잔이 없다고 한 병을 준다. 식전 음식으로는 새우를 시키고, 소고기를 각 1개씩 시켰다. 


맨 처음 식전빵이 먼저 나왔는데, 진짜 감동할 만큼 맛있었다. 식전음식인 새우도 말 그대로, 인생 새우였다. 그렇게 점점 기대만 커져가고, 드디어 나온 소고기.  


새우, 그리고 소고기.



우리는 항상 미디움레어만 먹는데, 크기가 엄청 크다.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며 한 입을 딱 썰어서 넣는데 정말 소리지를 정도로 황홀한 맛이었다. 분명 여기 입맛대로 나온 것이라 좀 짠 편인데도 짠 맛 상관없이 그냥 입에서 녹는다. 레드와인과 어우러져 나의 입 속에서 뛰어노는 소 한 마리..  


우리 둘 다 정말 미친 사람들처럼 와구와구 먹는데 주방장이 와서 맛 괜찮냐고 묻는다. Que fantastico! 라고 답해준다. 고기 한 덩어리가 그렇게 큰데도, 각자 그 덩어리를 다 먹는데 뷔페에서 먹은 것 마냥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안 질리는 고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입에 그 맛이 선하다. 


멘도사에 오기 위한 그 고생길이 다 잊혀지는 소고기였다.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거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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