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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우 Feb 23. 2022

헤드뱅을 한국에 도입한 아이

잡지 <월간팝송>(1971~1987)

아이언 메이든과 주다스 프리스트, 모틀리 크루와 W.A.S.P.를 아시는지요.


난데없이 먼 과거로 소환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저께 카톡도 그랬습니다.

“진짜 오랜만이다. 나 ○○야.”

톡은 급히 이어졌습니다.

“중학교 때 헤비메틀 많이 듣던 네가 기억나네.”


한 사람의 이미지는 남이 말해주는 것이 정확한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그저 ‘희망사항’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글이란 어떤 '글감'인가에 따라 근본적 재미의 정도가 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우연히 주어진 '디테일' 역시 힘을 보태기도 합니다. 그날의 카톡이 그러했습니다. 대략 잡아도 30년 만의 연락이었습니다. 아무튼 옛 친구는 중고교 6년의 저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음악 그 자체였던 아이였습니다.


그때가 처음이 아닙니다. 오랜 공백을 거친 과거는 저를 ‘공부 잘했던’ ‘잘 생겼던’ 같은 수식어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옛 친구들의 증언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음악을, 헤비메틀을 좋아했던 아이! 얼마나 유별났기에, 시간이 이리 흘렀는데도, 다들 그렇게 기억할까.


돌이켜보니... 맞습니다. 제가 바로, 용어조차 없었던 시절, 처음 ‘헤드뱅잉’을 보급(?)한 장본인입니다. 비슷한 연배의 왕년의 록 애호가들이라면... 이태원 록월드의 라이브 콘서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가 그때 그곳에서, 맨 앞줄에서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대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시험 기간 끝난 날이면, 아니면 돈 좀 생긴 날이면 달려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세운상가의 불법 레코드점. 공식 용어로는 헤적판이지만 다들 '빽판'이라고 불렀습니다. 국내 미출시된 헤비메틀이나 프로그레시브 그룹의 불법복제 음반을 찾기 위해 상가 구석구석 빽판 가게는 죄다 뒤지곤 했습니다.


중학교 때의 장래희망은 당연히 DJ였고, 당대의 팝 전문가 DJ 김광한의 틀린 멘트를 지적했습니다. 어떻게 그보다 더 잘 알 수 있냐는 시비는, 해당 아티스트의 노래별 빌보드 챠트 순위까지 읊조리는 ‘팩폭’으로 막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구요? 기막힌 교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영수 교과서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던 잡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월간팝송>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1971년 창간된 음악잡지로, 오락성 위주가 아닌 팝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전반을 다루는 전문지입니다. 중고교 6년간을 그 잡지를 끼고 살며, 보고 또 보다, 아예 외워버렸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보기 위해 정기구독은 하지 않았고, 월말이면 서점에 달려가 나오자마자 샀던 기억입니다. 청계천 고서점가를 뒤져 오래된 과월호들도 틈틈이 모았습니다. 큰 책장 가득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위로 쌓고 또 쌓았던 기억입니다. 비록 지금은 한 권도 남아있지 않지만...


아 아 저는 그때 음악을 ‘글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 미래의 한 축이 ‘음악’이 되리라 섣불리 확신했습니다.

<월간팝송>은 한국 잡지사와 음악사 양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 문화적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토록 품격 있던 이 땅의 음악잡지는 1987년 폐간됐고, 저는 한동안 음악을 듣지 못했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는 분 있으신지요. 가끔씩 특별부록으로 나오던 브로마이드와 가사집을. 그때 <월간팝송>이 주최하던 파고다 연극관에서의 레이저 디스크 감상회는 또 어떤지요. 별로 크지도 않은 화면의 공연 영상을 보면서도 최선을 다해 머리 흔들어대며 열광하던 한국 헤드뱅의 ‘얼리어답터’들…


요즘은 Youtube 통해, 그때도 구하기 힘들었던 '훨씬  과거의' 모든 음악과 영상을 너무나도 쉽게 찾아 무료로 즐길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 시절 그때' 소박했던 기쁨이  크게 기억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이런 추억이 없으신지요.


경향신문에 실린 <내 인생의 책> 원고를 조금 수정 보완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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