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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3. 2023

#23. 이과수, 그 잔잔한 여행

자연의 웅장함 속, 한낱 점에 불과한 인간

오늘은 이과수로 가는 날이다. 숙소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데 취한 남녀들이 고성방가를 지르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여기도 술을 좋아하는 나라라 그런가, 세계 어딜가나 저 모습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남미에서처럼 택시를 잡아 공항까지의 가격을 묻는데 운전기사 할아버지가 한참 생각하더니 말해준다. 왜 그런가, 하고 봤더니 미터기가 있어서 굳이 가격 흥정이 필요 없는 것이었다. 역시 다른 남미 국가들과 좀 다르게 잘 사는 편인 나라가 맞나보다.


아르헨티나에 온 뒤로, 우리가 블로그에서 최근 정보로 봐 온 가격들보다 훨씬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좀 알아보니, 아르헨티나는 경제 붕괴 시기 이후 지나치게 급격한 성장을 다시 이룩하고 있었다. 17년도 이후로 6개월마다 거의 2배씩 뛰는 가격들, 그래서 최근에 글을 올린 사람들의 금액과도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멘도사에서 이과수로 가는 'flybondi'라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자체는 보통인데, 남미에서 흔한 연착도 되지 않고 안전에 대해서도 매우 신경 쓰는 느낌이다. 자리는 비상구 쪽으로 받아서 그런지, 매우 넓다. 편안하게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도착했다. 


이과수에서의 숙소는 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곳이라, 공항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까지 왔다. 공항 버스가 마치 택시처럼 승객들이 말하는 곳 앞에서 내려준다. 우리도 그렇게 내려서 방을 찾아 왔는데, 방이 정말 너무 좋다.  


동남아 느낌으로 꾸며놓은 방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좋다. 심지어 방에는 주방도 함께 있다. 동남아 분위기로 꾸며 놓은 듯 한데, 방 안에서 나오는 향도 완전 동남아에서 맡아본 냄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꽤나 좋아하는 향이다. 슈퍼도 바로 옆이고 근처에 레스토랑들도 많다. 너무 만족스러운 위치와 내부 모습이었다. 


근처 슈퍼에서 저녁에 먹을 소고기와 맥주, 물, 과일 등을 사다놓으려 했는데, 소고기가 없단다. 그래서 조금 멀리 있는 슈퍼로 가서 다 사고 계산하려는데 이번에는 하필이면 카드가 안 된다. 현금도 방에 두고 안 들고 왔는데, 거기서 다른 카드는 없냔다. 결국 우리 물건들을 잠시 킵해놓고 집에 다녀 오겠다 했다. 다만 배가 너무 고팠기에, 점심으로 먹기로 한 엠빠나다를 위해 한 명은 유명한 엠빠나다 집에서 포장을 해오기로 하고, 한 명은 카드를 들고 와 결제를 하기로 한다. 그렇게 각자 정해진 미션을 성공한 후 방으로 들어와 다시 조우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던 우리는 엠빠나다부터 허겁지겁 먹는데, 역시나 엠빠나다는 실패하지 않는다. 남은 라면도 함께 끓여서 먹는데, 역시나 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좀 쉬다가 월요일에 공항까지 타고 갈 버스를 예약하러 갔다.  


버스 예약 장소


현금만 가능하다고 하여, 현금이 없어 이동하는 당일날 지불하기로 했다. 현금을 뽑기 위해 ATM기에 갔는데 하필 기계가 말을 잘 안듣는다. 6000페소(20만원 정도)를 뽑으려는데 안 된다. 혹시 몰라 2000페소를 입력하니 돈이 나오는데, 문제는 한번에 수수료가 거의 만원 가까이 나온다. 그래도 별 수 없다. 방법을 모르니, 그냥 뽑는 수 밖에. 이과수를 가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했다. 눈물을 흘리며 현금을 여러번에 나눠 인출했다.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게 인출 수수료다. 


그렇게 인출 후, 방으로 돌아가서 한 시간 정도 자다가 일어나 소고기를 구워 먹을 준비를 했다. K가 양파를 너무 좋아해서 2개를 사길래 나는 약간 편식을 하니, 조금만 먹겠다고 선언했다. K가 양파를 구워주는데, 아, 양파의 맛을 처음으로 느꼈다. 결국 나도 양파 하나를 다 먹었다.   


이과수에서의 먹방


소고기는 K가 미디움 레어로 미친듯이 맛있게 구워 줬다. 어떻게 요리를 잘하냐고 묻자, 자기가 맛있게 먹기 위해 집에서 많이 한다고 한다. 나는 그냥 맛없게 먹고 안하고 마는 성격이라, 요리를 못하나 보다. 소고기를 3인분 어치 사왔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도 안한다. 그렇게 와인 반 병과 소고기를 막있게 먹고 다시 둘만의 2차를 가졌다. 이번엔 맥주와 과일, 그리고 과자. 


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정산 타임을 갖는데, 내가 리스트에 안 써놓은 게 있었던지라 이미 예상금액 돌파했다. 마지막 즈음에 너무 피곤해서 트윈 룸에서 잤던 까닭이 큰 듯 하다. 그래도 앞으로의 방 값과 이동 수단들은 다 끊어놔서 다행이다. 지금부턴 그냥 내가 소유한 기타 돈들을 탈탈 털어서 살아가야 한다. K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괜찮다. 즐거우니깐...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잠이 들었다.





오늘은 드디어 이과수 폭포로 가는 날이다. 아침은 어제 미리 사 놓은 엠파나다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서브웨이에 가서 점심을 미리 사 놓았다. 이과수 폭포 가면 배고플 것 같았기에, 소풍가는 기분으로 싸놓은 우리의 점심. 


그렇게 여차저차 이과수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들어가는 입장료가, 우리가 블로그에서 봤던 금액보다 1.5배를 넘어선다. 인플레이션을 말 그대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하다. 어쩌겠는가, 내야지. 이걸 보러 온 것인데.   


들어가자마자 지도를 받으려고 여행자 센터를 찾고 있는데 한국인 여성 분이 말을 건다. 자신의 투어 일정이 1시간 뒤인데 그 때까지만 같이 돌아다녀달라고 한다. 아무에게나 말을 참 잘 거는데, 뭔가 특이한 기운을 감지했다. 알겠다고 하며 같이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나 성격이 엄청 활발하다. 본인은 그냥 살아남기 위한 컨셉이라고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성격이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동갑인데다가 우리처럼 공대생이었다. 지금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있다고 한다. 매우 부러운 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우린 Lower Trail 코스로 걸어갔다. 조금 걷다 보니 보이는 작은 폭포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 눈앞에 나타난 수많은 폭포들의 결합, 이과수 폭포였다. 그 웅장함에 말을 잃었다. 


아름다운, 장관


한참을 구경하며 사진찍고 내려와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기 위한 기차를 탔다. 기차를 기다리는데 정말로 줄이 엉망이다. 줄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 듯 하고, 안전요원도 없었으며, 그냥 서로 먼저 들어오기 위해 밀고 당긴다. 뒤에 있던 미국인은 자신의 가이드한테 '원래 이런 식으로 운영되냐'고 묻기까지 한다. 그렇게 20분 가량 기다려 겨우 기차를 탔다.


우리 옆에 앉게된 독일에서 온 노부부, 그 중 할아버지가 영어로 말을 건다. '줄이 너무 엉망이지?' 너무 엉망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자기가 어제는 같은 폭포를 브라질 쪽에서 보고 왔는데, 거긴 질서를 잘 지켜서 다들 탔단다. 아르헨티나만 이상하다고. 그래서 우린 브라질을 못가는데 브라질에서 본 이과수는 어때요? 하니깐 황홀하단다. 물론 홀딱 젖긴 했다고. 그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걸어간다. 항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왜 그리도 이쁜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꿈이 있어 그런가 보다. 뒤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손을 꼭 잡고 가시는 모습


기차에서 내려서도 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악마의 목구멍.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진다. 이전에 봤던 이과수 폭포들의 모습과는 또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한번에 아래로 떨어지는 그 물줄기가 물안개를 만들고 그 사이로 물방울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온 몸이 홀딱 젖을 정도의 강력함과 웅장함을 지녔다. 왜 이름이 '악마의 목구멍'인지 알 것 같았다. 


한참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지만 정말,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모습이다. 아름답고, 웅장하다. 물안개로 인해 폭포의 아래부분은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웅장한 폭포의 물줄기는 나의 귀를 때린다. 자연이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가를 여기서 또 한번 느끼게 된다. 우리는 세상에 점과 같은 존재구나, 매번 웅장한 자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마음인데, 여기서 다시금 느끼게 한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그 웅장함



한참을 멍하니 보다가 내려왔다. 시간이 한참 지금까지도 눈앞에 그 모습이 또렷하다. 내려 와서 길을 찾고 있는데 아까 만난 한국인 여자애가 다시 나타났다. 보트투어 어땠냐고 물으니 나쁘진 않다, 정도롬나 말한다. 근데 그 여자애가 자기 기차 올 때 까지만 기다려 주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혼자 여행다니니깐 한국인들이 정말 그리운 것 같았다. 나도 유럽에서 그래 보았으니 그 심정 이해가 간다. 결국 같이 기다려주다가 기차 시간에 맞추어 같이 셀카를 찍고 떠나보냈다. 


이제 내려와 집으로 가려는데 눈 앞에 Freddo가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대표 군것질거리인 '돌세 데 레체' 맛 아이스크림을 팔기로 유명한 체인점 아이스크림 상점이다. 작은 걸로 돌세 에 레체 맛만 두 개 시켰는데 알고보니 하나에 두 가지 맛을 넣을 수 있더라. 상점 직원이 영어를 못해서 말해주지 않은 듯 하다. 아쉬워, 다른 맛도 먹어볼 수 있었는데.  


Dolce de leche


우리나라 베스킨 라빈스 가격보다 약간 더 비싼 가격으로, 엄천 맛있다길래 기대했는데 사실 우리 입엔 너무 달았다. 역시 모든 음식은 기대하지 않고 먹어야 그 맛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듯 하다. 우리는 계속 먹다가 물마시고 먹다가 물마시고 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어찌나 많이 걸었던지 피곤해서 둘 다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 오자 마자 슈퍼에 가서 먹을 파스타 재료를 사고 돌아와 또 먹방 준비를 시작했다. 원래는 새우감바스와 토마토 파스타를 하고 싶었으나 새우가 없던 관계로, 그냥 마늘 감바스에 토마토 파스타가 메뉴다. 감바스에는 마늘만 썰어 넣고 바게트에 찍어 먹어도 정말 맛잇다는 것을 알았다. 감바스의 맛은 새우가 아니라 마늘과 올리브유 때문이었구나.  


이과수에서의 만찬


한국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사소한 음식들임에도 여기서 먹으면 훨씬 그 맛이 배가 된다. 즐거운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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